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①] 대통령에게 사과하면서 욕보인 관료들박근혜 대통령 방미에 동행했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인턴 직원을 성추행한 이유로 경질됐을 때,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먼저 홍보수석으로서 제 소속실 사람이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고 죄송스럽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이 사과문이 발표된 후 청와대 대변인이 저지른 성추행에 대해 왜 대통령에게 사과하느냐는 질책이 이어졌다. '셀프 사과'라는 신조어가 생긴 게 바로 이때다.
그 다음 날, 윤창중 전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자청했는데 그의 첫마디 역시 대통령에 대한 사과로 시작한다.
"먼저 제가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국민 여러분과 박근혜 대통령님께 거듭 용서를 빌며 머리숙여 깊은 사죄드린다."그 이후로 세간에는 이런 말이 떠돌았다. "참모가 실수를 하면 노무현은 사과를 하고, 이명박은 진노를 하고, 박근혜는 사과를 받는다."
이남기 전 수석이나 윤창중 전 대변인은 대통령에게 사과를 함으로써 대통령을 욕보이고 말았다.
[풍경②] 굴욕적인 행보 보여준 CJ 그룹
박근혜 대통령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하니까, CJ제일제당은 'CJ리턴십 프로그램'이라는 걸 내놓고 5000개의 일자리를 만든다고 발표를 했고, CJ그룹 차원에서는 아르바이트 직원 1만5000여 명을 정규직 시간제 사원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다. CJ E&M은 박근혜 대통령과 5촌 관계인 은지원씨가 등장하는 자체광고영상을 제작해서 방송을 하고 있다. '창조경제를 응원한다'는 내용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CJ그룹이 박근혜 정부와 호흡이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모든 일들이 이재현(53) CJ그룹 회장이 탈세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된 이후 박근혜 정부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 보고 있다.
무릎을 꿇은 정도가 아니라 바닥을 기는 듯한 굴욕적인 모습이다. 녹화를 마친 tvN의 새 프로그램 '최일구의 끝장토론'은 정부의 눈에 거슬릴까 봐 내놓지 못하고 있고, 기존에 논란이 됐던 프로그램들은 없애 버리는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크게 축소됐다.
CJ 그룹의 이런 굴욕적인 모습은 역으로 박근혜 정부의 눈 밖에 나면 기업 하나쯤은 우습게 파탄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잦은 사고로 물의를 빚고 있는 삼성이나 비정규직 문제 관련해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며 갈등을 빚고 있는 현대차에 대한 정부의 감싸기와 확실히 비교가 된다.
CJ가 박 대통령의 5촌 은지원을 이용한 창조경제 홍보를 한 번 방영할 때마다 국민들은 CJ의 굴욕과 권력을 오용하는 박근혜 정부의 모습만 떠올리고 있다는 걸 CJ가 모르는 걸까. 아니면 박근혜 정부가 모르는 걸까.
[풍경③] 종이 접어 주머니에 넣는 게 '창조적'이라니...
8월 5일 <국민일보>는 '朴(박) 대통령 주머니 옷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놨다. 박 대통령의 옷에는 늘 넉넉한 크기의 손주머니가 달려 있단다. 여기에는 늘 펜과 메모지가 들어 있는데 A4 용지를 4등분해 접은 다음 깨알 같은 글씨로 적기 때문에 1장에 4장 분량까지 쓴단다.
이는 "'자그만 물건이라도 아껴 써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생활습관을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이며 "쉽게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종이 한 장조차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기사에 담겨 있다.
기사의 마지막은 박근혜 대통령을 이명박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비교하는 것으로 끝난다.
"박 대통령이 전임자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달리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회의 때 현안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짚을 수 있는 것도 메모 습관에서 나온다고 한다.""역대 대통령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도 유명한 메모광(狂)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방면에 걸쳐 박식했으며, 참모들에게 각종 지시를 내릴 때도 메모를 활용했다."거꾸로 보면 현안을 꼼꼼하게 짚을 수 없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차이를, 다방면에 박식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공통점을 찾는 내용임을 파악할 수 있다.
포털 다음의 해당 기사에는 반나절 만에 댓글이 1000개 이상 달렸고, 대부분은 박근혜 대통령 띄워주기가 너무 심하다는 비판적인 내용이다. 회삿돈을 빼돌려 개인적 용도에 쓴 혐의로 법정 구속된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이 이번에는 친자확인소송에 연루된 것과 연결해 <국민일보>가 정부에 잘 보여야 하는 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눈에 많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기사를 보고 개인적으로 좋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독자들은 이런 지나친 아부성 기사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는 걸 알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이젠 '직언'을 들어야 한다박근혜 대통령은 예전에는 근혜공주 혹은 수첩공주로 불리다가 청와대에 들어 가고 나서는 언제부터인가 '여왕'으로 불린다. 좋은 이유로 그런 게 아니라 대통령은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참모들은 지나치게 대통령 앞에 굽실거리는 듯 보여서 그렇다.
참모·기업·언론할 것 없이 모두 박근혜 대통령 앞에 직언 한마디 못하고 아부만 늘어 놓는다면 그건 대통령을 위하는 게 아닐 뿐더러 이 나라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그런 아부의 목소리 때문에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게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TV도 신문도 더 이상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그걸 원했을 수도 있고, 대통령이 그걸 원한다고 지레 짐작해 알아서 기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대통령의 앞날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대통령이 귀를 열어야 한다. 아부의 목소리가 아니라 직언을 들어야 한다.
대통령을 향한 아부와 굴종의 목소리만 들리는 이 참담한 현실을 벗어나야 대통령과 이 나라가 불행을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