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세난이 심각합니다. 물량도 없는데 가격까지 급등하고 있어 정부 정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어떤 정책이 필요한 시점일까요? <오마이뉴스>에서는 서울시에서 전세난 해결책 중 하나로 2년 째 시행 중인 '장기안심주택'을 살펴봤습니다. [편집자말]
 서울 성산동에서 거주하는 장기안심주택 이용자 이진경씨.
서울 성산동에서 거주하는 장기안심주택 이용자 이진경씨. ⓒ 김동환

"뭐가 좋냐고요? 월세 내고 있는 절박한 서민들이 단 6년만이라도 돈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되잖아요. 이자없는 대출인 셈이지 뭐야."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주택가. 이진경(가명)씨는 회전하는 선풍기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그는 대화를 나누는 40여 분 동안 '좋다'는 말을 수십 회 반복했다. 그중 1/3 정도는 '너무 좋다' 였다.

이씨가 3년째 살고 있는 집은 서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면적 79.2㎡(24평)의 평범한 빌라다. 전세 가격은 9000만 원.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는 전세 계약서에 명시된 금액의 70%만 냈다는 것이다. 나머지 2700만 원은 서울시 예산이다. 그가 올해 장기안심주택제도 이용자로 선정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서울시내 25개 구 중 8개구 아파트 전셋값이 매매가의 60%를 넘는 등 수도권 전세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전세 보증금 일부를 무이자로 빌려주는 장기안심주택 제도가 유력한 대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년 간 이 제도를 경험한 사람은 약 2700여 명. 이용자들은 이 정책이 자신이 경험해 본 정부 전세 정책 중 가장 낫다고 입을 모았다.

"신용등급 관계없이 전셋값 30% 무이자 대출해주는 셈"

이씨는 남편과 함께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6년 전 귀국했다. 생활이 넉넉할 땐 몰랐지만 서울은 돈 없는 사람들이 살기엔 쉽지 않은 곳이었다. 이씨는 자신의 명의로 전세자금 대출을 1650만 원 받고 구로구 개봉동에 33㎡(10평), 3500만 원짜리 전세를 겨우 구했다.

설상가상 유학 가 있던 자녀들도 돌아왔다. 머릿수가 늘어난 이씨 가족에게 10평짜리 집은 좁았다. 2년 전 고민끝에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지금의 집을 구했다. 용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계약했지만 재계약이 걱정이었다. 전세값이 더 오르면 감당하기 어려운 사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씨가 장기안심주택 제도를 알게 된 것은 올해 초. 전세 재계약이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 이씨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지인으로부터 전세금 30%를 시에서 무이자로 빌려주는 제도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반신반의하며 신청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제도를 대행하는 SH공사가 뽑은 1370명 안에 들었다. 그리고 시가 빌려준 금액에 자기 돈 6300만 원을 들여 전셋집 재계약을 마쳤다.

"이 얘기를 해주면 주변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하죠. 신용등급도 관계없이 30% 무이자 대출해주는 셈이잖아요. 제가 겪어본 전세 정책 중에는 제일 마음에 와닿는데 이런 제도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매년 1월쯤에 새 이용자들을 선정하는데 자기도 월세 탈출 하고 싶다고 그때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이씨는 이 제도를 이용하면 앞으로 6년 동안은 계속 이 집에서 살 수 있다. 자신의 소득 수준이 신청자격인 '도시근로자 평균 임금의 70%(4인가족 기준 330만 원) 이하'를 유지한다면 전세금이 올라도 걱정이 없다. 오른 후 전세 보증금의 5%만 이씨가 부담하면 모자라는 금액은 시에서 추가로 채워넣어 주기 때문. SH공사에서 2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소득 평가에서만 합격점을 받으면 된다.

이씨가 이사를 가더라도 이사지가 서울시내라면 시의 30% 보조는 계속 이어진다. 이씨는 "우리는 네 식구라 전세금 1억 5000만 원인 집까지는 이사를 갈 수 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이사를 갈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SH공사의 장기안심주택 설명 페이지.
SH공사의 장기안심주택 설명 페이지. ⓒ SH공사

"서민들에 당장 필요한 전세 제도는 부족한 보증금 빌려주는 것"

동작구 노량진동에 사는 김희철(60, 가명)씨 역시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주인의 요구에 난감해 하다가 장기안심주택 제도 덕을 봤다. 김씨는 "주인이 8000만 원에서 9500만 원으로 전세  보증금을 올려 달라고 했는데 이미 전세자금대출을 3000만 원 받아 여유가 없었다"면서 "월세로 바꾸든가 이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아는 분이 신청을 해보라고 해서 했는데 다행히 자격이 맞아서 됐어요. 지금 집이 건물은 좀 오래됐지만 교통이 편해서 계속 살고 싶었었는데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싼 가격에 살수 있게 된 셈이지요."

김씨는 이같은 제도가 자신 같은 연령대의 서민에게 꼭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의 고등학교 동기들이나 대학 동기들을 보면 60%는 일거리가 없는 '백수'이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세 보증금을 도저히 쫓아갈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공무원, 대학교수나 의사 같은 친구들이나 돈 많이 벌어놓은 사람들은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전세 갱신 기간인 2년 안에 2000~3000만 원 만들기가 무척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자식들은 직장 갖기가 밤하늘의 별따기고 요행히 돈을 벌어와도 사회 초년생이라 생활비에 조금 보태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와의 대화 중 자신이 이용하는 제도의 재원이 서울시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연히 정부 차원에서 시행하는 제도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김씨는 "전세난에 시달리는 서민 입장에서 느끼기에 당장 시급한 건 보증금 맞춰주고 그 동네에 계속 사는 것 아니냐"면서 "이 이상 가는 제도는 없는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60평생 살아오면서 나라에서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했는데 나 뿐만 아니고 다른 서민들도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기안심주택#서울시#SH공사#전세 급등#전세대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