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든 시민들의 파도가 일렁인다. 저 멀리서 물결치는 파도가 카메라를 든 내 앞까지 다다른다. 카메라에는 그들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찍히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함성과 그들의 아우라(Aura)를 한 장의 사진에 담기에는 너무나 벅차고 억지스럽다. 어떻게든 한 장에 담고 싶었기에 이렇게 노출을 길게 잡고 셔터를 눌렀다. 그대로 나의 카메라에 새겨지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사진에 깃든 그들의 움직임과 촛불의 흐름은 마치 한 편의 드로잉과도 같다. 노련한 스타 작가의 붓질이라도 이들의 자유로움과 정의로움 그리고 감동의 에너지를 모두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저 멀리 원형경기장 속에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검투사와도 같다. 로마군의 전쟁포로로 잡혀와 원형경기장에 갇혀 생존을 위한, 자유를 위한 싸움을 했던 글래디에이터들이 되살아난 것만 같다. 시민은 촛불이란 성스러운 검을 들고서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되찾고자 원형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높은 건물 벽으로 둘러싸인 이 패쇄적인 원형 광장은 어쩌면, 권위에 불복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보복을 암시하는 공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도망갈 공간을 쉽게 차단하고 쉽게 진압하기 위해 조성된 공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시민들의 염원은 그런 과거의 퇴폐적인 권력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신성시 되어져야만 하는 것. 민주주의 아닌가?
정전 60년이 지난 지금, 권력은 그동안 분단이란 무기 하에 쉽게도 민주화를 막아섰지만, 민주주의는 수많은 희생자들 덕에 현재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잃은 것에 비해 우리가 얻은 것은 너무도 초라하지만 너무도 값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 값진 보석이 다시 한 번 퇴색되어지고 있는 지금,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의 진상이 판치고 있는 지금, 시민들은 망설임 없이 광장으로 나섰다. 비관하고 좌절하지 않고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모습에 나는 다시 한 번 감동받고 힐링이 된다. 20대로서 다시 한 번 용기 내어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꿈을 꿀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