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나가보니 흙 묻은 삽과 곡괭이가 놓여져 있었다. 여자1호가 이웃집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그 옆에는 분홍색 보자기에 쌓여있는 상자가 있다. 우리는 오늘 이 상자를 묻으러 어딘가로 가야한다.
상자 안에는 이제 반년 살은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있다. 지난 밤 자정 넘어 찾은 그 녀석은 고양이 오월이다. 우리 집 이름인 '오월이네 집'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5월에 데려와서 오월이, 우리집에 오다
오월이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오월 제주민속오일장에서다. 없는 게 없는 제주오일장은 개와 고양이, 오리, 닭 등도 판다. 대평리에서 혼자 지내던 때 집 안에 생명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것임을 알기에 며칠을 고민하다가 오일장으로 향했다.
유기동물보호소로 가볼까 하다가 오일장 철창 안에 전시되듯 갇혀 있는 고양이들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탕거리가 되기 전에 데려오자는 마음이었다. 귀엽게 생긴 얼굴 탓인지, 오월이를 데려가려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남편에게 고양이를 데려가도 되겠는지 통화를 하고 있는 여자와 나는 입시 눈치 작전을 벌이듯 서로의 눈치를 보았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할 필요가 없는 나의 승리였다.
고양이를 파는 아줌마는 함께 갇혀 있는 형제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는 녀석을 꺼내어 목에 줄을 묶고 신발 상자에 담아서 내게 주었다. 3만 원, 그것이 녀석을 데려온 값이었다. 오월에 만났기에 오월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암컷인 줄 알고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데 수의사가 살펴보더니 "수컷이네요!" 했다. 고민에 빠졌지만 오월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들도 세상엔 분명히 있을 거라고 우기며 그냥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시간이 갈수록 녀석은 자기 이름을 인식했으며 기특하게도 "오월아"라고 부르면 "에옹" 하고 대답하며 다가오기도 했다. '육지 것'인 나는 제주도에서 태어난 녀석에게 "넌 제주도가 고향이구나… 왠지 부럽다"며 말을 걸기도 했다.
녀석 똥과 뒹굴던 하루하루, 마음 붙일 곳 있어 좋았다
솜털 같이 가벼운 녀석은 사교성이 좋아서 사람을 좋아했고, 내가 누워있으면 목과 가슴, 배 위로 올라탔다. 녀석이 올라와서 자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따뜻했다. 고양이는 아무리 어려도 본능적으로 상자에 모래를 깔아주면 볼 일을 해결하는 법인데, 오월이는 뭐가 불만이었는지 거의 매일 이불에 실수를 했다.
이게 뭔 냄새인가 싶어 눈을 뜨면 어김없이 나는 똥 위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중에는 덮을 것도 깔 것도 없어 맨바닥에 둘이 웅크리고 자기도 했다. 똥오줌을 못가리고 밤마다 물어뜯기더라도 함께 있는 게 좋았다. 집에 들어오면 텅빈 것 같던 방은 새끼고양이 한 마리의 체온으로 인해 마음 붙일 곳이 되어갔다.
한경면 저지리에 집을 구해 제주 이민자를 위한 쉐어하우스를 만드는 공사를 마치자마자 오월이를 대평리에서 데려왔다. 대평리의 단칸방에 있다가 마당과 텃밭이 있고, 방이 다섯개인 집으로 데려오자 이게 누구 좋자고 이사온 집인지 헷갈릴 정도로 오월이는 잘 뛰어놀았다.
오월이는 집 어디에나 있었고, 특히 마당에서 뒹굴뒹굴 굴러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여자1호의 친구들이 놀러와 있을 무렵 다시 밤마다 이불에 실례를 하던 녀석은 잠시 오월이에서 사월이로 강등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우리집은 '오월이네 집'이었다.
사라진 오월이, 찾아보니 할아버지 집 자루에...
오월이가 어두워져도 들어오지 않자, 나와 여자1호 그리고 이웃집 카페 부부까지 네 사람이 랜턴을 들고 도롯가와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오월이 이름을 부르고 다녔다. 밤 아홉시만 지나도 집집마다 불이 꺼지고 어둠과 적막함만이 남는게 제주도의 시골마을이다.
자정이 되어서까지 불빛과 사람 소리가 나자 불이 켜지는 이웃집이 있었다. 며칠 전 찾아가서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 사시는 집이다. 밤 늦게까지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하다며, 인사를 드리러 간 여자1호가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다 말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허물어진다.
할아버지는 자루 하나를 들고 오셨고, 먼 발치에서 보고 있던 나 또한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 고양이, 오월이는 그렇게 죽은 채로 돌아왔다.
"새벽에 고양이 한 마리가 집 앞에 눈 뜨고 코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있더라구…. 오늘 집에 제사가 있는 날인데 제사도 못 지냈네."넋이 나가 있는 나 대신 여자1호가 할아버지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했다. 할아버지는 자루 하나를 놓고 망연자실해 있는 우리를 보시고 오월이를 자루에서 상자로 옮겨 담아 주신다.
눈을 뜨고 피를 흘리며 죽어있다는 녀석이 오월이가 맞는지 불빛 아래서 확인을 해야 했지만, 그 모습을 보면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녀석의 마지막 모습을 그렇게 기억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나는, 비겁하게 여자1호에게 그 일을 떠넘기고 말았다. 혼자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할지 모르고 있을텐데,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제주 정착을 위해 모여서 사는 우리집에서 어느새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솜털 같이 가벼웠던 녀석, 땅으로 가다
오월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새벽부터 일을 나가는 이웃집들의 트럭에 치었는지, 뭔가를 잘못 먹고 죽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집집마다 다니며 우리집 고양이를 치었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울기만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여자1호가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다. 육지에 있는 반려동물화장터가 제주도에는 없었다. 수의사가 하는 말이 적당히 묻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집 뒤에 묻고 싶었지만 내 집도 아니고 임대인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땅 한 평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서러워지는 순간이다.
지난 밤 오월이 찾기를 도와주었던 이웃이 소식을 듣고 차를 가지고 왔고, 트렁크에 삽과 곡괭이를 싣었다. 오월이가 누워있는 상자를 들자 이 녀석이 이렇게 무거웠나 싶었다. 데려올 땐 솜털같이 가볍던 녀석이 이렇게 무거워지다니.
살아있을 때와는 달리 죽으면 처져서 더 무겁게 느껴지는 법이겠지 하며 저지오름으로 향했다. 오름 입구에 삽질을 해서 구덩이를 파고 오월이를 묻고 왔다. 온 집안을 뛰어다니던 녀석이 사라지니, 집안이 휑해서 견딜 수가 없다. 집안에 날아다니는 풍뎅이를 보면서도 녀석이 다른 건 몰라도 풍뎅이 하나는 잘 잡았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오월이네 집'에 오월이가 없으니 집 이름을 바꿔야 하나 싶었지만 만약 시간이 지나 다른 녀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면, 그 녀석 이름을 오월이라고 할 생각이다. 오월이가 간 이후로 텃밭에 심은 상추와 대파에 물을 더 정성들여 주게 된다. 무언가 정을 줄 곳이 필요해서인가보다 싶다. 오일장 철창 안에 떼놓고 왔던 녀석의 형제는 어디에 있을까.
제주도에서 산 지 1년, 별 일이 다 생기는구나 싶지만, 이 집이 잘 되라고 그 녀석이 다 싸안고 간 모양이라는 지인의 말처럼 제주 이민자들을 위한 이 집에서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며, 오월이를 기억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