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은 맞는데, 방법이 틀렸다'고 입을 모았다. 어떤 이는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것이라며 야박한 평가를 내렸다. 서울시교육청의 '일반고등학교 점프-업(JUMP-UP) 추진계획'에 대한 동료교사들의 반응이다. 지난 20일, 서울시교육청은 일선 교사들과 학부모·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거쳐 일반 고등학교를 살리기 위한 대책을 내놓은 것인데, 반응이 영 신통찮다.
문제의식과 취지야 전혀 나무랄 데 없다. 예체능 교육과 직업 교육을 확대하는 등 진로별 맞춤형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과 학습 부진 및 학교생활 부적응 위기학생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무한경쟁의 맹목적인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고등학교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지만, 성적 우수학생을 위한 영수 심화과정을 개설하겠다는 방안도 기존의 수준별 수업을 내실화한다는 차원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고교 서열화 정책'으로 인한 일반 고등학교의 이른바 '슬럼화' 우려에 대한 문제제기를 교육청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나름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서울시교육청의 추진계획, 내용물은 '엉망'
문제는 방식이다. '전략'을 완수하기 위한 '전술'이 획일적이고 '반교육적'이기까지 하다. '일반고등학교 점프-업 추진계획'의 핵심은 이른바 '거점학교'를 지정해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지역교육지원청별로 1개씩 교육과정 거점학교·진로교육 거점학교·교육력 제고 거점학교 등을 세워 적극 지원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를테면, '선택 집중형' 방식이라고 이해해야 할까.
그러나 이는 그렇잖아도 쇠고기 부위 나뉘듯 서열화된 고등학교의 현실에서 수많은 일반 고등학교마저 등급을 나눠 서열화시키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존의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특목고·자사고·자공고·일반고·마이스터고 등의 '등급별' 이름조차 외기 버거운 판에 일반 고등학교는 다시 '거점학교'와 '일반학교'로 나뉠 게 뻔하다.
교육청은 지정된 거점학교 당 최고 6억7000만 원까지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나머지 일반 고등학교에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는 건 물론, 해당 학교의 슬럼화를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말하자면, '점프-업'이 필요할 만큼 위축된 일반 고등학교의 문제는 '고교 서열화 정책'으로 야기된 것인데, 이를 다시 '서열화'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현실성도 떨어진다. 이 계획이 그대로 실현되면 학생들은 교문을 벗어나 거점학교를 찾아가 수업을 들어야 한다. 학생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적지 않은 학생들이 수업시간마다 교실을 찾아 이동해야 하는 '교과교실제'에 불만을 표출하는 현실에서, 학교를 옮겨 다녀야 한다면? 얼마나 수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
거점학교를 따로 지정해 운영할 게 아니라, 모든 학교에서 운영을 내실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거점학교는 되고 일반학교는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것이 더 현실적이고 교육적으로도 합당하다. 뻔히 예상되는 혼선과 부작용을 알면서도 추진한다는 건 아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등생 모아 '과외교실' 개설? 이해 안 된다다른 건 모두 접어두고라도, 가장 큰 문제는 교육청이 거점학교에다 성적 우수학생들을 모아 심화학습과정을 마련한다는 점이다. 거칠게 말해서, 세금을 들여 일반 고등학교 우등생을 따로 모아 '영수 과외 교실'을 열어준다는 이야기. 이것이 일반 고등학교 살리기의 일환이라는 서울시교육청의 설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특목고와 자사고 등이 성적 우수학생들을 싹쓸이하는 현실이 지속되면서 일반 고등학교가 시나브로 슬럼화하게 됐다는 진단인 듯하다. 성적 하락이 슬럼화를 가져왔다는 건데, 일반 고등학교 '평균' 성적 향상의 열쇠를 '될 성 부른 아이들'이 쥐고 있다는 인식에서 그런 방침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특목고와 자사고 '급'의 일반 고등학교 우수학생과 그들 학부모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를 기대했을 수 있다.
더욱이 교육청은 성적 우수학생들이 이 과정을 별도 이수하게 되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돼 입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쯤 되면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대놓고 둘로 쪼개라고 학교에 지시하는 셈이다. 이 이야기를 듣노라니, 지금으로부터 꼭 6년 전 겪어야 했던 '봉변'이 떠올랐다.
학생들을 갈라놨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
지난 2007년 <오마이뉴스>에 고등학교가 이른바 '특별반'을 별도로 운영하는 건 반교육적이라는 기사(관련기사 :
상위권 학생만을 위한 '특별반'을 아시나요?)를 썼다가 기사 속에 언급된 고등학교의 선생님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들은 "너희 학교나 신경 쓰라"는 말까지 했다. 당시 '특별반'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학교마다 '심화반', '서울대반', '연고대반', '영재반' 등의 다양한 명패를 달고 공공연하게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당시 그 학교가 운영하던 특별반의 실상은 이랬다. 정규 수업만 함께 받을 뿐, 이후 일과는 별도로 운영됐다. 방과 후 수업 내용은 물론, 공부하는 공간도, 시간도 모두 '특별'했다. 수준별 수업과는 차원이 달랐는데, 특별반 아이들은 입학과 동시에 선발된 '학교의 명예를 빛낼 아이들'로서 부모와 학교에 의해 별도로 관리됐다.
당시 아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극소수의 특별반 아이들 교실은 무더운 여름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천국이었고, 다수의 '일반반' 아이들 교실은 더운 바람만 뿜어대는 선풍기 몇 대가 힘겹게 돌아가는 찜통이었다고 한다. 단지 두 교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차이는 '공부를 잘 하고, 못 한다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폐쇄적으로 운영됐기에 '일반반' 아이들과는 교류 자체도 거의 없었다. 예컨대, 그들끼리만 친구 관계가 형성돼 특별반 아이들은 밥도 그들끼리만 따로 먹고, 심지어 성적표가 나와도 보통 아이들 것과는 비교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 자체를 수치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졸업한 제자가 천연덕스럽게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현직 교사로서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 내가 일하는 지역에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된 뒤 학교마다 '공식적으로' 특별반이 해체됐지만, 지난 이명박 정부의 고교 서열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스멀스멀 다시 살아나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서울시교육청의 '영수 과외 교실' 운영 방침이 일반 고등학교 살리기 대책으로 끼워져 발표된 것이다. 이것만 놓고 보자면, 6년 전으로의 완벽한 퇴행이다.
'고교 서열화 정책' 폐기하면 될 일'뉴 밀레니엄'이라고 떠들썩했던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10년 하고도 3년이 더 지났다. 새 시대의 강산이 변하고도 남았을 시간이 흘렀다. 우리 교육도 이제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언제까지 밑도 끝도 없는 '경쟁'만 부르짖으며 '수월성 교육' 운운해야 하는가. '한 명의 인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그럴 듯한 말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됐음을 우리는 목도하지 않았는가.
교육의 중심은,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아이들'이다. 교육청의 주장대로,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을 '점프-업'시키고자 한다면,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마저 성적으로 등급화하려는 이번 방침을 재고하고 인과관계를 찾아 정석대로 문제를 풀면 된다. 모범 정답이 뻔히 보이지 않나. 우리 교육을 황폐화시킨 기존 정부의 '고교 서열화 정책'을 폐기하면 된다.
특별반과 심화반 등 이런 '류'의 학교 내 반교육적 운영 행태가 이제 교육계에서 사라질 것으로 여겼지만, 애꿎게도 서울시교육청이 새로운 정책이라고 내놨다. 참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