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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5일, 퇴근하고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제보가 있었다. 그건 바로 중학교 3학년 큰아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 같다는 이야기. 나는 순간 당황하며 그럴 리가 없다며 강력히 부인하고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이들이 등교하고 난 뒤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우리 집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은 할아버지밖에 없는데, 옥상이나 마당에서 발견된 꽁초를 보면 할아버지 담배는 아니더라. 가끔 한밤 중에 큰아들이 옥상에 올라가는 걸 봤어."

그 이야기를 듣고 착잡한 심정으로 출근한 뒤 어릴 적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너희들은 언제부터 담배를 피웠는지, 왜 피우게 됐는지, 부모님은 아셨는지, 부모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는지 등을 물었다.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고 방법을 찾고 싶었다.

빠르게는 초등학교 6학년때 호기심을 피워봤다는 친구도 있었고, 중학교 들어가서 친구들과 포르노 비디오를 보면서 피워봤다는 친구도 있었다. 또 친구들이 피우니까 그냥 따라해봤다는 사례도 있었다.

어쩌면 내가 큰아들도 그럴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건 아닌지 싶었다. 나 역시 중학교 1학년 때 호기심으로 담배를 피워본 적이 있었다. 나는 '내 아들은 항상 어리고, 바르고, 착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부모 반응에 대해 친구들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친구들은 '그냥 맞았다', '안 좋게 생각했다', '버릇없다고 하더라' 등의 반응을 내놓으면서 부모들이 흡연은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규정지어 놓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너는 절대 그렇게 대처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저녁에 큰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대화로 풀어봐야겠다, 어떤 식의 대화가 바람직할까 고민하며 큰아들을 기다렸다. 저녁식사 시간이 다 됐을 즈음, 큰아들이 집에 돌아왔다.

"니 가방 속 담배 이야기 해봐"... 아들의 반응은?

 우리 집 세 아들이 포항 양포 앞바다에 낚시가서 배고프다며 즉석 봉지라면을 먹고 있다. 왼쪽부터 둘째 백대현, 막내 백진현, 첫째 백상현이다. 한 달에 한 번은 아이들과 낚시를 하러 간다.
우리 집 세 아들이 포항 양포 앞바다에 낚시가서 배고프다며 즉석 봉지라면을 먹고 있다. 왼쪽부터 둘째 백대현, 막내 백진현, 첫째 백상현이다. 한 달에 한 번은 아이들과 낚시를 하러 간다. ⓒ 문경자

"상현아, 나 너한테 듣고 싶은 말이 있는데, 엄마한테 해줄 말 없니?"
"엄마, 뭐?"
"니가 비밀이었으면 하는 그 이야기. 나는 직접 듣고 싶은데…."
"엄마한테 비밀은 없는데?"
"그럼 굳이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아니겠네, 그럼 해봐."
"근데 뭐? 무슨 이야기?"
"내 입으로 먼저 꺼내면 니가 민망해질 텐데 괜찮겠어?"

아들이 순간 당황하며 씨익 웃었다.

"니 가방 속 담배말이야."

아들이 얼굴 빨개졌다.

"난 담배 피우는 게 좋다 나쁘다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냐. 그건 이미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호기심으로 담배를 언제 처음 피웠다고 했지?"
"저번에 엄마가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들이랑 모여서 피웠다고 했었어. 기억나."
"그 친구들 중 나만 빼고 아직도 다 피워.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호기심이 충족됐다고 담배를 끊을 수는 없어, 습관이 돼버리고 나면. 넌 호기심인 거니? 습관적인 거니?"
"호기심~."
"근데 엄마는 그 호기심이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넌 그게 지금이니 조금 고맙기는 하다."

아들, 순간 당황했다.

"엄마, 안 혼내? 이게 다야?"

 아들에게 "니가 담배 사러 떳떳하게 편의점 드나들 수 있을 때, 그때 피웠으면 한다"고 말해줬습니다.
아들에게 "니가 담배 사러 떳떳하게 편의점 드나들 수 있을 때, 그때 피웠으면 한다"고 말해줬습니다. ⓒ sxc
"근데 엄마는 말이야. 니가 담배 사러 떳떳하게 편의점 드나들 수 있을 때, 그때 피웠으면 한다. 너도 교복 입고는 사러 못 가잖아. 그럼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든지, 어른인 척하고 가든지 해야 하는데…. 그럴 때는 너 자존심 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말이야. 호기심이 충족됐으면 그것까지 생각을 좀 해보면 좋겠다."

그러자 아들이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쓰레기통에 버렸다.

"엄마, 미안. 나도 부끄럽고 떳떳하지 못해서 그냥 버리려고 했어."
"그래, 그런 생각을 한다면, 엄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근데 엄마…. 이게 다야?"
"뭐가?"
"안 혼내? 안 때려?"
"나는 담배 피우는 게 잘못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
"엄마, 사실 놀랐어. 난 들키면 맞거나 혼날 줄 알았는데…."
"엄마가 아니라 학교에서 들켰으면 넌 반쯤 죽었을 테지. 왜, 반 죽여줄까?"
"엄마, 쿨해."
"내가 좀 그렇지?"

옆방에서 나온 둘째가 "엄마, 형아 안 혼내?"라 묻길래 "왜 혼내야 하지?"라고 되물었다. 둘째도 엄마가 멋있단다. 그러자 큰아들이 "엄마, 진짜 부끄럽고 미안해"라고 말했다.

큰아들이 버린 담배를 봤다. 두 개피밖에 안 폈던데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준 용돈으로 담배 사놓고 버린 게다. 아, 아깝다. 내 돈. 이 녀석, 용돈 확 줄일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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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첫경험#담배피우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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