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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초기로 논두렁에 풀을 베어내다가 나는 깜작 몰랐다. 무성한 단풍잎돼지풀 잎 아래서 죽어 있는 아기 고라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기 고라니는 옆으로 누운 채로 죽어 있었다. 어떻게 하다가 죽었을까?

죽은 지 상당기간이 지났는지 부식이 되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라니의 몸에는 파리와 개미들이 득실거렸다. 하기야 이 무더운 장마철에 단 하루만 지나도 부식이 되고 말 것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모든 만물은 피가 통하지 않으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 가고 만다.

 논두렁에 죽어있는 아기고라니
논두렁에 죽어있는 아기고라니 ⓒ 최오균

지난해 나는 여름 집 부근에서 아기 고라니의 귀여운 모습을 발견하고 넋을 잃고 바라본 적이 있다. 아기고라니는 어른 고라니들에 비해 무척 순진하다. 사람을 보아도 잘 피하지도 않고 빤히 쳐다본다. 나는 아직도 그 순진한  아기고라니의 눈빛을 역력히 기억하고 있다.

고라니는 감각이 매우 예민하여 주변 환경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또한 고라니들은 보기보다는 무척 영리하다. 한 번 맛을 알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그머니 들어와 작물을 뜯어먹고 만다.

 귀여운 아기 고라니의 순진한 모습
귀여운 아기 고라니의 순진한 모습 ⓒ 최오균

또한 어른 고라니들은 엉큼하기 그지없다. 밤이면 슬그머니 나타나 우리 집 텃밭의 상추, 고구마 순을 똑똑 잘라먹고는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 내 딴에는 텃밭을 이중 삼중으로 울타리를 쳐 놓았지만 고라니들은 교묘하고 집요하게 쳐들어와 고구마 순을 주인 몰래 뜯어 먹는다.

"고라니를 결코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녀석들은 어떤 면에서는 사람보다 더 영리하다니까요. 어지간한 망사는 들이받아 구멍을 뚫고 들어옵니다. 낮은 펜스를 뛰어넘기도 하고요. 망사도 튼튼한 걸로 치고 펜스 지주대도 단단한 것으로 세워놓아도 녀석들의 침입을 막을까 말까 할 겁니다."

내가 우리 집 텃밭 고라니 출몰에 대하여 홍려석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 정도로는 고라니의 집요한 공격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저 귀여운 고라니가 그렇게 영특하게 농작물을 작살을 내다니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고라니는 농작물을 뜯어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다.

그건 그렇고 이 죽은 아기 고라니를 어떻게 할까? 내 생각으로는 어딘가 묻어주어야 할 것 같은데 홍 선생님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다. 고라니 장례식에 대하여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홍 선생님이 콩밭에서 예초기 작업을 하다가 내려왔다.

"홍 선생님, 여기 아기 고라니가 한 마리 죽어 있어요."
"그래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지요. 1년에 두세 마리 정도 죽은 고라니를 발견하곤 합니다. "
"그런데 하필이면 이곳에 와서 죽었을까요?"
"이 땅이 좋은 모양이지요. 아마 약을 먹었거나, 아니면 농약을 친 작물을 뜯어먹고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런, 그런데 어떻게 할까요? 밭이나 산에 묻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냥 풍장을 시키지요. 저기 논두렁에 그냥 놓아두세요.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바람에 산화되어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가 바라는 죽음일지도 모르니까요."
"냄새가 날 텐데요?"
"그것이 자연현상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초연하게 한마디 던져주고는 홍 선생님은 약속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어떻게 할까? 한참 생각을 하다가 나는 홍 선생님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나는 단풍잎돼지풀 잎사귀로 고라니를 싸서 논두렁으로 옮겼다. 해땅물자연농장의 논두렁은 꽤 넓다. 논두렁을 이중으로 만들어 중간에 계단처럼 되어 있는 곳에는 돼지풀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다. 나는 그 돼지풀 속에 아기 고라니를 묻어 주었다.

 아기 고라니를 논두렁에 풍장을 시켰다.
아기 고라니를 논두렁에 풍장을 시켰다. ⓒ 최오균

"고라니야, 잘 가거라. 그리고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바란다."

나는 아기고라니의 영혼을 위하여 잠시 묵념을 올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농장에서 나 홀로 아기 고라니 장례식을 치른 셈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고라니의 울음소리가 처절하게 들여왔다. 고라니의 울음소리는 가래침을 받는 것처럼  "케엑~ 케엑~" 들려온다. 아기 고라니를 찾는 엄마고라니의 울음소리일까? 오늘따라 비도 처량하게 내리는데 고라니 울음소리가 더욱 농장 분위기를 슬프게 만든다.

그러나 아기 고라니는 이제 이생의 생명을 다하고 저승으로 갔다. 모든 만물은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으로 형성되었다가 생명이 다하면 다시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간다. 아기 고라니도 육체를 자연에 돌려주고 영혼은 어디론가 떠나갔다. 아기 고라니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 더 좋은 곳에 태어났을 것이다.


#아기 고라니 장례식#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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