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넓은 이마를 자랑하는 두 대머리가 있었다. 한 분은 내 아버지, 다른 한 명은 전두환 대통령이다. 아버지는 나와 일상을 함께하는 대머리, 전두환 대통령은 TV에서만 볼 수 있는 대머리였다. 어린 시절인 30여 년 전, 내가 만난 세상의 모든 대머리는 두 분이 전부다. 그 외 기억나는 대머리는 없다.
아버지의 대머리는 정말 시원했다. 눈썹 위로 넓은 이마를 거쳐 머리 중앙 정수리에 닿을 때까지 털 하나 없었다. 그뿐 아니다. 정수리를 지나쳐 한참 아래 뒤통수 정도는 가야 머리카락이라 부를 수 있는 털이 모여 있었다. 한마디로, 아버지의 헤어스타일은 전두환 대통령과 무척 흡사했다.
어린 나는 아버지의 대머리를 그리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게 다 전두환 대통령 덕분(?)이다. 아버지 헤어스타일과 똑같은 분이 대통령이니 부끄러울 이유는 없었다. 보신탕집이었던 우리 집을 자주 찾는 단골손님 중에는 아버지를 향해 경례를 하며 "각하, 저희 보신탕 좀 먹으러 왔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떠는 사람도 있었다. 술에 취하면 그들은 종종 나를 무릎에 앉히고 꼬인 혀로 강조했다.
"인마, 너희 아버지는 대통령이야! 너도 봤지? 전두환 대통령이랑 머리가 똑같잖아!"
시간이 지나 또 한 명의 대머리가 나타났다.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해 더는 TV에 나오지 않자 그가 빈자리를 메우듯 갑자기 등장했다. 그 역시 시원한 대머리였다. 사람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닮았다고 했지만, 내 눈에 그는 아버지와 똑같았다. 그는 탤런트 박용식이다. 그는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그동안 TV에 나오지 못하는 등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같은 대머리를 탄압하는 전두환의 정체를 안 뒤, 나는 아버지가 탤런트가 아닌 보신탕집 사장이어서 무척 다행이라 생각했다.
세월은 흘렀다. 아버지는 1996년 돌아가셨다. 그때 전두환은 무기징역 및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었다. 전두환 은닉 재산 찾기와 추징금 환수 작업이 한창인 요즘, 별이 지듯 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2일 탤런트 박용식씨가 돌아가셨다. 이렇게 내가 알던 세상의 모든 대머리 세 분 중 전두환만 남았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 아버지의 아들인 나는 이젠 누가 봐도 대머리, 혹은 대머리 진행중인 남자다. 내 이마는 다행히(?) 대학을 졸업한 2001년부터 빠지기 시작했다. 그때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스트레스가 없었다고 하면 그건 100% 거짓말이다.
한 올 한 올, 때로는 뭉텅이로 빠지는 머리카락 앞에서 초연한 20대 남자는 거의 없을 듯하다. 게다가 여기는 얼짱, 몸짱도 모자라 뒤태를 따지고 '꿀벅지'를 논하는 대한민국이 아닌가! 이런 대한민국에서 나는 인터넷에 '탈모 방지 방법' '탈모를 막는 좋은 음식' 등을 검색하면서 20대 후반의 여러 날을 보냈다.
가는 세월 잡을 수 없고, 빠진 머리 논에 모 심듯 다시 심을 수 없다. 인류의 의학기술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서른살 이후부터다. 머리 빠지는 나를, 저지선 없이 한없이 넓어지는 이마를, 그리하여 아버지와 전두환을 닮아가는 나의 미래를 조금씩 긍정하기 시작했다. 체념은 종종 자기긍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뭐 딱히 피할 방법도 없다. 부정해봤자 나만 괴롭다.
어린 시절엔 몰랐던 세상의 무수한 대머리도 날 위로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할리우드의 브루스 윌리스, 테니스의 안드레 아가시, FC바르셀로나의 이니에스타, 그리고 한국의 도올 김용옥 등. <대머리열전>을 써도 좋을 만큼 만국의 여러 대머리들은 자기 위치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성취를 이뤘다.
그렇다면 '대머리 박상규 기자'의 성취는 어땠을까? 뭐, 사실 아직 논할 단계는 아니다. 누구 말마따나 훗날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 오늘날 대머리는 사회 곳곳에서 차별없이 활동한다. 그런데 언론계에는 많지 않은 듯하다. 취재 현장에서 나와 같은 대머리 기자를 거의 못 봤다. 그 탓인지 나는 종종 현장에서 차별(?)을 받았다.
언젠가 4대강 사업 현장 취재를 위해 남양주에 갔을 때다. 연세 지극한 한 농부를 만났다. 내가 꾸벅 인사를 하니, 그 농부 나보다 더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국장님이 오시고...."라고 말했다. 내가 "저 국장님 아닌데요" 했더니, 그 분 "그래도 간부가 직접 와주셔서 참 고맙습니다"라고 내 손을 꼭 잡았다.
이뿐 아니다. 서울 광화문 외교부 기자실에서는 경비아저씨에게 쫓겨날 뻔했다. 나를 기자가 아닌 상인으로 오해한 거다. 사실 이런 일, 그동안 무수히 겪었다. 최근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보다 늙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사장보다 늙어 보이는 사원의 비애, 만국의 대머리들은 이 마음 십분 이해할 거다.
언론계에서 대머리가 유독 없는 곳이 있다. 대한민국 방송사가 그렇다. 머리 훌렁 빠진 기자가 리포팅 하는 모습 봤나? 대머리 앵커와 아나운서 봤나? 아마 거의 못봤을 거다. 대머리가 대통령까지 한 나라에서 이건 좀 심하다. 사실 이쯤되면 외모 차별이 의심되니,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 한 번 내봐야 한다.
언제쯤 방송사 대머리 기자와 앵커를 볼 수 있을까? 그나저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언제쯤 추징금을 다 납부할까? 대머리에게는 '공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속설이 따라 다니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 때문에 정설로 굳어질까 걱정이다.
내가 그냥 방송사 경력기자로 들어가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리포팅 해볼까? 사실 그보다는 <오마이TV>로 데뷔하는 게 더 빠를 듯하다. 여러분은 조만간 연희동에 선 전두환 닮아가는 대머리 박상규 기자의 시원한 리포팅을 공짜로 볼 수도 있다.
머리 빠질 염려는 마시라. 여러분은 자발적으로 돈 내는, 10만인클럽 회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