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베네치아하면 떠오르는 건, 그림같은 베네치아 운하를 멋진 곤돌라(gondola)배를 타고 누비는 여유롭고 낭만적인 모습일 것이다.
게다가 베네치아는 도시(섬)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록된 유서깊은 도시다. 그런 낭만성과 역사적 고유성으로인해 서구인들에게 베네치아는 평생에 꼭 한 번 방문하고픈 곳으로, 또한 신혼여행지 1순위로 꼽혔던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 돼 버렸다.
넘쳐나는 관광객으로인해 베네치아 대운하에서는 온갖 배들이 서로 뒤엉키는 수로다툼으로 교통체증이 심각하고, 급기야 관광용 곤돌라배와 대중교통수단인 바포레토(vaporetto)가 충돌해 곤돌라가 뒤집혀 관광객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곤돌라 사고가 최근에 급증했다는 점이고, 단체관광객을 유치하는 여행사와 관광부는 이같은 사실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곤돌라 사망 사건으로 인해 그간 누적된 운하의 문제와 실패한 관광정책이 드러나면서, 포화상태인 관광객으로인한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베네치아시는 새로운 정책을 서둘러 실행한다는 계획이다.
곤돌라 사고로 독일인 교수 사망
사고 내용은 이렇다.
지난 17일(현지 시각),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독일인 교수(Joachin Reinhard Vogel, 50. 뮌헨 법대)는 아내와 세 자녀와 함께 곤돌라관광에 나섰다. 그러나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뱃길은 독일인 가족들에게 악몽이 돼버렸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중 하나로 꼽히는 리알토(Rialto)다리 부근에서 그들이 탔던 곤돌라배는 수로의 혼잡한 교통체증에 뒤엉켰고 겨우 수로공간을 확보하고 나오려던 곤돌라는 그 순간, 바로 옆의 대중교통수단인 배 바포레토와 부딪혀 곤돌라배는 파손되고 독일인 가족은 물에 빠졌다.
리알토다리의 부근, 전후방 150미터 대운하에 설치된 14개의 감시카메라 촬영에 의하면, 곤돌라배가 떠 있던 그 순간 전후 측면으로는 5대의 바포레토가 운항중이었고, 단체관광객을 가득 실은 각종 모터보트 택시배가 달리는 등 곤돌라 운항에 있어서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한다.
단 한 개의 수동 노젓기에 의존해 안전운항을 해야 하는 곤돌라에게 대형 대중교통배도 위험하고,급속한 물살을 일으키는 모터보트 택시배 역시 위험하다.
현장에 긴급출동한 구조용 경찰배와 응급의료용 앰블런스 배, 그리고 그 즉시 물에 뛰어들었던 주변의 다른 곤돌리에(Gondolieri. 곤돌라 뱃사공)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이미 물을 너무 많이 흡입해 숨을 거뒀고, 세 살짜리 막내딸은 심각한 외상을 입고 부근 파도바(Padova)도시 대학병원에서 장시간 외과수술을 받았다.
사고후 즉시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사고 다음날인 18일, 곤돌리에협회 노조가 운하를 가득 메우며 파업에 돌입했다. (베네치아에는 425명의 정식라이센스를 취득한 곤돌리에들이 있고, 180명의 보조급 곤돌리에들이 있다)
이들은 베네치아시에 대운하의 심각한 교통혼잡 개선을 요구했으며 무분별한 관광정책에 항의했다. 그들의 발표문에 의하면 "최근 수시로 발생한 곤돌라 사고에 대해서 시청측은 방관해 왔으며 여행사와 관광업체들은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 그런 사고소식을 은폐한 채 곤돌라 운항을 요구하면서, 계약 위반시 피해보상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채 무리한 운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는 베네치아 내운하에서 생긴 사고다.(베네치아에는 대운하에 속하는 내운하가 있고, 아드리아해 바닷쪽으로 연결된 외운하가 있다.)
폭주하는 관광객들, 위험에 노출된 곤돌라 내운하에 해당하는 대운하에는 점점 늘어나는 관광객 수송을 위해 대중교통 배, 바포레토가 하루24시간 5000회 왕복운행을 해야하는데, 베네치아 지리적 여건상 가능한 최대의 운항횟수는 하루 3000회 정도다. 위험수위를 한참 넘은 운항이 실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외에도 각종 화물수송용 대형배들이 이곳을 드나들어야 한다. (이곳에선 쓰레기수거용,앰블런스,소방차 등등의 역할을 모두 배가 담당한다.)
그것들과 함께 운하에 뒤섞여 가장 큰 골칫거리이자 사고의 요인이 되는 것은 바로, 단체관광객을 실어나르는 모터보트 택시배들이다.
베네토 지방위는 모터보트 택시배 규정을 '관광용 렌트카'로 한정했기 때문에 택시배(정원14명)들은 대부분 관광객 수송배가 되어 운하를 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빈번한 모터보트 택시배들의 운항도 문제이지만, 이들이 내는 과속으로 인한 문제는 곤돌라운항에 위험을 줄 뿐 아니라 베네치아의 지반붕괴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내운하에서는 규정 속도를 시속 3.5km, 바닷길에 해당하는 외운하쪽 속도를 시속 7km로 제한하고 있다.
몇 달 전에는 싼 마르코(S.Marco) 광장 부근 바닷길에서 모터보트 택시배의 심한 물살에 곤돌라가 뒤집혀 파손되는 사고가 있었다. 아무리 속도제한을 해도 모터보트 택시배로부터 곤돌라가 보호되기는 힘들다. 특히 관광객 수송용 모터보트 택시배들은 종종 속도 규정을 어겨 말썽이 되고 있다. 현지신문 <가제티노>와 <라 누오바> 등에서 가장 빈번히 지적하는 "남의 나라 지리적 형편과 문화를 존중함이 없이 과속을 요구하는 몰상식하고 이기적인 관광단체"로 한국관광객들도 손에 꼽힌다. 빠듯한 일정대로 움직여야 하는 한국 가이드들은 '빨리빨리'를 재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참고로, 2012년 베네치아 문과대학에서 현지 관광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가장 매너없고 공공의식이 없는 국민으로 중국관광단체를 꼽았고, 2위는 무조건 빨리 빨리를 외치는 한국을, 3위는 미국인들을 꼽았다. 반면에 가장 매너 있고 조용하며 깨끗한 식사예절을 갖춘 국민으로 일본관광객을 1위로 꼽았다.
지난 19일, 베네치아 시장은 조만간 베네치아 운하 규정을 강화시킬 계획을 밝혔다.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는 모터보트 택시배들의 대운하 출입 금지와 그외에 관광객들의 베네치아출입을 규제하는 제도가 만들어질 전망이다.
현재 베네치아 하루 평균 관광객 수는 8만여명이며, 베네치아 '가면 사육제' 기간이나 베니스영화제,레덴또레 불꽃축제,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식 등의 축제와 이벤트행사가 진행되는 시기에는 하루 15만~17만명 정도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반면에 베네치아 거주시민은 등록된 인원이 7만여명이고 실제 거주자는 4만 8천여명 정도다. 이들 실거주자들은 넘치는 관광객으로인해 도로가 더럽혀지고, 통행이 어렵다고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베네치아는 관광도시가 아니냐고. 관광수입이 주수입원이니 참아내야하는거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뜻밖에도 관광도시가 아니다. 관광수입은 전체수입에 단지 2%에 불과하다. 베네치아 본 섬은 대학도시이며, 각종 국제문화이벤트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문화사업이 주수입원이며, 육지쪽 위성도시들은 중장비 생산 및 나노공업,의약품제조 등 중화학 공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베네치아 호텔협회는 "대형선박을 타고 방문하는 관광객들과 카지노 방문객들, 그리고 단시간 관광을 마치고 허겁지겁 달려 나가는 단체관광객들(대부분이 중국, 한국, 폴란드, 인도 관광객으로 알려져 있다)은 관광수입에 전혀 도움이 안 될뿐더러 베네치아 기존의 이미지를 손상시킨다"며 그런 부류에 대해 관광규제를 요청한 바 있다. 이러한 대량 관광객들로인해 손상된 베네치아를 복원하는데 드는 비용이 더 막대하다는 것이다.
독특한 구조의 베네치아 여기서 잠시 베네치아 섬의 독특한 지리적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기 452년 아틸라가 이끄는 훈(Hun)족의 침입을 피해 베네치아인들은 가장 안전한 피난지로 아드리아해 부근 바다갯벌을 택해 정착케 된 게 지금의 베네치아다. 베네치아섬은 육지쪽의 브렌타 강물이 실핏줄처럼 흘러들어와 아드리아해 바다로 빠져나가는 구조다. 현재의 모든 하천, 운하구조는 서기 811년경에 완성됐다. 아틸라로부터 도망하고 롱고바르디족, 고트족, 프랑크족 등의 침입에 수시로 맞서아했던 베네치아인들에게 있어서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는 바로 지형이었고, 그것을 형성하는 주 역할을 한 게 바로 운하와 수로다.
특히 수로는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베네치아의 수로는 수에즈운하처럼 배를 통과시키기 위해 만든 수로가 아닌, 물을 통과시키기 위한 목적의 수로였다. 즉, 육지를 파내고 땅 전체를 매립하는 방법이 아니라, 물이 흐르고 있는 흐름을 자연그대로 둔 채 간석지 양 끝을 서로 연결해 만든 것이다. 그런 이유로 베네치아에는 '꼬불꼬불'한 운하가 많다.
여기서는 바닷물 조석간만의 차이도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규칙적인 바닷물 간만외에 비,바람에 의한 불규칙한 간만도 고려해야 했다. 그로 인해 전체적인 매립방법이 아닌 갯벌 하나하나의 간척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수로를 먼저 살리고, 그 이후에 지반 조성작업을 시작했다. 지반 조성작업 역시 철저히 자연적인 방법을 택해 이뤄졌다. 단단한 재질의 목재를 물밑으로 촘촘히 박고, 그 위에 바닷물에 강한 이스트리아산 석재를 쌓아 올렸는데, 점토와 모래의 칼란토층 위에 진흙을 바르는 독특한 작업이었다.
따라서 이런 특수한 지반을 보호하기 위해 베네치아 운하에서는 모든 배들의 시속을 제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서, 그간에 논쟁이 되었던 피에르 가르댕의 초고층 빌딩건축계획은 현재 실현이 불가능하게 된 상태다.
이토록 유구한 역사와 자연적인 방법으로 천년이 넘게 보존해온 베네치아가 지금처럼 만신창이가 된 것은 그릇된 행정 탓이 크다.
10여년 전 베네치아 시장이었던 파올로 코스타(P.Costa)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의 두번째 부인은, 베네치아를 본격적인 관광도시로 탈바꿈해 경제활성화를 이룬다는 목표아래,반대를 무릅쓰고 무리한 행정을 강행했다. 그 결과 곳곳에서 사고가 연속적으로 발생함은 물론 급기야 곤돌라 사망 사고까지 이어진 것이다.
당시 코스타 시장은 베네치아가 육지와 연결되는 부분에 새로운 다리(건축가 칼라트라바 설계)를 건설해서 대형 카지노 도박장에 관광객을 대량유치 했으며, 외곽 운하에는 대형 크루즈선박들의 출입을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등의 무리한 행정을 진행했다. 이로 인해 파올로 코스타 전 시장과 부인은 현재 검찰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
그들이 추진했던 칼라트라바의 다리는 실용성은커녕 안정성마저 위험한 것으로 드러났고,대형크루즈선박들 문제 또한 이탈리아 국회는 물론 나폴리타노 대통령까지 골치아프게 하는 이슈가 됐다.
특히 대형크루즈선박 운행은 대기오염은 물론 심각한 지형파괴와 지반붕괴현상을 유발하기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4만톤 크루즈선박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는 자동차 1만 4000대 배출량과 맞먹는다고 한다. 이것은 유럽의 자동차 배기량 기준치 규정을 3000배나 웃도는 위험수치다. 또한 지난달에는 4만톤 크루즈선박이 정규 수로를 무시하고 일반 대중교통배가 왕래하는 수로 가까이까지 침범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하기도 했다.
베네치아 살리기 운동 대형선박으로인한 대기오염, 지형파괴, 사고 위험등으로 인해 베네치아는 유네스코(UNESCO)로부터 빈번하게 경고를 받고 있다. 나사(NASA) 발표에 의하면 "지금 이 상태로 간다면 베네치아는 40~60년 이내에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세계곳곳에서는 '베네치아 살리기 운동'(Save Venice)이 일고 있으며 각국에서 환경보호기금이 전달되고 있다. 특히 일본은 민간, 공공기금 등의 후원을 꾸준이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이고 지속적인 문화교류와 후원을 베네치아시와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 내에서는 세계적인 가수이자 배우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아드리아노 첼렌타노(Adriano Celentano)가 그 선두에 나서서 베네치아 환경보호운동을 돕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라 베네치아시의 문제는 더이상 베네치아시, 베네또 지방정부만의 문제가 아닌 이탈리아가 당면한 문제로 부각된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베네치아 환경특별법'이 민주당 원내 부대표인 펠리체 카손 상원의원(F.Casson. 59.환경위및 국회면책 사면위 위원장)의 주도하에 국회에서 준비중이다. 해당법에는 "베네치아 고유의 수로 및 지반상태 등의 전문가와 베네치아 시민대표들이 주체가 된 환경위가 관련법 제정 등을 주도해야 하며, 특정지역에 대한 자율적 행정결정권 및 중앙정부의 무분별한 행정방침을 견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같은 산적한 문제들의 첫번째 해결책으로 19일 조르지오 오르소니(G.Orsoni)베네치아 시장은 관광단체들의 대운하 수로 모터보트 택시배 운항을 금지할 것을 구체적으로 검토중이며 그외에 불필요한 단체관광객들의 방문 또한 규제가 논의 중이다.
앞으로 베네치아가 그저 빨리빨리 구경하는 도시가 아닌, 천천히 느끼고 음미하는 도시로본연의 모습과 매력을 그대로 선보이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