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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자전거를 타고 밤에 그날의 기록들을 정리하다 보면 새벽에 잠들기 일쑤다. 비몽사몽 눈을 뜨니 아침 먹기도 귀찮고 더 자고 싶다. 하지만 밥 안 먹었다간 여러 사람에게 걱정 끼치고 계속 설명해야 할 테니 졸린 눈으로 터벅터벅 걸어 숙소 밖으로 나간다. 목포까지 응원 방문 오신 윤준하 바다위원회 위원장이 길 건너에서 손을 흔든다. 벌써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며 아침식사 하는 곳을 찾아냈다 한다. 얼큰한 황태 해장국을 먹고 나니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속이 풀리는 듯하다.

짐을 챙겨 약속 장소인 목포항만청 앞으로 갔다. 고흥보성환경연합 김영철 국장님, 벌교까지 130km를 같이 달릴 '벌교 두바퀴 클럽' 회원들과 인사했다. 가져온 자전거와 장비들을 보니 이분들, 프로의 향기가 난다. 오늘 저분들 뒤따라가려면 죽겠구나 싶었는데 불안한 예감은 틀리질 않는다. 아, 이런 적토마 같은 분들.

고흥보성환경운동연합 & 벌교 두바퀴 클럽 자전거 부대 출정식. 아따, 해양부국실현은 해수부 말고 우리가 한당께.
고흥보성환경운동연합 & 벌교 두바퀴 클럽 자전거 부대 출정식.아따, 해양부국실현은 해수부 말고 우리가 한당께. ⓒ 김영철

뒤따라오는 김영철 국장님 차에 평소 자전거에 싣고 다니던 짐 가방을 넣고 자전거만 탔다. 10kg이 넘는 짐을 빼고 나니 한결 가볍고 자전거가 잘 나갔다. 김국장님은 하루 종일 차로 자전거 부대를 에스코트 하면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내려서 사진도 찍고 음료수도 꺼내주고 온몸으로 운전한다.

항만청을 출발하여 20분 정도 달리니 대불산업단지 해양투기 선창이 나온다. 공장에서 폐수와 오니(슬러지)등을 큰 탱크 두 개에 모아 놨다 배를 이용하여 하나는 서해에, 하나는 동해에 버리던 시설이다. 강원도 속초의 해양투기 선창 한 곳만 폐쇄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다행히 이곳도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듯했다.

해양투기에 관한 정보들은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공개하기를 꺼려하고, 또 공개할 의무도 없기 때문에 이렇게 직접 현장을 와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공용의 바다에 폐기물을 버리는 행위가 왜 소수의 비밀이 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정식으로 폐쇄된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목포의 해양투기 선창은 이용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대불산단과 전남서부지역에서 해양투기를 못하게 되어 망한 기업은 없다. 해양수산부가 주장하는 해양투기 종료로 인한 업체들의 경영난, 혹은 폐수 대란 등은 이곳에선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다.

 대불부두 해양투기용 폐수 탱크 앞에서 '해양투기 연장 반대~'
대불부두 해양투기용 폐수 탱크 앞에서 '해양투기 연장 반대~' ⓒ 김영철

선창을 떠나 보성으로 국도를 이용해 달렸다. 자전거에 속도계까지 달아놓은 두바퀴 클럽 아저씨들은 아마추어인 우리를 배려(?)하여 시속 20km 정도로만 달렸다. 달리고 계속 달렸다. 양 옆의 경치를 즐길 새도 없이 헉헉거리며 언덕을 오르자 큰 고가도로 밑 그늘이 나온다. 잠시 휴식을 위해 자전거를 세우고 앉아 쉬는데 웬 꼬마 한 명이 철티비(저가형 철 프레임 MTB 자전거로 일명 생활자전거라고 부른다)를 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중학교 1학년이라는 영걸이는 유니폼을 입고 떼로 몰려다니며 자전거를 타는 우리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람이 별로 없는 시골에 살기 때문에 떼 지어 자전거를 타는 것은 친구들과 딱 한 번밖에 못해봤단다. 그저 따라오기만 해도 재미있다는 영걸이.

'사탕 줄게 아저씨 따라올래?' 하면, '천원 줄게 아저씨 저랑 경찰서 갈래요?' 하는 것이 요즘 아이들인데, 얘는 따라오지 말라 해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쫓아온다. 낯선 사람들이 무섭지도 않은가보다. 자기도 여수까지 가고 싶다는 것을 어르고 달래 독천리에서 같이 점심을 먹고 집으로 보냈다.

철티비를 타고 열심히 우리를 쫓아 온 영암 소년 영걸이. 자전거를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학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철티비를 타고 열심히 우리를 쫓아 온 영암 소년 영걸이.자전거를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학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 최예용

여러 명이 함께 타니 둘만 타는 것보다 길 찾는 수고를 더는 것은 물론이고, 힘이 덜 들었다. 표지판을 바라보니 곧 장흥이다. 오늘은 17일 토요일. 장흥시장이 열리는 날이다. 막걸리 한잔 해야겠다며 참새 방앗간 들어가듯 줄지어 시장으로 들어간다. 장에 놀러온 아줌마 부대가 자전거 부대를 보며 '이건 뭐하는 거에요?' 하고 묻는다. 두바퀴 회원이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 하고 외치니 사람들이 '박수!' 하면서 다 같이 좋아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전거로 다져진 튼튼한 허벅지 한번 만져보자며 한바탕 웃는다.

장흥 시장 구경을 마치고 이제 벌교까지 가는 마지막 코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열심히 달려야 한다. 제법 익숙해진 속도로 열심히 달리던 그때, 뒷바퀴가 갑자기 휘청휘청 거린다. 펑크가 난 것이다. 여분의 타이어 튜브와 수리 도구들을 가져오긴 했지만, 길 위에서 고치고 가면 일정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았다. 결국 뒤따라오던 김영철 국장님 차량에 자전거를 싣고 나는 축지법 탑승. 자전거 캠페인 6일차 일정은 그렇게 벌교를 눈앞에 두고 통한의 눈물을 삼키며 해가 저물었다.(그런데 차 안에서 몸은 너무 편하고 행복했다!)

 목포-벌교 코스 130km를 완주하고 벌교 입성하는 자전거 부대
목포-벌교 코스 130km를 완주하고 벌교 입성하는 자전거 부대 ⓒ 김영철

 벌교역 앞에서 기념 사진
벌교역 앞에서 기념 사진 ⓒ 김영철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환경연합 홈페이지(http://kfem.or.kr)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해양투기#환경연합#바다위원회#자전거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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