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는 60년, 역사 속으로 들어가면 천 년 전에 소금을 만들어 먹던 선조들의 전통방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염은 햇볕에 말린 갯벌흙을 바닷물로 걸러 가마솥에 끓여 만든 소금으로 6~7일간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갯벌에서만 가능하다. 태안 낭금갯벌은 유일한 최적의 장소다."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유일할 정도로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금리의 '낭금갯벌'은 자염을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인 모래가 20% 정도 섞인 갯벌이자 조금 때 6~7일간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조건을 모두 갖췄다.
하지만, 정작 태안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조차 전통방식의 소금을 만드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태안문화원에서 전통소금인 자염 만들기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자염축제를 개최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장으로 삼고 있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올해는 태안문화원이 2008년 이후 5년 만에 역사 속에 사라졌던 짠맛인 자염이 생산되는 전 과정을 재연해 눈길을 끌고 있다.
태안문화원 관계자는 이번 재연의 의미에 대해 "1950년대까지도 명맥을 이어오던 자염은 천일염의 경쟁에 밀려 사라졌고,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졌다"며 "이제는 경제 원리를 떠나서 문화적으로 자염을 재연하려고 해도 크고 작은 간척사업으로 인해 자염을 재연할 수 있는 갯벌이 거의 사라졌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자염축제가 열리고 있는 낭금갯벌과 관련해 "이곳도 1964년 간척사업이 실시돼 방조제의 물막이 공사까지 진행됐으나 우여곡절 끝에 제방이 파손돼 현재의 갯벌이 살게 됐다, 이것은 문화적으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생활문화로서의 자염은 우리나라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전통문화의 본질로, 조수에 따라 하루 두 번 잠기는 매력적인 갯벌의 또 다른 이면에서 조상들의 진정한 삶의 모습과 애환이 담긴 역사를 다시 한 번 그려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렇듯 곡절 많은 사연이 담긴 자염. 지난 3일부터 4일까지 열린 태안 낭금갯벌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통문화와 자연의 만남 '낭금 갯벌의 특별한 소금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구운 소금과 전혀 다른 자염, 어떻게 만들어지나
먼저 자염에 대해 알아보자. 자염(煮鹽)은 천일염이 보급되기 이전에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 먹던 대중적인 전통소금이다. 이는 햇볕에 말린 갯벌흙을 바닷물로 걸러 염도를 높인 다음 가마솥에 끓여 만든 소금이며 구운 소금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자염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자염은 조금(조수간만의 차이가 적은 기간) 때 약 6~7일간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갯벌에서 웅덩이를 파고 중앙에 통자락(물이 모이는 통)을 설치한 다음 웅덩이의 흙을 통 주변에 펼쳐놓고 물이 닿지 않는 동안 갯벌이 잘 마르도록 소를 이용해 써레질을 해서 말린다.
수일간 갯벌흙을 잘 말린 다음 다시 흙을 웅덩이에 밀어 넣으면 사리 때 바닷물이 그곳에 스며들어 염도가 높은 물이 중앙에 묻혀 있는 통 속에 모이게 된다. 여기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통 속에 고인 물을 소금 가마에 넣고 8시간 정도 끓여서 소금을 만든다.
태안문화원은 이번 자염축제를 통해 이같은 전 과정을 생생하게 재연했다. 특히, 써레질 등은 축제를 관람 온 체험객들과 함께 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또한, 이번 자염축제에는 자염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인 통자락 만들기·갯벌 말리기·간수 나르기·뜸 엮기·소금 굽기 등 전통자염 생산 전 과정을 눈으로 뿐만 아니라 함께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도 마련했다.
자염만들기 체험뿐만 아니라 체험장 곳곳에서는 요즘 세대들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소달구지 타기 체험을 비롯해 전통적인 염도측정 방법 체험·솟대 만들기·이엉 엮기·자연물을 이용한 액자 만들기·맨발 갯벌체험·수차 돌리기 체험·망둥어 낚시·갯벌생물 관찰·갯벌 놀이터 등 다양한 체험거리도 마련해 축제장을 찾은 체험객들에게 색다른 추억거리를 선사했다.
이에 더해 태안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재인 충남 무형문화재 제24호인 설위설경보존회(회장 장세일)의 발표회도 함께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또한, 종이오리기 체험·무료사주보기 체험 등과 함께 요즘 만나보기 힘든 토속 신앙을 접해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됐다.
태안문화원 정지수 사무국장은 "자염축제가 열리는 낭금갯벌까지는 교통도 불편하고 화려한 볼거리도 없지만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축제를 찾고 싶다면 자염 축제가 제격"이라며 "자연이 허락해야만 가능한 축제고, 5년 만에 전과정이 재연되는 만큼 이번에 자염축제를 찾은 체험객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하여 정 사무국장은 "전 과정을 재연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준비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번 자염축제 이후 당분간은 전 과정 재연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태안 자염이 천일염보다 좋은 이유는?
영화 <식객 - 김치전쟁>에서 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소금이 태안에서 만들어진 전통 방식인 것으로 소개돼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동시에 태안 전통 소금 '자염'이 재조명된 바 있다. 특히, 극중 세계적 요리사 배장은 역할의 김정은이 최고의 소금을 얻기 위해 찾은 곳이 자염 축제가 열린 태안군 근흥면 자염 체험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태안 자염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영화에는 김정은이 갯벌에서 소 괭이질부터 삽질 하기, 가마솥 끓이기까지 자염 생산절차를 거쳐 만든 자염을 이용해 김치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이번 축제에서는 이런 과정이 재연된 것이다.
태안 자염은 영농조합법인 소금굽는 사람들(대표 신세철)에 의해 '태안 자염'이란 이름으로 지난 2002년 최초 시판된 뒤 지금도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태안자염은 칼슘이 천일염에 비해 약 1.5배, 유리 아미노산이 5배나 높은 반면 염분은 상대적으로 적어 김치를 담글 때 유산균 개체수를 증식시키는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염은 한 번 생산하는 데 8~10시간이 넘게 걸리고 생산량 또한 적어 대량 생산이 어려운 게 단점으로 지적된다. 이에 영농조합법인은 소량 명품화 전략으로 '태안 자염'의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태안의 소금은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
태안반도는 리아스식 해안구조로 넓은 갯벌이 발달하여 전통적으로 자염생산이 많이 이뤄져왔다. 태안은 물론 서산 주변과 안면도 주변 일대에 걸친 자염 생산이 많아 정부에서는 무분별한 소나무 벌채를 우려해 송금 정책을 내리고 소금 생산을 금지시켰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조선시대 세종 28년(1446)에 소금을 관장하는 의염색에서 전국의 자염을 시험한 결과 태안에서 구운 소금이 1023석으로 가장 많았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해진다.
20세기 초엽 우리나라의 지역별 자염 생산량은 전남 42%, 경기 18%, 충남 12%, 경남 8% 등으로 분포됐는데, 특히 태안 지방은 일제시대까지 충청남도 전체 소금 생산의 50%를 넘을 정도로 활성화돼 그 소득이 농업생산에 뒤지지 않았다고 한다. 태안에서는 200여 곳의 염벗이 있었으며, 통조금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생산하기도 했다.
현재 태안지방에 사는 인구의 절반은 소금생산 종사자(염한)의 후손이라할 만큼 광범위하게 종사했다. 종사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 생산된 소금은 작은 포구들을 통해 강경, 군산 하구까지 교류영역을 확대시켜 나갔다고 전해진다.
1970년대 이후 태안은 AB지구 간척사업과 원북화력발전소 등의 건립으로 인한 C지구의 매립, 나아가 주변의 크고 작은 매립과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전통 자염 생산이 가능한 지역은 마금리 낭금갯벌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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