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2006년 졸업한 공주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에는 팔경(八景)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야밤의 교사다.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은 평소 자정까지는 학교와 기숙사에서 자습을 한다. 전교생이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 학교 건물은 주위가 다 컴컴한데 혼자 밝게 빛을 내고 있다.
각 학년의 학년부장과 전 학급의 담임은 항상 '야자(야간자율학습)'를 챙긴다. 야자시간은 이제 오후 10시로 짧아졌지만, 매일 같이 모든 학급 담임이 남아서 야자를 지도하는 모습은 여전하다. 아마 이런 고등학교는 전국에서도 드물 것이다. 또 우리 학교 학생들은 가깝게는 충남에서부터 수도권, 멀리로는 울산, 부산, 심지어 제주에서도 오는 유학생들이다.
우리는 3년 동안 같이 자고 같이 공부하고 하는 선·후배·동기라 학생들 간의 우애가 매우 끈끈했다. 지금 학교를 다니는 후배들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또 교사들 상당수가 공주사대부고 출신이라 학생과 교사 간의 신뢰와 애정도 두툼하다. 그들에게 학생들은 곧 가슴으로 낳은 아들과 딸이었다.
우리의 공주사대부고에 지난 18일 한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던 2학년 학생 5명이 파도에 휩쓸려 실종된 후 19일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는 비극이 발생했다. 하지만 슬픔을 추스르기도 전에 교사들은 언론의 지탄을 받아야 했다. 사고 당시 교사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오보와 교사들의 파면을 요구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2학년 학년부장 교사가 경찰의 조사를 받는 상황을 언론은 마치 구속수사처럼 묘사했고, 유족들의 항의로 실랑이가 벌어졌을 때는 교장이 유족을 밀쳤다는 식으로 그렸다.
왜곡 보도도 부족해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며 학교와 교사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 것이다. 오히려 학부모들이 교사의 안위를 걱정하며 물을 정도였다. 많은 재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물론 동문들도 상처를 받았다. 물론 이번 사건에서 학교 측의 잘못이 없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진짜 처벌받아야 할 책임자는 누구일까? 언론은 직접적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잘 알고 있을 텐데 학교와 교사들의 죄책감을 등에 업고 그들을 마녀사냥하고 있다. 인격체의 인권을 무시하고 상처를 내는 특종 기사가 과연 윤리적인가? 이러한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언론사와 기자가 있을까?
재난보다는, 죽음보다는 '특종'에만 집착한 펜과 카메라게다가 재난사고는 다른 사건에 비해서 그 사회적 파장이 매우 크다. 특히 해양 재난 사고는 다른 사고만큼 자주 일어나는 사건은 아니기에 언론은 더욱 심층적이며, 정확하고, 또한 공정해야 했다. 하지만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을 다루는 펜과 카메라는 특종에 집착해 무리한 보도를 일삼았을 뿐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언론은 단순히 "교사들이 현장에 없었다", "교사들은 사건이 벌어질 때 회식을 하고 있었다", "교사들이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타났다", "교장은 음주를 하고 있었다"라는 식으로 선정적인 보도를 하였다.
사건은 물론 교사들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당시 교사들은 캠프 측의 요청에 의해 학생들과 떨어져 있었던 만큼 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을 교사들에게 묻는 것은 지나치다. 경찰 브리핑과 학교 쪽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가정통신문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캠프 관계자들은 교사들과 운영위원들에게 그 사실을 은폐했고, 사고를 당한 학생들을 숙소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막기까지 했다. 캠프 관리자들은 사건 신고도 수십여 분이 지나서 했고, 공주사대부고 학교 관계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린 건 한 시간도 훨씬 더 지나서였다.
그러나 언론은 이 부분은 '사고 당시 교관들이 학생들을 제대로 구하지 못했다'는 내용과 '구속영장이 신청됐다'는 점만 짤막하게 다뤘을 뿐이었다. '사고가 일어났는데도 음주를 하고 있던 교사들'이 기삿거리로 부각되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해경이 공식적으로 '교사들이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발표까지 했지만, 거짓으로 도배된 기사들 속에서 이 내용은 아무런 파급력도 지니지 못했다. 영결식 당일까지 사람들은 '음주한 교사들은 살인자'라고 비난하며 악성 댓글을 계속 달았다.
더군다나 기자들은 "사람이 죽어서 영안실에 있는데 교사들이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왔다"고 전하며 교사들을 폄훼하기에 앞장섰다. 이러한 전달 방식은, 교사들이 캠프 현장에서 밤새 실종된 학생들을 찾다가 시신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다는 맥락을 철저히 무시한 처사다. 그럼 실종된 아이들을 찾았다는데 교사들이 그 사이 태안에서 공주까지 귀가하여 검은 정장으로 갈아입고 와야 했을까?
이런 맥락은 특종주의 속에서 무시되기 일쑤였다. '교장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허위보도였다. 당시 교장은 인솔자가 아니라 학교 운영위원들과 함께 격려차 캠프를 찾았다. 회식 자리가 열렸던 것은 맞지만, 사고와 회식은 우연히 겹쳤을 뿐이었다. 교사들도 사고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교장이 술을 마셨다'는 오보가 나간 뒤 식당과 학교가 입을 맞췄다는 얘기가 여과 없이 기사를 타기도 했다.
조문 온 학생들에게 "왜 우나요?" 묻는 기자들
기자들의 특종 집착은 유족, 학교, 조문객, 공주사대부고 교사들에게 추태를 부리는 일로, 이로 인해 많은 재학생들과 공주사대부고 동문들의 반감을 사는 것으로 이어졌다.
시작은 교내에 마련된 장례식장부터였다. 희생자가 발견된 지난 19일부터 기자는 닷새 동안 장례식장을 지켰다. 이곳에서 취재진들은 유족들과 학교 관계자들의 초상권을 침해했을 뿐만 아니라 무리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에 분노한 유족들이 기자들에게 항의하는 장면까지도 언론은 기삿거리로 삼았다.
'사칭행위'도 확인됐다. 학생들과 동문들이 페이스북 등지에서 추모의 글을 올리며 정보를 공유하자 기자들은 동문과 학생인 척했다. 공주사대부고 동문들은 사건이 일어나자 그들의 프로필 사진을 국화꽃으로 바꾸고 5명의 고인을 추모했다. 그러자 기자들은 이 점을 이용해 프로필 사진을 국화꽃으로 바꾸고 학생들의 페이스북 비공개 페이지, 학생회 페이지 등등에 가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비공개 페이지의 글들이 '비공개'라는 단어가 버젓이 있는데도 캡처돼 인터넷에 나돌았으며,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반발하였다.
공주장례식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취재진들은 큰 소리로 특종이라며 떠들고 통화하는 것도 모자라서 웃고 떠들었다. 제자를 잃은 2학년 학년부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데 그 교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욕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장례식장에 상주하며 상례객들을 위한 음식을 먹고 가곤 했다. "행사가 있을 때 애들이 엄청 울 거니까 잘 찍으라"는 한 기자의 말은 모든 이들을 분노하게 했다. 영결식을 행사라고 표현한 것도 모자라서 저런 말을 재학생과 조문객들이 다 듣고 있는 상황에서 하다니. 또 고인들에게 분향하는 모습을 취재한다며 학생들에게 재분향을 요구하기도 했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종합편성채널 기자들이었다. 한 기자는 분향소에서 갑자기 의자를 밟고 올라가 마이크를 들고 중계를 했을 뿐만 아니라, 친구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지금 왜 우는 건가요?"라는 식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또 다른 종편의 한 기자는 유족과 영정 사진을 너무 많이 찍는 바람에 유족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학교에 있는 학생들조차 하도 기자들에게 시달린 탓에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동문에게 '기자냐'고 따지거나 교내 기자 대기실 칠판에 '기사를 제발 똑바로 써주세요'라고 써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고인의 물품을 뒤지는 한편 지나가던 학생들에게 사진 촬영을 위한 자세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 숨진 학생 가운데 한 명의 일기장이 인터넷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기장 자체가 사라져 그 학생의 부모는 기자들에게 자제하고 일기장을 찾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개인의 일기장을 인터넷에 공개했을 뿐 아니라, 기자들이 이리 찍고 저리 찍는 과정에서 일기장 자체가 사라져 유족들의 공분을 산 것이다. 일기장을 찾아달라며 눈물로 호소하던 부모는 어렵게 아들이 남긴 일기장을 찾았다.
'태안의 비극' 전날까지도 해병대 캠프 극찬하더니...해병대 캠프는 그간 성행해 왔다. 학교뿐만 아니라 기업과 구리시, 보은군, 충청북도 등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교육청에서도 주관했다. 당장 인터넷 포털 뉴스 기사에서 기간을 2013년 7월 17일까지로 제한하여 검색을 하면 수많은 단체에서 해병대를 간 사실이 줄줄이 나열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기사를 읽어보면, 언론들은 그동안 글로벌 인재, 리더십, 역량 강화, 우애, 팀워크, 정신 등등 온갖 현란한 말로 이러한 해병대 캠프를 극찬하고 있었다.
대구의 한 학교에서 소위 불량학생들을 해병대 캠프에 보냈더니 학교 일진이 모범학생으로 변했다는 기사도 매스컴을 탄 적이 있다. 또 어떤 신문에선 현빈 효과라며 해병대 캠프를 치켜세웠고, 불과 태안에서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기 하루 전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포항, 안산, 무주, 태안 등에서 열린 해병대캠프에 갔다 왔다. 신문에선 리더십을 함양한다느니, 인내심을 가지게 된다느니, 자신감을 갖게 된다느니, 왕따 문제와 일진 문제가 해결된다느니 하며 치켜세웠다. 또 사설 해병대 캠프 프로그램들은 '복합민간군사기업'이라고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사고가 터지자 이제 그 시설들은 '해병대 사칭 캠프'가 되어 버렸고, '안전하지 않은 사설 캠프'가 되어 버렸다.
문득 '만두 파동'이 생각이 났다. '만두 파동'은 지난 2004년 특정 유명 만두업체에 썩고 곰팡이 난 단무지로 만들어진 만두소가 공급되었다는 사실을 언론이 뻥튀기 보도하면서 벌어졌다. 국민들은 그 이듬해까지는 만두 제품을 기피하였고, 해외 수출도 줄줄이 취소되었다. '썩은 만두'와 전혀 상관없는 중소식품회사에까지 불똥이 튀어 많은 영세만두업체들이 줄도산했고, 당시 2천억 원이 넘는 만두시장의 전체 매출이 몇 년간 절반 이하로 떨어졌었다.
그러나 만두 파동으로 식품업계에 파장이 계속 일어나는데도 언론은 과장 보도와 처벌 주장만 일삼았을 뿐, 이후에는 만두 파동 자체를 다루거나 그 근본 원인을 조명하지도 않았다. 언론에게 이 사건은 억측성 기사를 양산해 내는 특종의 하나였을 뿐이다.
언론은 리더십 함양에 좋다며 극찬을 하다가도 안전문제가 불거져 나오니 미인가에 안전하지 못한 캠프 시설이라고 비난하는 박쥐 같은 행태를 보이기 전에, 그동안 숱한 사람들과 학생들이 다녀가는 캠프 시설에 대해 안전 수칙은 잘 지키고 있는지, 시설은 제대로 되어 있는지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살필 생각을 먼저 했어야 한다. 리더십을 기를 수 있다며 호들갑 떨다 비극적 사건 이후로 해병대 캠프의 안전 점검에 대해 주장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