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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혼 여행으로 러시아와 터키를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본다. 러시아? 얘네 범상한 부부가 아니네? 이런 반응이랄까. 언제 그런 눈치보며 살았나. 그냥 가는거다. 먼저 정한 곳은 터키다. 나름 유럽이다. 푸켓, 발리, 보라카이, 코사무이, 하와이, 괌, 몰디브와 같은 휴양지 인기가 높긴 하지만, 유럽 배낭여행 가는 커플도 종종 있다. 터키에 러시아를 더했다. 말하자면 우리 신혼여행은 '유럽 배낭여행'이다.

터키 가는 항공권을 찾아보니 직항은 비싸다. 직항은 '늘' 비싸다. 항공권의 가격은 마법 같다.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를 직항으로 가는 것보다 인천을 출발,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파리로 가는 것이 보다 저렴하다.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는 직항으로 가며, 덤으로 파리까지 가는데도 더 저렴하다. 이상한 셈이다.

나는 늘 그래서(항공사의 꾐에 빠져?) 경유를 한다.
싸니까. 서비스로, 다른 도시도 볼 수 있으니까.

"남편 베를린 경유할까요?"
"네."
"아부다비 경유할까요?"
"네."
"모스크바 경유할까요?"
"네!!!!!!!!!!!!!!!!!!!!!!!!!!!!!!!!!!!!!!!!!!!!!!!!!!"(느낌표 50개)

생각하지도 못한 기회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여행책 세 권을 봤는데, 멕시코, 러시아, 터키였다. 그 후 이 세 나라는 언젠가 한 번은 가고 싶었다. 그 중 두 나라를 가는 거다. 게다가 도빠(도스또예프스끼 팔로워)에겐 소설의 배경이 된 도시를 보는 것만해도 굉장히 경외로운 일이다.

러시아에 있는 시간은 1주일.
고민할 게 없었다.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그(상트 페테르부르크) 두 도시였다. 두 말할 나위없이.

시베리아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 안
▲ 시베리아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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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책을 보는 쌤 러시아로 가고 있지만 터키책을 보고 있다
▲ 여행책을 보는 쌤 러시아로 가고 있지만 터키책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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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공항 우리가 다녀온 지 불과 한달 뒤인 2013년 6월, 미국의 비밀을 고발한 전직 CIA요원 스노든이 망명하다 국적이 말소돼 모스크바 공항에 수십일 동안 머물렀다.
▲ 모스크바 공항 우리가 다녀온 지 불과 한달 뒤인 2013년 6월, 미국의 비밀을 고발한 전직 CIA요원 스노든이 망명하다 국적이 말소돼 모스크바 공항에 수십일 동안 머물렀다.
ⓒ 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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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러시아를 다녀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묻는 건 두가지다.
안 위험하냐.
안 춥냐.

아 참, 하나 더. 이건 주로 남자들이 묻는다.
러시아 여자들 예쁘냐.

위험은 상대적인 거다. 살인사건 비율로만 따지면 2010년 기준으로 10만명당 18건이 일어났다. 우리나라 1.7건에 비해 10배나 높다. 미국은 11건이다.

미국에선 밤이 되면 무서워 다니지를 못한다는데, 러시아는 스킨헤드도 있고 더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1주일 동안 위협을 느낀 적은 없었다. 물론 늦은 밤, 인적이 드문 곳을 다니지 않았다. 미국도 번화가는 밤 늦게까지 있어도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들었다. 비슷할 거다. 러시아나 미국이나.

러시아라 하면 굉장히 추울 거라 생각한다. 계절없이 늘 시베리아 한파에 뒤덮인 광경을 상상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에도 봄이 있고, 여름이 있다. 여름에는 낮도 길다.

뻬쩨르부르그는 위도가 높아 해가 지지 않는다. 백야다. 내가 있던 5월 초에도 밤 10시는 돼서야 어두워졌다. 반팔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밤이 되면 춥다. 봄 날씨를 예상하고 외투를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이튿날 저녁 추위에 으슬으슬 떨다 옷 하나씩 구입해 걸쳤다. 

성 바실리 성당 러시아의 상징이다
▲ 성 바실리 성당 러시아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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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쩨르부르그 전경 성 이삭 성당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도시가 세계문화유산이다.
▲ 뻬쩨르부르그 전경 성 이삭 성당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도시가 세계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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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역사박물관 5월 초이지만 모스크바의 날씨는 아직 쌀쌀하다
▲ 모스크바 역사박물관 5월 초이지만 모스크바의 날씨는 아직 쌀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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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런 질문과 대답들에서 러시아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러시아 가봤자 볼 게 뭐 있냐며 시큰둥해 하지만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고 나면 금세 눈을 빛낸다. 그리고 끝에 한 마디 한다.

"러시아 가고 싶다."

"남편! 러시아 여자들 정말 예쁘지 않습니까? 키도 크고, 몸매도 늘씬합니다. 젊은 여자 중에는 뚱뚱한 여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유전자가 다른 거 같습니다."

유전자에는 우성과 열성이 있을 뿐, 우월함과 열등함이 없다고 배워 알지만, 오늘날의 미적 기준으로 보면, 우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단 여자들, 기럭지가 남다르다. 본인의 키 183cm로 작은 편이 아닌데, 러시아 여자들, 거의 내 눈 높이다. 힐도 높다. 플랫슈즈 아니면 킬힐.

중간이 없다. 몸매는 늘씬하다. 모델이 따로 없다. 모스크바의 메인 거리인 트베르스카야를 걷노라면 모델들이 활보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러시아 여자들이 나이가 들면 살이 붙는다. 몸매가 망가지고 피부가 거칠어진다. 세월이 무상하다.

"남편. 러시아 젊은 여자 가운데 예쁘지 않은 여자가 거의 없는데, 나이든 여자 가운데에는 예쁜 여자가 거의 없잖아요. 그 이유를 아세요? 평생 석회수를 마시다보니 실핏줄이 석회질로 막히거나 터져 온통 붉고 우둘투둘해지기 때문이래요. 너무 안쓰럽습니다."
"그럼 러시아 여자들 빨리 생수를 마셔야겠습니다."

붉은 광장 며칠 뒤의 풍경.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볍다.
▲ 붉은 광장 며칠 뒤의 풍경.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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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여행기#러시아#뻬쩨르부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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