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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한국사회>
<아파트 한국사회> ⓒ 현암사
"집 살 돈 5억이 있다면 아파트와 단독주택 중 어느 집을 사고 싶어요?"
"아뇨. 난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 사고 싶어요. 더 좋은 집은 농촌에서 살고 싶어요. 콘크리트 문화는 정말 싫어요."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여성들은 아파트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는 편리함보다는 초록색깔을 정말 좋아해요. 초록만 보면 마음이 편하고, 아늑해요. 막힌 담장 안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지금 우리 집도 정말 답답해요."

아내와 한 번씩 나누는 이야기거리이다. 아파트 살 5억도 없지만, 있어도 아내는 아파트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다. 물론 아직 아파트에 살아보지 않아 그 편리함을 모르기 때문에 단독주택과 농촌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진주에 산 지 13년째다. 13년 동안 느낀 점 하나는 '아파트는 끊임없이 들어선다'이다. 처음 올 때 하우스 단지였던 논이 이제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아파트는 더 들어설 것이다. 새롭게 들어서는 아파트 탄지를 보면서 "또 들어서네"를 반복한다. 부동산 경기가 바닥이라는 데 왜 아파트는 계속 들어설까? 전세가 매매가 보다 더 비싸다는 뉴스도 들린다. 정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아파트 공화국'이다.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은 '부동산 6계급'

심상정 의원 보좌관을 지낸 손낙구씨는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에서 우리나라를 '부동산 6계급'으로 나눴다. 1계급은 두 채 이상 여러 채 가진 가구', 2계급은 1가구 1주택자, 3계급은 집은 가졌으나, 경제적 이유로 남의 셋방 살이라하는 가구, 4계급은 5,000만원 이상 되는 전월세 거주자, 5계급은 5,000만원 미만 거주자, 6계급은 판잣집, 비닐집, 움막, 업소의 잠만 자는 방, 건설 현장의 임시 막사, 동굴 및 지하방, 옥탑방 따위에서 사는 이들이다. 참고로 우리 헌법은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손낙구가 주장한 1계급을 통해 "또 들어서네"라는 나의 반문이 어느 정도 풀렸다. 그럼 왜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과 '부동산 계급사회'가 되었을까? 박인석 명지대 교수(주거건축 전공)는 그 동안 우리나라 도시·주거건축 담론이 부동산 개발 문제에만 편중되어온 것을 비판하고 이를 건강한 논의와 실천적 과제 생산 장으로 진전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가 이번에 펴낸 <아파트 한국사회>(현암사)는 우리 사회를 '아파트 공화국'아 아니라 '단지 공화국'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이며, 한국사회가 문제인 것은 '아파트 공화국'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단지 공화국이 된 것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단지화 전략'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정책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8쪽)

'아파트 공화국'에서 '단지 공화국'으로

생각해보면 그렇다. 아파트를 짓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를 개발한다. 진주만해도 '00지구', '00지구'가 있다. 5층 이하 아파트 1동 세워가지고 돈 버는 건설사는 없다. 무엇보다 단지가 유리한 이유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편리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설 수 있다. 일반 주거지와 아파트 단지를 비교하면 '단지 공화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일반 주거지역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모든 골목과 도로는 주차 전쟁터가 된 지 오래다.공할 공공도서관이나 실내수영장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다. 아파트 단지는 다른다. 아파트 단지는 별천지다. 주차장 걱정이 없을 뿐더러 곳곳에 녹지대와 놀이터 한두 개쯤은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헬스센터나 독서실 등 소위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단지들로 진화하고 있다.무엇보다도 고층 주거동들의 인동 간격에 맞춘 폭넓은 외부 공간이 일반 주거지역에서는 엄두도 못 낼 개방적 공간감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18쪽)

같은 면적에 단독주택과 아파트 단지는 전혀 다른 주거환경을 제공한다는 박인석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옛날 아파트 단지와 요즘 아파트 단지 주거환경 차이는 분명 있다. 하지만 단독주택과 작은 규모 연립주택 주거 환경은 하늘과 땅 차이다.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 중 주차공간을 따로 둔 가구는 아파트보다 훨씬 더 잘 사는 사람이 아니면 가지고 힘들다. 오래된 연립주택은 아예 주차공간이 없는 곳도 있다.

주차공간을 넘어 박인석이 지적했듯이 요즘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 현대 문명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들어서고, 유치원부터 대학을 제외하고는 고등학교까지 다 들어선다. 하나의 거대한 '사회'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박인석은 모든 것이 다 있는 '아파트 단지'는 "주변 환경과 관계없이 자족적인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서 "주변 환경이 좋다면 더 좋겠지만 나쁘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 일단 진입로만 확보하면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단지라는 별천지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별천지 단지'로 배불린 건설업체, 경제성장시키니 정부는 '꿩 먹고 알 먹고'

여기에 아주 중요한 것 하나가 숨어 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5층 이하 아파트 한 동 짓고 돈 버는 건설업체는 없다. 단지를 통해 개발함으로써 건설업체는 배불릴 수 있다. 건설업체는 자신들 배를 불리면서 경제를 성장시킨다.

단독주택이라면 한두 채씩 지어 파는 집장사, 기껏해야 수십 호 수준의 주택개발사업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로 집중된 주택 수요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수백 호, 수천 호 규모에 달하는 대규모 개발로 이어졌다. 그리고 대규모 개발사업은 대형 개발업체와 건설업체를 키워갔다. 아파트 단지는 건설산업을 급성장시키고 먹여 살린, 한국 경제성장의 중요한 한 축이었던 것이다.

건설업자는 정부가 책임져야 할 주택 수요 책임과 경제성장까지 시켜주니 "정부로서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격"이다. 당연히 건설재벌은 배를 불린다. 정부만 꿩 먹고 알 먹는 것이 아니라 '누이(정부)좋고, 매부(건설업체)'가 된다. 부동산 개발에서 정부와 건설재벌이 한 몸이 된 이유다.

부동산 경기가 나쁘면 쓰러지는 건설업체가 생겨난다. 그렇게되면 당장 부동산 관련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아우성을 친다. 여기에는 부동산 광고로 먹고사는 언론사들도 손을 잡는다. 노무현 정부가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아파트값이 폭등해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를 강화하자 얼마나 저항이 거셌는가? 이명박 정권은 집권하자마 마자 이를 무력화시켰다.

"한국은 땅이 좁아 고밀 개발해야"는 '거짓말

아파트를 짓는 이들 중에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땅이 좁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하지만 박인석은 "한국은 땅이 좁지 않다. 대부분의 한국 도시들은 인구밀도에서 유럽의 유수한 문화도시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서울과 수도권 몇몇 도시가 높은 인구밀도를 갖는 도시에 속할 뿐이다. 따라서 이들 몇몇 도시를 제외한 다른 도시들에서 고밀개발이 횡행하는 이유로 '땅이 좁다'를 내세우는 거짓말"이라고 땅이 좁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질타한다.

이어 "땅값이 비싸서 고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거짓말이라고 단언한다. 그 이유는 "고밀개발을 하기 때문에 땅값이 비싸진다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즉, 앞뒤가 바뀌었다는 말이다. 고밀개발을 하지 않으면 땅값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고밀개발-고층개발-단지개발'의 불가피해 보이는 관계는 사실은 거짓말로 맺어진 불편한 삼각관계다. 도시 공공공간 환경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려는 꼼수와 단지화 전략이 그 불편한 삼각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89쪽)

이같은 주장은 솔직히 처음 들었다. 우리나라는 땅이 좁아 땅값이 비싸고,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고밀도 개발을 해야 한다는 논리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인석 주장은 그 동안 필자가 얼마나 개발론자와 건설재벌 그리고 이들과 한통속에 가까운 정부 논리에 물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단지화 전략을 막아 날 때 땅값은 떨어질 것이고, 서민들 삶은 윤택해질 것임을 알 수 있다.

2008년 4월 총선 때 한나라당이 압승 이유 중 하나가 '뉴타운 개발'이었다. 자기가 사는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 이들이 표를 몰아준 것이다. 하지만 지금 뉴타운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다. 박인석은 집값이 오르는 것이 결코 사람들 삶을 윤택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집을 팔지 않고 집값만 오르면 "명목상 재산이야 늘어나겠지만 영원히 현금화할 수 없는 재신일 뿐"이라며 "세금만 더 늘어난다"고 지적한다.

아파트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 아파트들은 생김새가 꼭 공산품 같다. 요즘은 옛날보다 달라졌다고 하지만 "결국 다 똑같은 아파트"다. 외부만 아니라 내부도 거의 비슷하다. 이제 이런 아파트에서 벗어날 때다.

아파트 담장이 바뀔 때 세상이 바뀐다

"복닥복닥 사람냄새나는 그물망 구조를 회복"을 해야 한다. 그물망 구조란 우리 옛 골목길을 연상하면 된다. 우리집에서 빵집으로 가는 길이 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길이다. 이는 단지를 해체할 때 가능하다. 도시가 숨쉬는 공간이 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숨을 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골목길에서 놀았던 옛추억이 추억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이 된다. 이는 우리 아이들도 추억을 만들게 된다. 소란스럽지만 이는 '소음'이 아니라 이웃이 서로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쉽지 않지만, 허물자.

"그렇다, 아파트 발코니를 바꾸고 담장을 허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소 속에서 기성 체계의 온갖 관행, 규범, 아비투스를 깨야 하는 일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인데 쉬울 리 있겠는가. 새시와 담장을 닫혀 있는 개인들의 하루하루 삶을 접속하고 소통하는 삶으로 바꾸는 일인데 말이다. 이 '작은 일'들은 쉽지 않다. 그리고 중요하다. 아파트 발코니가 바뀔 때, 아파트 단지 담장이 바뀔 때 세상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355쪽)

그리고 박인석 교수는 말한다. "공공간에 기대어 소통하고, 일상생활에서의 요구가 곧 공공의 요구로 표출되고, 시민의 공통 이해로 결집할 수 있는 그런 생활공간 구조를 확산시키는 게 중요하다. 공공 임대주택도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단독주택지 여기저기에 소규모 공동주택으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 다가구주택 매입 사업 같은 정책을 확대해서 모든 주거지역에 임대주택뿐 아니라 국공립 어린이집, 작은도서관 같은 생활인프라를 늘려나가야 한다"-7월 26일 <경향신문> "아파트 단지가 문제.. 공공성 아닌 집단이익 추구로 민주·평등화 제약" 

덧붙이는 글 | <아파트 한국사회> 박인석 지음 ㅣ 현암사 펴냄 ㅣ 20000원



아파트 한국사회 - 단지 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

박인석 지음, 현암사(2013)


#아파트 단지공화국#아파트공화국#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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