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꾸똥꾸야! (국정원) 너네 해체할 거야, 죽었어!"서울시 서초구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 앞. 네이버 지도도 위치를 안 알려주는 이곳에서 "국정원 해체"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격렬한 시위도, 장엄한 기자회견도 아니다. 꽃무니 칠부바지와 짙은 선글라스를 몸에 걸치고 우아하게 돈가스를 써는 이들에게 국정원 앞은 올 여름 '피서지'이다. 우거진 나무와 쉼 없이 울어대는 매미소리, 눈만 감으면 영락없는 숲 속 계곡이다.
국정원으로의 피서를 감행한 주인공은 서울민권연대 소속의 김수근(31), 박현탁(24), 김효준(32)씨. 최근 유튜브 영상 '국정원으로 피서간 겁 없는 녀석들(
영상보기)'으로 이슈가 된 이들은 2일부터 국정원 앞에 자리를 펴고 '유쾌한 집회'를 진행 중이다.
8일 이들을 만나기 위해 국정원 앞을 찾았다. 김수근·박현탁씨가 기자를 맞았다. 김씨는 "국정원 국정조사 와중에 휴가나 가는 새누리당을 보고, '그래, 너네 그렇게 피서 떠나면 나는 국정원으로 피서 간다'는 생각으로 이번 집회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집회는 15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즐거움 주면서 할 말 다 한다"
'피서'긴 하지만 이들의 하루는 분주하다. 가장 많은 시간을 퍼포먼스 연구에 쏟는다. 유동인구가 거의 없어 일반적인 집회나 농성의 방식으론 눈길을 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 국정원 앞에 나올 때부터 이들은 '재미'를 추구했다.
"촛불을 드는 게 용기를 내야 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란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퍼포먼스를 통해)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할 말 다 하는 모습 보여주면 촛불집회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데 도움이 되겠죠."실제로 물총을 든 채 국정원을 감시하고, 줄넘기 10만 개를 목표로 빗속에서 '폭풍 줄넘기'를 하는 이들의 모습은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누리꾼들은 '국정원으로 피서간 겁 없는 녀석들' 영상을 이곳저곳 퍼 나르고 있다. 덕분에 6일 처음 올라온 영상은 8일 오후 2시 현재 조회수 3만5000건 이상을 기록 중이다. 영상 속에서 국정원을 향해 "빵꾸똥꾸"를 외치는 김수근씨의 모습에 많은 네티즌들은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실 박현탁씨는 이번 '국정원 정국'에서 만들어진 가수 '류앤탁'의 멤버로도 유명하다. 가수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풍문으로 들었소>를 개사한 <국정원 풍문으로 들었소>는 시청 앞 광장과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박씨의 주도 하에 국정원 앞에선 매일 오후 6시 30분 '작은 공연'이 열린다. <국정원 풍문으로 들었소>에 맞춰 낮 동안 연습한 춤과 노래를 이때 선보인다. 이후 오후 7시 30분엔 매일 자발적으로 찾는 시민들과 함께 '작은 촛불 집회'를 연다. 전날인 7일엔 시민 4명이 참여해 한 명도 안 빠지고 국정원을 향해 할 말을 다 쏟아냈다.
박씨는 "이곳이 대중적인 공간이 아니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활동을 알리는 게 1차 목표였다"며 "촛불시위가 언론에 의해 통제돼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무모한 도전'이 국민적 힘을 모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은 11일 국정원 앞에서의 촛불문화제를 계획하고 있다.
국정원 CCTV 밑 '피서'... "사람 따라붙기도"
이들 집회의 목적은 '국정원 해체'와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이다. 때문에 현재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국정원 국정조사에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김씨는 "지금까지의 조사와 정황을 보면 국정원, 경찰, 새누리당이 한통속이란 건데 직접적 연관이 있는 새누리당이 조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나"라며 "범죄자 집단이 스스로 조사를 하고 있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핵심 인물인 김무성 의원, 권영세 주중대사 모두 증인 채택을 하지 못한 게 새누리당이 직접 조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며 "국정조사도 좋지만 당장 특검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차려놓은 피서지 위엔 위엔 국정원 CCTV가 있다. "움직일 때마다 CCTV가 따라온다"고 한다. 경찰의 감시도 계속되고 있다. '국정원 감시'의 퍼포먼스 중 하나로, 작동이 안 되는 비디오카메라를 국정원 쪽으로 향해놨더니 이를 경찰이 제지한 적도 있다.
"가까이 헌인릉이 있어 뭐가 있나 궁금해 산책을 나갔는데 귀에 무전기를 꽂은 사람들이 거기까지 따라붙더라. 땀 뻘뻘 흘리며 헌인릉을 구경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웃음)." 부산 식당에서 온 "가족 토막내겠다" 협박 문자?
유쾌해 보이기만 한 이들이지만 이번 집회를 시작하며 섬뜩한 일을 겪기도 했다. 김씨가 지난달 30일 국정원 앞에 집회신고를 한 뒤, 다음 날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협박 문자를 받은 것. 31일 '051-524-XXXX'로부터 온 문자메시지에는 "당신 가족을 모두 토막낼 겁니다"라는 끔직한 내용이 담겨 있다. 오후 3시 11분, 12분 총 두 건의 문자가 왔다.
"문자 온 곳에다가 전화를 해보니 부산의 샤브샤브 식당이더라고요(웃음). 1961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처음 생길 때부터 국민을 감시하는 게 그들의 주 업무였죠. 그러면서 입으로는 국가 안보를 들먹이고…. 문자 보세요. 지금까지도 국민 감시하고 있잖아요."살해 협박에도 김씨는 '국정원 앞 피서'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섬뜩했는데 국정원이 그 동안 인터넷 상에서 단 댓글을 생각해보니 '국정원 범죄집단이 아직도 이렇게 활동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며 "더 열 받아서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이곳에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와 박씨 모두 정작 집에다가는 이번 피서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강원도 인제가 고향인 김씨는 "농사 지으며 열심히 사는 부모님께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언론에 나가면 부모님이 알게 되는 것 아닌가"라는 기자의 걱정에 박씨가 답했다.
"(부모님이) 인터넷을 거의 안 하셔요. 텔레비전 뉴스만 보시거든요. 다행히(?) 지상파랑 종편에선 전혀 취재를 안 오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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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으로 피서간 겁 없는 '오성과 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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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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