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갱 토루라니, 무슨 뜻일까?
호텔에서 전라갱(田螺坑) 토루가 있는 서양진(書洋鎭)까지는 1시간이 걸린다. 서양진 역시 남정 토루의 핵심 클러스터다. 이곳 투어리스트 서비스 센터에서 차를 내린 우리는 토루 관광 전용버스로 갈아탄다. 관광코스는 두 가지다. 하나는 A선으로 전라갱, 유창루, 탑하촌까지 가는 남쪽 노선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B선으로 화귀루, 운수요, 토루 마조로 이어지는 북쪽 노선이다. 우리는 남쪽 A선을 따라간다. 그것은 A선에 특이한 배치를 가진 전라갱과 700년의 역사를 가진 가장 오래된 토루 유창루, 장수촌 마을 탑하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전라갱이 있는 상판촌(上坂村)으로 향한다. 완전 산골길이다. 중간 중간 과수원, 차밭, 대나무 군락 등 산촌 풍경을 볼 수 있다. 30분쯤 지나 버스는 전라갱 토루 전망대에 멈춘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표를 끊은 다음 안으로 들어가 전라갱 토루를 내려다본다. 가운데 방형 토루를 중심으로 원형 토루가 네 개 있는 형상이다. 중국 사람들은 이것을 사채일탕(四菜一湯)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했다. 방형 토루가 탕에 해당하고, 원형 토루 네 개가 4가지 반찬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휘황찬란한 오중주라고 음악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휘황찬란이라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오중주임에는 틀림없다.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바스가 짝을 이룬 현악기 4대에 피아노가 1대 받쳐주는 양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라갱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60년대 말 70년대 초다. 동서냉전이 극에 달했을 때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전라갱을 비롯한 복건 토루를 대형 핵기지로 오판해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기 때문이다.
그럼 전라갱은 무슨 뜻일까? 밭 전(田) 자에 우렁이 라(螺) 자다. 전라갱은 지금까지 보아온 토루와는 달리 산중턱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개울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밭농사를 짓고 오리를 기르며 살았다. 그런데 그 오리가 생각보다 잘 자라더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밭 주변에 우렁이가 살고 있고, 오리가 이것을 잡아먹으며 더 살이 찔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토루를 전라갱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우렁이 중 하나가 여인으로 변해 전라갱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온다. 그녀는 재산을 모아 토루를 짓게 되었는데, 그것이 가장 오래된 보운루(步雲樓)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하기 좋아하는 이야기꾼들이 만든 스토리텔링이다. 보운루는 1796년(淸나라 嘉慶 1년) 황백(黃百) 삼형제에 의해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삼형제는 명당을 찾다 이곳에서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 명당을 발견하고는 보운루를 지었다고 한다.
사채일탕 맛보고 오중주 들어보기우리는 자연 속에 위치한 토루를 조망하고는 계단을 통해 전라갱 토루로 내려간다. 내려가면서 토루가 점점 더 가까이 보인다. 우리는 먼저 길에서 가장 가까운 화창루(和昌樓)로 들어간다. 전라갱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토루로, 3층으로 된 원형이며 각층마다 22개의 방이 있다. 입구로 들어가면서 마주보이는 공간에 조당을 마련해 놓고 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토루 보운루다. 방형의 토루로 지은 지 200년이 넘었다. 그래선지 기와지붕을 수리하고 있다. 3층으로 각층마다 26칸의 방이 있다.
보운루라는 이름은 보상영백복(步上迎百福) 운리집천상(雲履集千祥)에서 나왔다. 걸을 때마다 백 가지 복이 영접하고, 천 가지 상서로운 일이 구름처럼 모여든다는 뜻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조당이 아니라 불단이 있다. 관음보살로 보이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곧 이어 이웃하고 있는 진창루(振昌樓)로 간다. 1930년에 건설된 원형 토루로, 각층마다 26개 방이 있는 3층짜리 건물이다. 1936년에도 진창루와 같은 모양 같은 크기의 토루가 만들어졌으니 서운루(瑞雲樓)다.
이제 마지막 토루 문창루(文昌樓)만 남았다. 1966년에 건설된 3층짜리 원형 토루로, 각층마다 방이 32칸씩 있다. 전라갱 토루 중 문창루가 가장 장사를 잘 하는 것 같았다. 음식도 팔고 농산물도 팔고 토산품도 팔고 책도 팔았다. 이곳에서 나는 '복건을 보고 토루에서 놀자'는 뜻을 지닌 <看福建 游土樓>(2011)라는 책을 한 권 샀다. 작고 얇지만 토루를 잘 설명한 좋은 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전라갱에서는 현재 황환매(黃煥梅)가 전라반장((田螺飯庄)을 운영하며 관광객들에게 숙식을 제공한다고 한다. 현재 토루에서는 농사 외에 관광업이 중요한 생계수단이 되고 있다. 토루 구경을 마친 우리는 전망대에서 내려온 길이 아닌 다른 길로 해서 버스를 타러 간다. 버스가 마을 아래 동구 밖에서 우릴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 버스를 타고 길을 내려다가 전라갱을 올려다보는 전망 포인트에서 다시 한 번 전라갱을 조망할 수 있었다. 전라갱이 내려다 볼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제 정말 전라갱과 이별이다. 다음 목적지는 4㎞ 떨어진 하판촌(下坂村)에 있는 유창루다.
가장 오래된 토루 유창루를 보다
버스는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달려 하판촌에 이른다. 이 마을은 개울가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개울을 따라가며 토루를 살펴본다. 토루벽에 '모주석 만세(毛主席萬歲)라는 글씨 흔적이 있는데, 문화혁명의 잔재라는 생각이 든다. 취원루(聚原樓)라는 토루에는 노동자의 활동을 보여주는 조각상이 있다. 그렇다면 하판촌은 강한 당파성을 가진 공산주의 마을인 것 같다. 드디어 우리는 유창루(裕昌樓)에 도착한다. 유창루는 두 가지로 유명하다.
하나는 복건 토루 중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원나라 때인 1308년부터 1338년 사이에 만들어졌으니 그 역사가 무려 700년이나 되었다. 당시 유(劉) 나(羅), 장(張), 당(唐), 범(范)씨가 힘을 합쳐 5층의 원형 토루를 만들었다고 한다. 각층마다 54칸의 방이 있으니 전체 방수가 270칸이나 되어야 하나 대문 칸이 있기 때문에 방수는 269칸이 되었다. 원래 7층으로 지으려고 했으나, 기와가 완성되지 못해 5층까지 지었다는 설이 있다.
다른 하나는 유창루가 비바람과 지진을 견디면서 동쪽으로 기울고 서쪽으로 왜곡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창루를 동도서왜(東倒西歪), 동왜서사(東歪西斜), 왜왜사사(歪歪斜斜 )루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울기가 심한 곳은 경사가 15도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이 무너지지 않아 지금도 토루 건축의 표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유창루 안으로 들어가자 가운데 원형의 관음청이 나온다. 관음청에는 말 그대로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관음청 옆에는 토루 화랑이 있어 들어가 보니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기법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 손문과 모택동의 초상화도 보인다. 화랑의 바깥에는 풍경화들이 걸려 있다. 유창루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가게들이 많은 편이다. 나는 이곳에서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들을 살펴본다. 실제 구금(口琴)이라는 악기를 입으로 불어보니 소리도 났다. 그러자 주인이 소리 내는 방법을 적은 팸플릿도 주면서 살 것을 권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자신은 없었다.
나는 악기 대신 20위안을 주고 실용적인 조각품 하나를 샀다. 용 모양으로 만든 조각품인데 그릇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잠깐 유창루의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창고로 별 것은 없었지만 내려다보는 조망이 조금 더 좋았다. 그런데 관리인이 내려올 것을 요구해서 더 이상은 올라가지 못하고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1층으로 내려온 나는 1층 주방을 살펴보았다. 유창루의 주방에는 다른 곳과 달리 샘이 있는 게 특징이었다. 다른 토루에는 샘이 한 두 개 정도 있는데, 이곳 유창루에는 22개의 샘이 있다.
탑하촌 장씨 사당을 찾아서
유창루를 보고 나서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탑하촌(塔下村)으로 간다. 그곳은 역사가 유구하고 풍광이 수려하며 문화가 온후한 중국 최고의 경관 촌락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탑하촌 가운데를 청명징벽(淸明澄碧)한 계류가 흐르고, 그 개울 위로 11개의 돌다리가 있으며, 주변에 42개의 토루가 위치하고 있다. 징벽이란 '맑고 푸르다'는 뜻이다. 전라도 사투리로 말하면 '징하게 푸르요'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탑하촌을 '신령스럽고 빼어난 물의 고장(靈秀水鄕)'이라고 부른다.
탑하촌 입구에서 우리는 전동관광차를 타고 가야 할지 걸어가야 할지로 잠시 의견이 갈렸다. 어제 토루 장성에서 너무 고생을 한 터라 많은 사람들이 전동차를 타기로 한다. 나도 타는 편에 끼어 편하게 탑하촌 중심지역까지 갈 수 있었다. 마을 중심에는 하천을 가로지르는 석교가 있었다. 이름은 설영교(雪英橋)다. 다리 아래 계류에는 오리가 놀고 있고, 마을은 한가하고 고즈넉하다. 이곳은 100세가 넘는 노인이 사는 장수촌이라고 한다. 또 사는 사람들의 성씨도 대부분 장씨라고 한다.
우리는 먼저 장씨 가묘(家廟)인 덕원당(德遠堂)으로 간다. 하천에서 산 쪽으로 난 골목을 따라 가면 언덕배기에 사당이 있다. 명말청초에 지은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건축이다. 사당 앞에는 연못이 있고, 못 앞쪽으로 당간 모양의 기둥이 서 있다. 중국어로 석룡기간(石龍旗杆)이다. 윗부분에 용을 새긴 돌기둥으로, 행사가 있을 때는 깃발을 단다고 한다. 기둥이 모두 21개로, 이 마을 출신으로 이름을 떨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정치적, 학술적으로 큰 업적을 남긴 사람만 기둥을 세울 수 있으며, 반드시 종친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덕원당의 내부는 여늬 사당과 다르지 않다. 약간 어두우며, 향을 피우느라 연기가 자욱하다. 내부를 구경하고 나온 나는 마을을 내려다본다. 좁은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다시 하천 주변으로 내려온 나는 한두 개 토루를 구경한다. 유덕루(裕德樓), 의남루(倚南樓)가 유명한데, 규모가 작은 편이다. 3층 또는 4층으로 각층마다 10개 내외의 방이 있다. 의남루 문안에서 나는 디딜방아를 보았고, 금옥만당(金玉滿堂)이라고 쓰인 사당에서는 특이한 형태의 신상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