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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들어 갑을 관계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른바 '슈퍼갑'이란 단어 역시 자주 회자되고 있다. 흔히 국회의원을 '갑 중의 갑'이라고 부르지만, 국회 출석 요구를 툭하면 무시하는 대기업 총수야말로 갑 중의 갑, 슈퍼갑임이 분명하다. 최근 이와 같은 사실에 부합하는 이가 바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다. 국회는 물론 노동청도, 공정위도, 검찰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슈퍼갑 정용진,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갑옷'의 면면을 세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최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한 국회의원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같은 경제민주화 정국에서 의원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 우는 소리도 못한다."

하지만 이는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하다. 슈퍼갑으로 불리는 국회의원들의 출석 요구를 걸핏하면 '쌩 까주시는' 큰 기업 총수들이 있으니 말이다. 최근 떠오르는 '울트라 슈퍼갑'은 단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모두 그를 비켜갔다.

행정부가 울트라 슈퍼갑을 대하는 자세

 지난 1월 서울 중구 신세계 본점 앞에서 열린 신세계그룹 무노조 경영 규탄집회
지난 1월 서울 중구 신세계 본점 앞에서 열린 신세계그룹 무노조 경영 규탄집회 ⓒ 오마이뉴스 유성호

검찰, 공정위, 노동청 등이 모두 정·용·진, 이 이름 세 글자를 자신들의 '실적'에 올리지 못했다는(또는 않았다는) 최근 뉴스들은 그가 행정부도 어찌 하지 못하는 슈퍼갑임을 확실히 보여준다.

검찰과 공정위가 합동으로 나선 소위 '동생 빵집 밀어주기 사건'. 이마트 등 신세계 계열사들이 정 부회장의 동생 정유경 그룹 부사장이 대주주로 있던 신세계SVN(전 조선호텔 베이커리)에 판매 수수료 인하 등의 부당 지원을 했다는 것이 골자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의 서슬은 한때 시퍼렇게 살아 있는 듯했다. 작년 11월 신세계 그룹 압수수색, 올해 2월에는 정 부회장 소환조사도 이뤄졌다. 하지만 지난 5월 검찰이 공정위에 전달한 고발 요청서에는 정작 정 부회장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이를 근거로 지난 25일 공정위 고발 명단에서 정 부회장의 이름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경제개혁연대는 "명백한 봐주기 수사"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명백한 봐주기로 의심되는 일은 그전에도 있었다. 이마트 노조 설립 방해 및 불법 사찰 사건을 조사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신세계 임직원 17명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단, 정용진 부회장 이름만큼은 역시 검찰 송치 명단에서 빠졌다. 장하나 민주당 의원은 "재벌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라며 역시 강력하게 반발했다.

울트라 슈퍼갑의 종잣돈, 사법부의 '이상한 저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2009년 11월 30일 총괄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신세계 '전면'에 등장했다. 사진은 당시 정 부회장을 비중 있게 다룬 <매일경제> 보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2009년 11월 30일 총괄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신세계 '전면'에 등장했다. 사진은 당시 정 부회장을 비중 있게 다룬 <매일경제> 보도 ⓒ 매일경제 PDF 캡쳐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슈퍼갑의 종잣돈 마련 방식에 일찌감치 '저울'을 들이댄 적 있다. 2010년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가 경제개혁연대와 신세계 소액 주주들이 정 부회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사례가 그것이다. 핵심 쟁점은 광주신세계의 유상증자 방식이었다.

1998년 광주신세계는 최대 1만9434원으로 평가되는 주식을 단 5천 원에 헐값으로 발행한다. 황당한 것은 당시 대주주였던 신세계그룹이 이 주식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헐값 주식을 싹쓸이한 주인공은 정 부회장이었다. 그리고 2002년 광주신세계가 상장되면서 정 부회장은 엄청난 시세 차익을 얻었다.

하지만 "신주가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발행됐다고 단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 "정 부회장의 신주 인수가 신세계와 관련한 이사의 자기거래라고 볼 수 없다"는 논리로 법원의 저울은 정 부회장 편에 기운다. 대기업이 유능한 로펌 변호사들을 써서 이끌어낸 승소일망정, 그로 인해 주주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경제개혁연대의 반론은 대부분 언론에서 철저히 묻혔다.

현재 광주신세계 주가는 25만8500원(30일 기준). 2002년 상장 당시 유상증자 가격이 한 주 당 3만3천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폭등한 셈이다. 정 부회장이 광주신세계 지분 52.08%(83만3330주)를 확보하고 있으니, 주식평가액만 2154억1580만 원에 이른다. 그가 40대에 개인재산 1조원 클럽에 이름을 올린 데는 사법부의 '이상한 저울'이 있었던 셈이다.

다른 슈퍼갑 총수처럼, 국회의 부름 정도야

 국회 국정감사·청문회 불출석 건으로 기소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 선고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청문회 불출석 건으로 기소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 선고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마저도 그 통제 밖에 있는 슈퍼갑이니, 국회의 부름 정도야 그다지 두렵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슈퍼갑 총수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정용진 부회장은 작년 국정감사·청문회를 통해 모두 세 차례 증인으로 소환됐으나 한 차례도 국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정 부회장이 받은 징계는 1500만 원 벌금형. 현재 그의 재산 평가액(1조3860억 원) 0.001% 정도에 불과한 금액인 만큼, 정 부회장으로서는 전혀 따끔하지도 않을 벌이다. 앞서 한 대기업 관계자 말을 빌리면, 의원들 앞이라고 우는 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뜻도 된다.

그나마 슈퍼갑을 울상 짓게 만든 것은 엉뚱하게도 도둑이었다. 2001년 한 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왕 다이아몬드 도난 사건. 범인은 경비회사 직원으로 당시 정 부회장의 부인이었던 배우 고현정씨의 4.5캐럿 다이아몬드 반지와 정 부회장 바지에 들어 있던 50만 원짜리 수표를 안방에서 훔쳤다가 경찰에 검거됐었다.

비슷한 사건은 2007년에 다시 일어났다. 1년 가까이 27차례에 걸쳐 5700만 원어치의 현금, 수표, 귀중품을 훔친 범인이 역시 정 부회장 자택 경비원이었던 것. 당시 범인은 200만 원짜리 검정색 구찌 양복 웃옷, 100만 원짜리 돌체 앤 가바나 구두 등 정 부회장의 명품에도 손을 댔다고 한다.

간 큰 도둑에게 뒤통수 맞은 슈퍼갑 대응은?

내부의 적에게 뒤통수를 맞은 슈퍼갑 측 대응은 다소 궁색했다. 관할 경찰서가 서울 용산경찰서였지만 엉뚱하게도 방배경찰서에 신고했다고 한다.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렸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간 큰 도둑 덕분에 슈퍼갑 면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꼼수가 발동했던 모양이다.

당시 경찰의 대응 또한 궁색하긴 마찬가지였다.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면서 절도 사건 피해자로 정 부회장 대신 관리인을 지목해 대기업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구설수를 자초했다. 울트라 슈퍼갑의 이름을 대하는 '힘없는 경찰'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 셈이다.

힘없는 서민에게는 울트라 슈퍼갑인 대한민국 삼부, 그들도 통제하지 못하는 울트라 슈퍼갑을 흔든 이가 한낱 '도둑님'이었다는 것은 그래서 '웃프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정용진#신세계#정유경#슈퍼갑#이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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