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화면에 찍힌 이름은 아는 분이었다.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짧은 인사를 끝나자 그는 "국정원 집회 가세요?"라고 물었다. 전혀 그런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안 간다"고 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은 후 왠지 꺼림칙했다. 전화를 한 이가 진주시청 공무원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전화를 했다.
"아까 물어보신 것 때문에 전화를 다시 드렸습니다. 그때는 생각없이 답을 했는 데 혹시 제 개인에 관련된 일인가요?""아닙니다. 목사님 개인에 관련된 일은 아닙니다. 서울에서 국정원 집회를 한다기에 혹시 (기자가 속한) 기독교 시민단체가 참여하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했습니다. 기독교 시민단체가 국정원 집회 하는 것은 아니죠?""예.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별 것 아니라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전화를 한 이가 시청 공무원이라 넘어갈 수 없었다. 설마 시청에서 민간단체들의 동향을 조사하려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청에 전화를 했다. 대표전화를 통해 연결된 곳은 '감사실-총무과-소통과'였다.
감사실과 총무과 담당자는 시청 차원에서 그런 정보 파악을 지시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사실 감사실은 공무원 비리를 담당하는 곳이지, 정보와 동향을 파악하는 곳은 아니다. 총무과 역시 정보 파트는 아니다. 총무과 공무원은 정보와 동향 파악은 소통과에서 한다며 연결시켜주었다.
기독교 시국선언 앞두고 공무원이 "집회 가세요?" 전화... 왜?<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임을 밝히고, 오전에 시청 공무원으로부터 국정원 집회에 참석하는지 묻는 전화를 받았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다. 담당 공무원은 "시청 차원이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기독교 공동대책위원회가 시국선언을 하는데 (진주에서) 혹시 거기 참석하는 사람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라'는 부탁을 했다"고 말했다.
정말 22일 오후에는 국정원 선거개입 기독교 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 청계광장에서 1천 명이 참여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그들은 "대학생들과 종교계, 학계, 시민단체 등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규탄의 목소리가 뜨거워지는데도 청와대와 정치권은 진상을 규명하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며 "국정조사 증인들은 진실을 감췄고 새누리당 특위 위원들은 본질을 왜곡하기에 급급했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개인 차원이지만, 시청 공무원이 시민에게 국정원 관련 집회 참석 여부를 묻는 것은 분명 문제다. 아내는 사실 이게 '민간인 사찰'이 아닌지 적잖게 놀라고 불안해했다. 정병욱은 <식민지 불온열전>이란 책에서 권력이 사람을 길들이는 방법은 '규율'이라고 했다. 이어 규율로 동원되는 것이 "관찰(감시), 제재, 시험"이라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관찰이다. 권력의 시선이 개인에 다다를 때 지배가 시작된다"고 썼다.
공직자가 아무런 악의 없이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에 전화를 한 것이라고 쳐도, 시민은 그런 전화를 받은 것만으로 공권력이 자신을 관찰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