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니?" 귀가 아프다. 눈 높여주는 공부 대신에 친구들과 축구를, 수학을 익히는 대신 컴퓨터 게임을, 그리고 이젠 취업의 기로에서 연봉 대신에 꿈을 좇는 한 어리석은 아이가 수도 없이 듣던 말이다. 어릴 땐 이 말이 인생을 살아가는 단 한 가지 방법인 줄만 알았다.
제 하고싶은 일 하면서 인생 편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배알이 꼴림과 동시에 가까운 미래에 당신들보다 우위에 있을 자신을 꿈꾸며, 아이는 그렇게 꿈을 멀리했다. 아이는 혼란스러웠다. 성공을 꿈꾸던 자신에겐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살 수 없다'는 말이 자신을'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건 남 얘기가 아닌 대한민국 학생들과 부모들의 자화상이다.
하고 싶은 것 신나게 하는 사람
하기 싫은 것들을 인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 속에서, 자기 하고 싶은 일 다 해가며 신 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게다가 서울시장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차기 대권주자로도 급부상 중이다. 박원순, 이 얄미운 사람은 자기 혼자만 행복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이상하다. 그는 배워서 남 주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신나게 공부해서 불의에 항거하다가 감옥에 다녀왔다. 그는 벌어서 남 주는 일도 좋아했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때문에 변호사 출신에 여러 시민단체의 리더였던 그의 재산은 형편없다. 요즘은 스크랩하는 일에 재미 들렸다. 집무실에 자료가 한가득이다. 남들이 좋아하지 않은 일을 그는 좋아했다. 그래서 열심히 할 수 있었고, 많은 것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일중독인 그에게 '아무것도 안 하는 재미'를 말하는 기자에게 박원순은 말한다.
"다른 분들은 휴(休)하시고, 저는 더 많은 분들이 휴(休)하실 수 있도록 일할게요."나쁜 사람. 이젠 착한 척까지 한다.
새로운 시대에 화두를 던지는 사람박원순은 말한다.
"정치는 새로운 시대의 화두를 잡고 그것을 세밀한 정책으로 실천해내는 일입니다."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정치는 진흙탕 싸움이고 '국회의원'은 '국K-1' 아니던가. 자기 혼자 이런 멋진 말을 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그는 이런 이상한 정의에 이렇게 덧붙인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시대의 화두를 둘러싼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치인, 행정가, 시민사회, 언론이 모두 시대의 화두를 놓고 경쟁하고 있어요. 누가 그 화두를 잘 잡아서 세밀한 정책으로 추진해 낼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경쟁이죠."이 말을 들은 오연호 기자는 "그러고 보니 저도 언론인으로서 박원순 시장님과 정치적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네요. 이 책을 읽을 독자들도 마찬가지겠죠"라고 맞장구를 친다.
"투명성과 책임성" 박원순 시장이 생각하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화두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가 던진 첫번째 정책은 '정보공개 3.0'이다. '투명성'의 화두를 위한 것이다. 시민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서울시에서 제공하여 자유롭게 가공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은 2012년에 있던 서울대의 한 연구센터 발표결과에 따르면 경제적 가치가 무려 2조 1000억 원이라고 한다. 투명성의 화두를 추구함과 동시에 경제적 효과까지 얻는 셈이다.
사회의 만성적 아킬레스였던 보도블록 혁신사업도 책임성 화두를 위한 그의 세밀한 정책이었다.
"작은 것부터 제대로 고친다"는 그는 '보도블록 10계명'까지 만들어 직접 정책을 주관했다. 이에 서울시 보도블록 담당 공무원은 "이 일을 담당한 지 20년이 지났는데 시장님의 관심을 받기는 처음"
이라 말한다. 오연호 기자는 이에 대해 "쫀쫀한 것이 큰 것이다. 정밀행정이 미래행정이다"
라고 평한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투명성은 커녕 언론의 보도(報道)마저도 블록(Block)하는 세상이다. 이런 시대에 박 시장은 보도블록 정치를 통해 투명성의 화두를 던진다.
서울시의 가장 골치아픈 뉴타운 문제도 박 시장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책임성'의 화두가 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전임자의 실정을 단순히 그들 탓이라 비난하고 모른체하는 것은 그의 양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어찌됐든 그는 서울시의 리더이고, 서울시민들의 아픔을 해결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었다. 뉴타운 출구전략을 발표하고, 서울시 주도로 이루어진 실태조사는 조금씩이나마 서울시에 묻은 때를 설거지하기 시작했다. 당분간은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어려운 것이라 하면서도 이 골칫덩이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설거지 철학'의 정치가 불안한 시민에게 안도감을 선물한다는 것이다.
뉴타운 문제가 미래를 내다보지 않은 어리석음에서 비롯하였음을 인식한 박원순 시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을 던진다. 마을 공동체 회복,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반값 등록금,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은 빠른 성과와 현재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 아닌 미래를 내다보고 던진 정책이다. 박원순의 집무실엔 2100년까지의 일정이 담긴 100년 달력이 있다. "미래를 내다보며 오늘을 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박원순의 정치, 즉 투명성과 책임성이라는 화두를 위해 던져지는 정책들은 무엇을 배경으로 등장하였나. 그것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시민'시민을 향한 야심을 품은 사람
정보공개 3.0은 시민들에게 보다 높은 정보 접근성을 위해서, 보도블록은 시민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서, 뉴타운도 시민의 불안감 해소와 미래를 위해, 정규직 전환, 반값 등록금 등 모든 정책이 시민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시민을 위한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모든 정책의 과정에는 시민이 함께했다. 진정한 풀뿌리를 추구한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새정치의 핵심으로 "소통과 참여에 의한 거버넌스(Governance, 공공경영)"를 추구한다. 박 시장은 "핵심은 처음 정책을 입안할 때부터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중략)…시민들은 무한한 잠재력과 추진력을 갖고 있어요"라고 설명한다. 시민들의 잠재력과 추진력을 믿기 때문에 끊임없는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는 시청 앞에서 시위가 일어날 때 피하지 않고 현장에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박 시장은 군림하는 리더가 아닌 후원자로서 그 역할을 수행한다.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다린다. 서울시가 공동체 만들기에 큰 방향을 제시하고 지원을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주체는 주민들이란 것이다. 이를 보고 오연호 기자는
"민관 협력의 새로운 발상"
이라고 반응한다.이 모든 것은 박원순의 '야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서울을 세계 최고의 도시로 가꾸는 야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런 야심은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닌 '시민'을 위한 것이었다. 박원순은 그가 사랑하는 시민에게 이런 응원의 메시지를 던진다.
"여러분도 각자의 자리에서 꿈꾸는 야심이 있을 겁니다. 우리는 절망할 시간이 없습니다."오연호 기자는 책의 에필로그 서두에서 질문한다. "지금 당신은 하고 있는 일을 즐기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YES"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는 증거라고 한다. 이 질문을 들으니, 하기 싫은 일들을 꾹 참고 하는 것이 인생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주변 부모와 선배들이 떠올랐다. 이미 즐기기엔 몸에 '억지로'가 익숙해진 그들이 애잔해졌다.
반면에, 아직까지도 일하는 게 즐겁다며 스크랩 하고 있는 야심있는 박원순이 부러웠다. 그를 지도자로 둔 서울시민은 더더욱 부럽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행복사회 만들기'라는 야심 이어달리기를 제안한 오연호 대표는 참으로 괴짜다. 현재 오마이뉴스에 행복사회 관련 기사를 연재하며 행복이란 주제에 빠져있는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다.
이들처럼 행복해지고 싶다면 <정치의 즐거움>을 읽어 보자. 주변의 우울한 부모와 아이들에게도 <정치의 즐거움>을 선물하자. 행복한 아저씨 둘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치 뿐만 아니라 삶이 즐거워 질 것이다. 정치는 절대 안하겠다던 한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정치를 하라고 꾸준히 괴롭힌 한 사람은 결국 "정치가 즐겁다"고 한다. 정치가 즐겁다니, 다른 것은 당연히 즐겁지 않겠는가.
아쉽게도 이 책에선 박원순의 향후 정치적 야심이나 차기 선거 일정에 따른 계획은 볼 수가 없다. 문재인, 안철수 등
잠정적 라이벌에 대한 언급도 없으며 정부 비판도 이 책의 핵심은 아니다. 그런 기존의 정의된 '정치'를 다루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박원순에게 정치는 "시대의 화두를 던지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은 너무나도 재미있는 것일 수밖에 없다. "당신은 지금 어떤 야심을 갖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행복학 개론서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