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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왜 한여름에 태어나 이런 고생을 하는지 몰라!"

할머니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시면서도 좁은 주방에서 땀을 흘리시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잡채를 만들어주시곤 하셨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누구 하나 할머니의 생신을 챙겨주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생신날 직접 요리를 하고 상을 차려야 했던 고된 삶에 대한 할머니 스스로의 푸념이었던 듯하다. 할머니는 그럼에도 애지중지 키운 손녀딸이 좋아하는 잡채를 매년 당신의 생신날 만들어주셨다. 어린 시절, 나는 그저 옆에서 빨리 음식이 만들어지기만 애타게 기다렸다.

직접 차를 몰고 집으로 가늘 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났다.

'이렇게 좋은 차에 할머니를 모시고 다닐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난 한 번도 미역국 끊여드릴 생각을 못했을까? 참 우리 할머니는 정말 복도 없지…, 고생만하다가 돌아가셨네….'

그날 따라 할머니가 그리웠지만, 지금 내가 할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하늘에 계신 할머니께서 그곳에서 평안하길 기원하는 게 전부였다.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라'는 말을 왜 사람들이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지금 내가 최선을 다해 잘해드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게 됐다.

"할아버지가 편하게 세상 떴잖아... 그게 선물이지"

얼마 전 식욕이 없어 식사를 잘 못하신다는 친척 할머니(외종조모·외할머니 남동생의 아내)가 떠올랐다. 늘 규칙적인 생활과 봉사를 실천하시는 친척 할머니께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더욱이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역시 많이 도와주셨다. 할머니의 몸을 깨끗이 닦아 주는 '습'과 굳은 몸을 펴주는 '염'까지 모든 일을 직접 해주셨다. 마지막에 우리 할머니 예쁘게 해주신다고 얼굴에 로션도 발라주고 머리도 빗겨주셨던 친척 할머니셨다.

당시 나도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드렸지만, 고인의 몸은 어찌나 무겁고 차갑던지 젊은이도 들고, 옮기고, 닦기에 힘들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친척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이런 봉사를 하고 계신다. 하지만 늘 화난 듯한 표정에 잔소리가 조금 많아, 나는 친척 할머니가 껄끄럽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전화기 버튼을 눌러보지만 '열 번 정도 울려서 받지 않으면 얼른 끊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끊으려는 순간 친척 할머니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친척 할머니를 만난 나는 함께 근처 한식당으로 이동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근황을 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많이 외롭고 힘드시죠? 혼자 식사하시기 싫으실 때나 맛있는 거 드시고 싶을 때 연락하세요."

친척 할어버지는 몇 해 전 퇴근 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소파에 앉은 채로 돌아가셨다. 갑자기 친척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당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평상시 신장이 좋지 않아 병원에 한 달에 한 번 다니시긴 했지만, 활발히 사회 활동도 하시고 그날도 평상시와 다름 없었다.

"아니, 뭐가 외롭고 힘들어. 니 할아버지가 그래도 나한테 마지막 선물을 해주고 간건데. 나 고생할까봐 아주 편안히 몇 초 만에 죽었잖아. 얼굴이 아주 편안해 보였어."

하긴 나 또한 할머니를 몇 년간 고생하며 모셨다. 죽음 봉사를 하는 친척 할머니는 마지막길에 갖은 고생을 하며 떠나는 이들과 가족들의 노고를 잘 아실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몇 년을 그렇게, 조금 힘들게 보냈어도 아직도 할머니가 그립고 아쉽다. 하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었음에도 친척 할머니는 너무나 의연하셨다.

친척 할머니께서 짜장만을 안 시켜 드시는 이유

사연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셨다. 정말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그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셨기에 지금의 할머니가 있는 듯하다. 나이가 훈장은 아니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겨냈다는 증거이기에 친척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한 해 한 해 옛 이야기를 웃으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친척 할머니와의 이야기를 통해 친척 할머니께서 40대 자궁암 수술을 받으셨던 것도 알게 됐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매일 외부 활동을 하시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활보하시는 할머니가 항암 치료로 몇 년을 고생하셨을 줄이야.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어떤 시름도 잠시 잊게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친척 할머니가 외식하는 것을 거의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일전에 중국집에 가서 짜짱면을 사드렸는데, 직접 짜장면을 시켜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셨다. 마침 그때 생각이 나서 물었다.

"참, 할머니 왜 짜장면도 안 시켜드세요? 이젠 맛있는 것도 많이 사드시고 아니면 저한테 사달라고 하세요."
"우리 큰 아들이 생각나서 그렇지. 짜장면 한 그릇 사먹이고 싶었는데, 그때는 너무 가난해서…."

친척 할머니께서는 말끝을 흐렸다. 친척 할머니의 큰아들은 17세에 갑자기 병원에 입원해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렇게 빨리 (큰아들이) 죽을지 몰랐지. 집안이 어렵다고, 지가 알아서 실업계 고등학교 간다고 지원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얼마나 착하고 성실했는데…."

예전에 친척 할머니 집에서 선한 인상에 잘생긴 큰오빠의 사진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렵던 시절 짜장면 한 그릇 사먹여 보지 못하고 보낸 아들이 얼마나 친척 할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그걸 생각하니 친척 할머니가 억척스러운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난 하늘나라에 돈을 저장할 거야"

친척 할머니의 자전거 바구니가 앞뒤로 크게 있다. 친척 할머니께서는 빈 병을 주어 모아 기부하신다.
친척 할머니의 자전거바구니가 앞뒤로 크게 있다. 친척 할머니께서는 빈 병을 주어 모아 기부하신다. ⓒ 공응경

친척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밥 먹다 말고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이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역시 친척 할머니는 "성당은 잘 나가고 있냐?" "돈은 열심히 모르고 있냐?"라고 물으시며 연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신다. 여전히 할머니는 내게 있어 껄끄러운 상대다.

나 역시 젊은 세대이기에 친척 할머니가 시키는 일들이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한 번은 이사를 하는데 포장이사에 맡겼더니, 어떻게 그렇게 돈을 막 쓰냐고 야단을 치셨다. 나는 포장이사에 맡기는 게 시간도 절약되고, 잘못하다가 다칠 수도 있고, 내가 다른 일로 돈을 더 버는 게 합리적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평생을 한 푼 두 푼 아끼며 살아오신 친척 할머니께 포장이사란 '돈 아낄 줄 모르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다. 나는 이제 친척 할머니께서 노년을 조금 더 편하게 보내시고, 여행도 다니시고, 문화센터 강좌도 듣고, 드시고 싶으신 거 사드시기도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래서 물어봤다.

"할머니, 근데 문화센터 같은 데 운동하러 다시니시 그러세요?"
"응. 나도 생각해 봤는데, 내가 봉사활동하러 다니느라 시간이 없어서 다닐 수가 없어."
"그래도 모아두신 돈도 있으신데…. 몸도 힘드신데 좀 쓰면서 편하게 지내셔야죠."
"난 그냥 하늘나라에 돈을 저장할 거야. 교부금 열심히 내고, 기부 많이 한 다음에 죽어서는 천국에서 살 거야. 사실 내가 당뇨도 심한데 이렇게 잘 돌아다닐 수 있는 건 바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더욱이 내가 요즘 잘 먹지도 못하는데, 크게 아픈 데는 없잖아. 암까지 걸렸었는데…. 이게 다 하늘에서 보살펴주기 때문이야."

친척 할머니에게는 화려한 옷이나 맛있는 음식은 값진 게 아니었다. 되레 천국의 재물을 모으는 노력이 더 값지고 보람찬 것으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친척 할머니께서는 매일 아침 새벽, 성당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며 길거리에 버려진 병이나 휴지를 줍고, 봉사활동을 통해 받은 돈을 모아 한 달에 50만 원씩 기부하신다. 그래서일까. 친척 할머니의 자전거는 유난히 앞뒤로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바구니가 달려 있는데, 그 크기도 유난히 크다.

어떻게 보면 친척 할머니는 평생을 모으고 아껴 남을 위해 쓸 줄만 알 뿐 정작 본인은 쓸 줄 모르는 '착한 바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식사를 하며 나눈 이야기를 통해 같은 여자로서 친척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됐다. 친척 할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각각의 삶 속에는 고난과 역경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인생을 어떻게 잘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친척 할머니는 자신만의 확실한 답을 갖고 살아가는 분이라 생각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서로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고 할 만큼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전쟁과 보릿고개를 경험하신 분들이시다. 가끔 우리 젊은이들이 보기에 억척스럽고 고집스러워 보여도 조금은 넓은 마음으로 그분들을 이해해 주고 존경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나 또한 이제 친척 할머니의 잔소리를 조금은 편하게 편하게 들을 수 있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가족 인터뷰> 공모 응모기사입니다.



특별기획-여행박사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하는 '가족이야기' 공모전
#짜장면#자전거#기부#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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