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7시쯤 국립공원 무등산 새인봉 근처에 불. 아침 7시 20분 현재 소방 헬기 두 대와 소방관과 공무원 수백 명이 동원돼 진화 중. 강풍 때문에 진화에 어려움."2월 17일 무등산에 산불이 났다는 뉴스 내용이다. 무등산은 이곳 광주에서는 그냥 산이 아니다. 어느 곳이나 주변에 있는 산에 대한 애정이 적다 할 수는 없겠지만, 무등산에 대한 광주 시민들의 애정은 남다르다. 어머니와 같이 포근한 산. 무등산은 어머니이고 우리이다. 다행히 0.5ha 정도 피해를 주고 진화됐다. 가슴이 철렁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가뭄이 계속되더니 비가 흠뻑 내렸다. 타들어가던 농작물에도 해갈이 되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풀벌레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찌~' 새벽녘에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는 여름 내내 지친 내 몸에 다시 한 번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무더위가 한풀 꺾여 가을의 초입이다.
지난 목요일(29일) 무등산 새인봉 탐방에 나섰다. 새인봉은 해발 608m 로 중머리재와 같은 높이다. 주차장에서 약사사, 새인봉을 거쳐 중머리재는 산행인들이 선호하는 코스다. 높지도 않고 급경사도 있어 호흡을 조절할 수도 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정류장에서 오전 7시에 출발했다. 태풍 예보가 있어서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며칠 전에 내린 비 때문에 계곡에 물이 많이 흐른다. 증심사 계곡은 80년대만 해도 최고의 피서지였다. 도심지에서 가깝고 물이 시원할 뿐 아니라 나무 그늘이라 가족 단위로 피서하기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었다.
우거진 숲속길을 한발 한발 올라섰다. 솔향기가 그윽하게 코를 자극한다. 매미 또한 여기저기 경쟁이나 하듯이 소리 높여 울어댄다. 산중 절간의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 그리고 매미 소리가 절묘하게 화음을 이룬다. 암벽 위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파란 하늘을 향해 우뚝 섰다. 시원한 바람이 내 얼굴을 감싸듯이 어루만진다.
정상에 오르니 시가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래로 투구암과 선두암이 내려다 보인다. 선두암은 그 모습이 뱃머리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선두암의 한 칼로 자른 듯한 10m 높이의 절벽에서 산악인들이 암벽 등반 훈련장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투구암은 장군이 투구를 쓴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멀리 북동쪽으로 중봉, 입석대, 서석대 등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날씨가 쾌청할 때는 지리산, 백운산, 모후산, 월출산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아스라하게 그림자처럼 능선만 보인다.
사철 내내 푸름을 자랑하는 소나무는 절개를 상징한다. 암벽 위에 우뚝 서서 우러러 보는 소나무는 한 폭의 그림이다.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자란 소나무의 구불구불한 모습에서 자연의 놀라운 생명력이 느껴졌다. 실은 지난 2월의 산불 소식에 소나무가 걱정이 되었다. 불이 주위로 번지는 것보다 '새인봉의 소나무'를 볼 수 없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새인봉은 바위 모양이 옥새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달리 사인암이라고도 한다. 두 개의 바위가 엎드려서 천제등을 향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나 지금은 일반화된 새인봉으로 부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응수 박천정이 서쪽의 한 봉우리를 가리키며 저것이 사인암(약사사 앞 서쪽에 있음, 속칭 새인봉)으로 전에 꼭대기에 올라가 보았더니 돌부리가 구름을 찌르고 벼랑이 허공에 솟았으며, 매의 둥지가 있는 것을 굽어볼 수 있었다고 했다."지금부터 440여 년 전 제봉 고경명의 무등산 견문록 <유서석록>의 일부다. 감동이 뼛속까지 진하게 밀려온다.
덧붙이는 글 | 1. 제봉 고경명의 유서석록, 박선홍의 무등산, 한국가사문학관 등을 참고하였습니다. [ 박천정 : 조선중기 의병 /고경명 : 조선중기 문신, 의병장 /박선홍 : (전)광주상공회의소의장, (전 )조선대학교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