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정부출연연구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안의 실체가 지난 7월 15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석기 의원실에 의해 공개되었다.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가 작성한 '출연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방안(안)'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2015년까지 3년에 걸쳐 전체 비정규직 연구인력 중 출연연의 출연금 비중에 해당하는 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방침이라고 한다. 겉 내용만 보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가 우려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정규직 전환대상의 축소와 전환규모의 한계지난 4월 8일 고용노동부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2015년까지 무기계약직(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그 대상에 정부출연기관 연구원도 포함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미래부의 안을 보면 지난 고용노동부의 안보다 전환 대상 규모에서 오히려 축소되었다.
고용노동부는 전환대상으로 '상시적, 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자'로 포괄적으로 규정한 반면, 미래부에서는 '정규직과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으로 좁게 명시하였다. 따라서 행정지원업무나 연수과정, 간접고용 노동자 등은 정규직 전환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었다.
또한 미래부의 안을 보면 정규직 전환 규모를 비정규직 전체가 아닌 출연연 예산 중 출연금 비중에 해당하는 인원으로 제한하였다. 예를 들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하 과기연)의 경우 총예산 대비 출연금 비율이 55.8%이므로 과기연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중 55.8%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규직 전환 비율 자체를 임의대로 정한 것도 문제이지만, 미리 전환 비율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선발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정규직 전환 재원의 부재-비정규직 대량 해고 양산이번 미래부 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필요한 추가재원의 부재에 있다. 방안의 재원 관련 항목을 보면 '정부의 추가적인 재정 지원은 없음'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예산 증액은 없으니 각 출연연에서 정규직 전환을 알아서 추진하라고 못을 박은 것이다. 현재 출연연 연구직의 비정규직은 정규직 대비 평균 70%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추가재원 없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된다면 그만큼 고용 인원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된다.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가 불가피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앞서 살펴본 과기연의 경우를 보자. 아래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과기연의 비정규직 비율은 69% 정도 되는데 이 중 55.8%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추가 재원 없이 지금의 안을 밀어붙인다면, 전체 연구원의 15%(비정규직의 22%)에 해당되는 비정규직 연구원들이 당장 직장을 떠나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미래부 방안은 탁상공론의 결과물이러한 지적에 대해 미래부는 사업비 및 수탁과제비의 일부를 정규직 인건비로 전환하면 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경우 '고용 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 노동자의 급여를 '기간이 정해져 있는' 연구 사업에서 지급한다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정부에서 오히려 편법 운영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의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 때문에 추가 예산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인데, 애초에 구체적인 재원 마련 계획도 없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다는 미래부의 방안 자체가 탁상공론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정부도 인지했는지, 지난 8월 1일 기획재정부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는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전환 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정규직 전환 정책의 근본 취지가 무엇이었는지조차 의문을 갖게 한다. 임금 인상 없는 정규직 전환은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기 위해 정규직 전환을 한다는 취지와 정면으로 모순된다.
소통을 통해 해결방안을 찾아야이러한 부실 정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근본적으로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소통의 부재라고 생각된다. 수혜 대상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용자라고 볼 수 있는 출연연 관계자들 또한 이번 방안에 불만을 가질 정도로 소통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 출연연의 비정규직 비율을 낮추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목표 하에 진정성이 없는 정책이 마구 남발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미래부의 방안에 대해 지난달 15일 민주노총 공공연구노동조합에서 강하게 비판을 하였다. 이후 논란이 불거지자 미래부에서는 다음날 16일 해명 자료를 통해 지금의 안은 아직 협의 중인 사안이며 확정된 안이 아니라고 해명하였다. 미래부의 해명대로 아직 확정된 안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지금이라도 연구 현장의 의견부터 겸허히 수용하여 비정규직이 해고 없는 정규직화가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청년과학기술자 모임(YESA) 공식 블로그를 통해서도 알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