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드디어 박정희 신드롬을 박근혜에 대한 환멸과 함께 묻어버리게 될 것 같다."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성공회대 교양학부, 현대사)의 말이다. 한 교수는 지난 대선 때 유신 부활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한 교수는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다. 역사학자에게 대한민국 현 정부의 앞날을 묻는 게 이상하다 여길지 모르지만, 그것이 박근혜 정부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에게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정권의 판박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오랜 기간 박근혜 정부를 미리 연구해온 학자일지도 모른다.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평화박물관 사무국에서 한홍구 교수를 만났다. 최근 논란이 되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김기춘 전 법무장관의 청와대 비서실장 '등극'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드디어 박정희를 묻을 기회가...."한 교수는 "길게 봐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박근혜 정권의 등장에 대해 "우리 역사에서 그런 반동은 당연히 오게 돼 있다"면서 유신체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고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는 "1900년대 100년 동안 우리가 민주적 분위기 속에서 산 건 겨우 4년뿐"이라며 "민주정권 10년으로 그 제국주의와 군사독재가 뿌려놓은 역사적인 무게를 씻어내는 건 무리였다"고 평가했다. 프랑스에서는 왕의 목을 친 뒤에도 두 번이나 제정이 되살아났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한 교수는 삼촌과 조카가 번갈아 가며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에야 공화정이 자리잡은 프랑스를 예로 들면서 "박정희 독재를 겪고 그 다음에 박근혜의 독재까지 겪게 됐지만, 우리가 드디어 박정희 신드롬을 박근혜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묻어버리게 될 것 같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에 대해서는 한 교수는 "과거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몇십 배는 더 심각한 사건"이라면서 "대통령이 나서서 엄정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외압을 막는 등 적극적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걸 안 했다는 것은 은폐에 동조 한 것"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국헌문란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침묵하는 건 대통령의 직무유기"라면서 "이는 대통령이 퇴임하는 날부터 당장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이 수사해야 할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기용된 것에 대해 한 교수는 "걱정도 되고 기분도 나쁘다"고 말했다. 정권 임기가 아직 많이 남은 상황에서 처음부터 유신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그는 "앞으로 박근혜 정권은 '김기춘-남재준 투톱' 체제로 민중을 탄압할 것"이라며 "큰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홍구 교수와의 일문일답 전문이다.
- 지난 주말 '국정원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걸 봤다. "사람이 많이 는 것 같더라. 더구나 언론(방송)에 보도도 안 되는 상황 아닌가. 지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때는 처음부터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나, 이번에는 불이 붙는 방식이 조금 다른 것 같다."
- 후대가 '촛불문화'를 어떻게 평가할까 의문이 든다. 제도 정치의 한계를 보완하긴 하지만, 촛불 자체로는 무기력해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성급한 기대를 갖기 때문이다. 2008년 촛불집회는 단군 이래 최대 인원이, 그것도 연일 모였음에도 크게 바뀐 게 없다. 가령, 3.1운동 당시에 일제가 군대와 헌병을 동원해 많은 사람을 학살했지만 그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단통치가 문화통치로 바뀌었고, <동아일보><조선일보>도 그때 생겼으며, 정치결사도 가능해졌다.
그런데 촛불 이후에는 많은 게 막혔다. 그걸 보면 이명박 정권은 정말 '불통권력'이었는데, 박근혜 정부는 그보다 더한 것 같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라도 했다. 이명박 정권 때도 다섯 달 만에 청와대 수석들을 교체했다. 민심 못 들어 미안하다는 제스처였다.
그에 반해 박근혜 정부는 촛불이 붙으려니까 말도 못할 정도의 강공 카드를 꺼내들었다. 권력의 성격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항세력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4.19혁명이나 6월항쟁과 같은 기억만으로 역사를 보면 안 된다. 그런 게 한 번 성공하려면 정말로 어마어마한 피를 뿌려야 한다. 4.19혁명이나 5.18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 많은 분이 돌아가셨지만 다른 나라에서 민주화를 성취하는 과정에 비하면 적은 피를 흘린 것이다. 그런 걸 감안하면 역사를 길게 봐야 한다.
어떻게 보면 무기력감이 제일 위험하다. 촛불이 조금 더디게 붙고 있는 이유에는 그런 무력감도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20세기 100년 동안 고작 4년... "우리 민주주의는 취약하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불거진 이후 최근의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임의 공개까지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취약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취약하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한 게 얼마나 됐나. 길게 보자. 작은 패배나 당장 꽉 막힌 것 같은 상황에 좌절하지 말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지난 100년 동안에 우리가 민주주의를 얼마나 해봤는가. 앞 10년은 일본 제국주의가 침략해오는 과정이었고, 36년 동안엔 나라를 빼앗겼다. 전반기 절반이 그랬다. 이어 분단되고 전쟁 터진 뒤 반공독재·군사독재가 들어섰다.
그나마 민주화 되기 시작한 게 1987년이다. 실제로 민주정권이 들어서 권력이 대중을 적으로 보지 않고,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기 시작한 게 1998~2000년 정도였다. 4.19까지 치면 지난 1900년대 100년 동안 민주적 분위기 속에서 산 건 겨우 4년뿐이다. 결국 96%는 제국주의 아니면 독재였다. 2000년대에 들어선 참여정부까지 합친 민주정권 10년으로 제국주의와 군사독재가 뿌려놓은 역사적인 무게를 씻어내는 건 무리였다. 너무 짧았다."
한 교수는 역사학자 답게 프랑스혁명과 왕정 복고 등을 예로 들며, 역사에서 반동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우린 과거청산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예컨대, 프랑스는 왕의 목을 쳤음에도 황제 제도가 두 번이나 되살아났다. 마르크스는 이를 두고 역사는 희극과 비극으로 되풀이된다고 했다. 그것이 되풀이되는 긴 시간 사이의 이야기가 <레미제라블> 아닌가.
박정희 독재를 겪고 지금 박근혜의 독재까지 겪게 됐지만, 우리가 드디어 박정희 신드롬을 박근혜에 대한 환멸과 함께 묻어버릴 것 같다. 다시는 누구도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5년을 갈 지 얼마를 갈 지 모르지만, 그 기간을 보내고 나면 쏙 들어가 버릴 거다. 마르크스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란 책에서 '황제의 망토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어깨에 마침내 걸쳐지는 순간, 나폴레옹 동상은 방돔 광장 전승 기념탑 꼭대기에서 떨어져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라고 쓰지 않았나.
어디서나 역사적 반동의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우리처럼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한 나라에서 왜 반동이 없겠는가. 유신체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프랑스 혁명사를 짧게 훑은 한 교수는 다시 한국 현대사로 돌아왔다.
"또 사람들이 착각했던 게 박정희 따로, 전두환 따로라고 생각했지만, 전두환 정권은 사실 유신 잔당들의 정권이다.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였다. 전두환·노태우가 누군가. 박정희의 경호원들이지 않았나. 유신정권의 경호장교들이 박정희가 죽고 난 다음에 13년을 집권했던 거다. 박정희가 한 걸 똑같이 따라하면서도 한편으론 박정희의 흔적을 지우려 애썼다. 추모식을 못하게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그게 한이 맺혀서 전두환 비자금 문제를 흘리는 카드로 쓰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학교를 다녀서 세상이 원래 그렇게 좋은 줄 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지옥에 비유하자면, 오랜 세월 '똥물' 속에 잠겨 있다가 겨우 고개를 내놓은 기간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다시 똥물 속으로, 암흑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절차적 민주주의 형식을 따랐지만, 실제로는 그 기득권 세력의 독점적 지배가 여전히 강하게 지속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과거청산이란, 과거의 몇몇 사건만을 바로 잡는 게 아니다. 그 지배구조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그걸 해체해서 진짜 민주주의로 가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가령,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은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위기였다. 사실 탄핵이라는 게 절차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런데 그 탄핵이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나. 당시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걸 다 하고 싶다'는 정도의 발언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선거 부정 사건이 국가기관에 의해 저질러졌다. 이건 과거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몇십 배는 더 심각한 사건이다.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떠나, 개입 자체가 심각한 문제다. 그 덕으로 당선된 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자기 권력의 절차적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국정원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해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엄정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외압을 막는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하는 건 은폐에 동조하는 거다. 이런 국헌문란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침묵하는 건 직무유기다. 따라서 대통령 퇴임하는 날부터 당장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이 수사해야 할 사안이다."
- 박정희가 중앙정보부를 만들었으니, 국정원의 역사는 50년이 넘는다. 참여정부 때 국정원 개혁을 추진했는데, 또 이런 일이 벌어졌다. "당시에 국정원 개혁을 나름대로 한다고는 했는데, 그게 잘 됐으면 저 꼴이 났겠나. 완전히 망가졌다. 나도 당시에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서 일하며 국정원 밥을 3년을 먹었다. 마지막 2년은 학교도 안 나가면서 매일 국정원에 갔다. 그때 지켜보니까 개혁을 하려면 네 가지가 필요하다."
- 그 네 가지는 뭔가?"첫째, 과거청산을 해야 한다. 이러이러한 것들을 잘못했다고 반성문 써야 한다. 둘째, 대통령이 국정원을 이상하게 이용하면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국정원의 유일한 사용자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국정원을 잘 써야 한다. 대통령이 '어디 캐봐라' '국정원은 뭐하고 있는 거야' 등의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대통령 입지 유지·강화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법이 규정한 정보기관으로서의 임무에만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 사람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안 된다. 김대중 정부 때는 호남 출신 인사들을 좀 끌어올리고 원장, 기조실장 등 몇몇 낙하산을 투입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적어도 과거 사건들에 개입을 한 정도에 따라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다보니 인적 청산을 못했다.
마지막으로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국정원을 국내 파트와 국외 파트로 나누자고 하는데, 이건 최소한의 과제다. 국정원이 국내 문제에는 개입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김기춘-남재준이 민중 탄압할 것"- '유신시대는 일제가 키워낸 식민지 청년들이 장년이 되어 사회를 운영해간 시기'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그런데 김기춘 등 그 시절의 인물들이 다시 기용됐다. "박근혜 대통령에겐 김기춘 같은 인물이 편하다. 그들은 유신시절 청장년으로 박근혜를 모셨다. 박 대통령에겐 그들이 허태열(전 비서실장) 같은 인물이나 지금 젊은 사람들보다 더 편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근혜 정권은 유신의 부활이다.
박 대통령이 김기춘을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가 있다.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준 인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육영수씨 저격 사건이 벌어진 1974년은 김기춘에게 아주 중요한 해다. 김기춘은 (육영수를 저격한 혐의로 체포된) 문세광을 수사해서 사형시킨 장본인이다. 당시 (여러 의혹들이 있었음에도) 검사 김기춘은 모든 혐의를 문세광에게 덮어 씌웠다. 그 뒤로 김기춘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 되었고, 재일동포들을 상대로 간첩조작 사건, 특히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들을 여럿 만들어냈다.
박 대통령에게는 김기춘과 정서적으로 통하는 면이 또 있는데, 둘 다 5공화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전두환은 박정희 추모식을 못 하게 했고, 김기춘도 5공과 사이가 안 좋았다.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시절에 군 고위장교가 월북을 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을 수사한다며 김기춘이 보안사를 작살냈다. 그런데 그 직후에 10.26이 터지면서 보안사가 들고일어났고, 그 뒤로 김기춘은 5공화국 내내 '찬밥신세'였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5공 청산이 시대적 과제로 되자 화려하게 부활했다. 검찰총장에 법무장관까지 지냈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당시에도 그는 사건을 총지휘했던 법무부장관이었다. 유서대필 사건은 우리나라가 검찰공화국으로 넘어가는 아주 중요한 전기다. 지난 대선 때 보니 당시 유서대필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들이 박근혜 법률캠프로 와 있었다. 김기춘은 우리 역사에서 정말 고비고비마다, 초원복국집 사건에서 탄핵에 이르기까지 다 등장한다. 그런 인물이 다시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나."정말 걱정이다. 박근혜 정권의 임기가 아직 많이 남지 않았나. 나라면 저건(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 마지막 카드일 것 같다. 가령, 이명박 전 대통령만 하더라도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도 하고, 사과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런 성격이 아니다. 예컨대, 김기춘을 전면에 내세워서 (국정 운영이 잘) 안 되면 그 다음엔 누굴 시키겠나. 남재준을 국정원장 겸 총리로 쓰든지, 아니면 계엄령을 내리든지 그렇게 할 건가? 그럴 순 없지 않나. 아직 촛불은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저렇게 나오고 있으니, 굉장히 걱정되고 기분도 나쁘다.
인사에 대한 사례를 하나 들자면, 이명박 정부 최악의 인사는 어청수를 경찰청장에서 경질하고 김석기를 앉힌 것이었다. 어청수는 알다시피 촛불집회 때 이른바 '명박산성'으로 악명을 날렸다. 명박산성은 그야말로 시대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황당했다. 촛불은 그렇게 끝났다. 시민들은 명박산성을 넘지 못했다는 좌절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보면 촛불을 끈 1등 공신은 어청수였다. 그래서 다들 어청수가 한 자리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교체됐다.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촛불에 대한 대응이 시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당시 서울경찰청장이던 김석기를 앉혔고, 김석기를 경찰청장으로 내정 발표한 바로 다음 날 용산참사가 일어났다. 똑같은 조직이라도 상부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래서 '윗 사람'이 중요하다.
그렇게 보면 앞으로 박근혜 정권은 김기춘-남재준의 투톱 체제로 민중을 탄압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용산참사'가 다가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큰 대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잘못된 현실이 과거사 되지 않게 만들어야"- 가장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가?"(박근혜는) 타협도 몰라, 토론도 몰라, 대화도 몰라, 사과는 더 모른다. 하지만 국민은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번 촛불의 실패가 있었으니까 이번에 촛불을 다시 들면서 어떻게든 뭔가 다른 방식을 만들어 낼 거다.
사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사안 자체만 보면 그냥 제도를 바꾸면 됐다. 그런데 이건 아주 본질적인 문제다.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한 문제고, 이는 지난 수십년 동안 많은 이들이 군사독재와 정보정치를 막으려고 피를 흘리면서 싸워온 문제다.
가령,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은 도청을 했기 때문에 닉슨이 탄핵당한 게 아니다. 도청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고, 그래서 대선에 불복하고 한 게 아니다. 대선 결과에는 다 승복했다. 당시 책임을 물은 부분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왜 수사를 철저히 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를 하느냐는 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은 닉슨이 탄핵 당한 이유보다 100배쯤 크다. 왜냐하면 실제 공작이 이루어졌고, 어떻게든 대선을 더럽혔다. 그 결과가 1.5% 이상의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민주진영도 아직은 선거 다시 하자고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히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엄정하게 수사를 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박근혜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향후 계획이 있다면?"길게 보라는 말을 다시 해주고 싶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100대 0에서 시작한 싸움이다. 게다가 경기장도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걸 51대 49까지 만들어내지 않았나.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국정원과 검찰 개혁을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 내가 하는 작업들은 과거사를 바로 잡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현실을 바로 잡는 일, 잘못된 현실이 과거사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