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세상엔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즐기고, 적은 소유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 도시 문명에 반대하며 자연주의적 삶을 선택한 사람들, 자본주의 경제와 경쟁 체제를 거부하고, 더불어 사는 협동의 공동체에 참여하여 '삶의 속도와 행복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사람들, 대안교육, 대안 먹거리,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시도와 실천 속에서도 아직 더딘 흐름을 보이는 분야가 '집'이다. 이 집에 관한 사람들의 기존 인식은 여전히 완강해 보인다. 물론 집에 대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사람들도 있다. 귀농이나 귀촌을 하여 자신만의 집을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일본 작가 다카무라 토모야가 쓴 <작은 집을 권하다>에서 보여주는 '집'은 그런 차원을 한참 벗어나 있다.
3평 남짓 되는 아주 작은 집과 사람 이야기
실제로 저자는 도심에서 오토바이로 반나절 정도 떨어진 잡목림 사이에 3평 남짓 되는 집을 짓고 살고 있는데, 이 집의 크기는 일본 법률이 정해놓은 주택 규모에도 미달되는 크기이다. 그러니까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건 저자를 비롯하여 정말 '아주 작은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엔 사글세로 시작해서 돈을 모아 전세로 옮기고, 15평 정도의 집을 사서 살다가 24평, 30평, 33평으로 집 크기를 키워가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겨우 3평짜리 집이라니! 이런 극소형 집을 스스로 짓고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며, 도리어 지나치다고 비난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자는 도리어 이 '작은 집'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주거 형태이자 삶의 방식이라고까지 힘주어 말한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 '평균적인 집'에 대한 강박관념을 놓으면 누구나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저자는 이 '작은 집'을 '스몰하우스'라고 부르고, 자신을 포함해서 이 스몰하우스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 7명의 집과 삶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집짓기 노하우를 전하는 실용서는 아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인생과 의미를 저자 나름의 관점과 해석을 바탕으로 접근한 철학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풍부한 생각들이 이 '작은 집'에 담겨 있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가장 넓은 공간에서 가장 많은 물건을 소비하던 미국인들이 작은 집에 관심을 가지고 다운사이징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책 속에서 저자가 소개한 6명 중 5명은 미국인이며, 1명은 호주인인데, 스몰하우스 운동을 처음 시작한 제이 셰퍼도 미국인이다. 이는 아무래도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문명이 사람들을 결코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인식과 그에 따른 반작용이 실천으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스몰하우스 운동과 뺄셈 설계스몰하우스 운동을 시작한 셰퍼와 그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은 모두 집을 짓기 위한 설계 방식을 '뺄셈스타일'이라고 했다. 설계 과정에서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다며 자꾸 보태고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불필요한 설비나 공간을 최대한 제외시키고 최상의 실용성을 가진 공간만 남기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뺄셈 설계는 프랑스 작가 생텍쥐베리의 디자인 철학과 통한다.
완벽한 디자인이라는 것은 그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제거해야 할 뭔가가 없을 때 비로소 달성되는 법입니다. (본문 29쪽)스몰하우스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은 대개 이런 삶의 단순함을 좋아했다.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다이어트하기 위해 스몰하우스를 택한 사람도 있고, 환경문제에 관해서만큼은 작은 집에서 소박하게 사는 것이 그 어떤 방법보다 이롭다는 것을 깨닫고 작은 집을 지은 사람도 있다.
또한 미디어가 주는 세뇌를 거부하고, '큰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5평짜리 집을 짓고 사는 사람, 쾌적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죽어라 일하면서 도리어 쾌적한 생활을 잃어버리는 삶을 절감하며 작은 집으로 이주한 사람, 자기 내적인 세계의 심층부와 마주하고 싶어서 숲 속에 작은 집을 마련한, 매우 정신적인 의미로 다가온 사람도 있다.
스몰하우스는 반자본주의 운동이다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특히 '소유'의 문제에 대해서 저자의 논의는 집요하다. 소유야말로 스몰하우스 운동의 가장 중요한 열쇳말이라는 것. 큰 집이란 소유의 아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몰하우스를 선택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물건을 쌓아둘 불필요한 공간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저자는 자본주의를 직시한다.
모든 물건은 예외 없이 자본이다. 다시 말해 무엇을 사들이는 시점에서 시간과 돈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 소비를 만회하기 위해 그때부터 물건을 열심히 사용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물건을 샀을 때의 목적과 계획에 의해 과거와 현재의 가치관이 고정되어 결국 미래까지 결정되어버린다. 자신의 가치관에 변화가 있어도 그 물건은 그 변화를 따라와 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과 주변의 물건이 만들어내는 환경은 서서히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한다. (본문 64쪽)모든 물건은 예외 없이 자본이기 때문에, 스몰하우스가 물건(상품)들을 들여놓을 공간 자체를 없게 하는 것은, 집에 자본이 들어오는 공간을 없앤 것과 같다. 이런 면만 보아도 반자본주의적이며 끝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세뇌를 벗어나, 사는 공간을 줄이는 선택은 매우 진보적인 실천으로 보인다.
이런 저자의 관점은 책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경제 속에서의 자유'에 의해서만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지배당하고 있다고 말하며, 사람의 마음을 교묘하게 지배하여 돈벌이나 소비에 관한 절대적인 예찬의 윤리를 만들어낸다고 비판한다. 시기심에 불타 소비 행동으로 치닫거나, 대량 생산을 위한 톱니바퀴가 되거나, 그렇게 하여 손에 넣은 큰 차를 타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마음 깊이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진짜 죄목이라고 하며, 뭐든 좋으니 열심히 소비해서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말은 과연 옳은 걸까, 하며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자기 몰입의 공간, 스몰하우스그러므로 스몰하우스는 이런 자본주의 쳇바퀴 경제에 대한 저항의 한 표현이다. 실제로 저자는 '시민 불복종'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스몰하우스를 이처럼 사회 경제적인 측면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몰입의 공간으로 스몰하우스의 의미를 채우는 사람도 있다. 저자는 이런 의미를 매우 적절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어찌 보면 스몰하우스에 들어가는 건 동물로서의 육체보다 인간으로서의 정신 때문이다. 자신의 의식 외에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을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만의 전용 우주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혼자만의 의식이 팽창하여 우주 전체에 닿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고, 그 우주에 마음껏 몰입하여 지낼 수가 있다. (본문 153쪽)스몰하우스 속에서 무뎌진 모든 감각들이 다시금 증폭되어지고, 소박한 삶의 품안에서 고도의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며, 온갖 '의도'들이 쉬어지고 자연스러움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정말로 배제하고 싶었던 것은 '의도' 그 자체였던 겁니다."스몰하우스는 이토록 깊은 깨달음도 준다. '단순해야 한다'는 강박도 찾아볼 수 없는 집. 저자는 스몰하우스에서 사는 삶을 도(道)의 경지에까지 올려놓고 있다.
<작은 집을 권하다>는 제목처럼 작은 책이다. 큰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집은 어쩌면 비현실적인 얘기거나 어떤 특별한 취향을 가진 사람만의 특수한 얘기로 여기기 쉽다. 그래도 읽어보시라. 세상의 대세가 어찌 처음부터 대세이겠는가. 작은 씨앗이나 샘물 한 방울이 거목을 만들고 대해장강을 이루기도 하니 말이다. 스몰하우스 운동도 지금 작은 흐름이지만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작을 제공하며, 우리들의 손을 이끌어 함께 큰 흐름을 만들어 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작은 집을 권하다>, 다카무라 토모야 지음/오근영 옮김, 책읽는수요일, 2013년 7월 29일, 1만 2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