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가 시작되었다. 2학년 아이들은 어느 새 올해만 넘기면 고3이라는 생각에 표정들이 사뭇 비장하다. 이번에 또 수능제도가 바뀐다고 한다. 사실 현장에 있는 교사로서 입시제도가 너무 자주 바뀌는 것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결국 피해는 학생들이 보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는 당장 중요한 것부터 치러야 했다. 바로 2학기 한국지리 수행평가.
1학기 수행평가는 국내여행 콘셉트로 큰 호응을 일으켰다. 실제로 조사를 하고 나서 가족들과 여행을 직접 다녀온 학생들도 여럿 있었다. 그 학생들은 카톡이나 문자로 '선생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연락을 했지만 사실 내가 한 것은 없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조사하고 준비하여 발표한 학생들의 공이다. '내가 무슨, 니가 열심히 한 것이 더 자랑스럽구나. 구경 잘하고 다녀와서 선생님께도 말해주라'라고 답을 보냈다.
2학기 수행평가에 대해서도 많은 기대가 있었다. 방학기간 내내 고민을 했었다. '이번에는 세계여행으로 해볼까? 너무 범위가 넓나? 아이들은 좋아할 것도 같은데…. 인터넷에 있는 어떤 사람의 여행기를 복사해서 제출하면 어쩌지? 내가 확인을 다 할 수 있을까? 1학기에는 실내조사 위주로 했으니 2학기에는 야외조사 위주로 해볼까?' 혼자 정리가 되지 않아 학생들에게도 직접 물어봤다.
"선생님이 2학기 수행평가로 괜찮은 아이템을 찾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해야 하는 것이구요. 좋은 생각 있는 친구들은 언제든 말해주세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고 장고 끝에 결정했다.
"2학기 수행평가 과제를 발표하겠습니다!!!!"두두두두둥!!!! 나를 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기대와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눈빛들.
'흐흐흐 이놈들도 기대하고 있구나.'"2학기 수행평가 과제는!! 바로!! 우리 동네 조사하기입니다!"순간 정적.
"네 선생님 무슨 말씀이신지요?""네 통합창원시에는 모두 합하여 대략 40여개의 동과 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6반을 수업을 하는데 한 반에 조가 7개 정도 나옵니다. 따라서 7개조 6반을 곱해보면 42가 나오죠. 즉 모든 반의 모든 조가 각기 다른 지역을 뽑아 야외조사를 하는 것입니다. 단 조사 필수항목이 5개 있습니다. 지대, 지가, 접근성, 토지이용현황, 경관은 필수 사항입니다. 덧붙여 그 지역의 특별한 내용들을 한두 가지 추가하면 되겠습니다. 지역의 변화를 알기 위해 그 지역의 과거를 조사하는 것은 기본입니다."웅성웅성…….
"자 그럼 지금부터 조장을 선출하고 조를 뽑겠습니다."우선 A부터 F까지 7개의 조를 칠판에 적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추천으로 각 조장을 뽑았다.
"조장들은 나오세요. 지금부터 조원을 뽑겠습니다." 출석부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씩 지명하면 원하는 조장들이 손을 든다. 여럿이 들면 가위 바위 보를 통하여 이긴 조장이 스카우트를 하는 방식이었다.
조장 밑에 자기 이름이 적힐 때마다 아이들은 탄성이나 한숨을 내쉰다.
"니 왜 내 뽑는데!!!" "내 맘이다." "야호!!! 우린 같은 조" "내가 뭘 잘못했는데 앞으론 잘할게, 제발" 난리도 아니다. 나도 재미있지만 아이들도 즐긴다. 조를 다 뽑고나서 다시 조장들을 불렀다.
"여러분 이제부터가 하이라이트입니다. 지금부터 조장들은 자신들이 조사할 지역을 뽑게 됩니다. 우리 동네부터 저 멀리 진해나 창원 끝지역, 면 지역까지 뽑을 수 있습니다. 모두들 기를 주시기 바랍니다.""우아!!!!!! 잘 뽑아라. 알제?" "내만 믿어라. 내가 신의 손 아이가."긴장하는 아이들.
"2-5반 B조!!!! 동읍!!!!""와~~~~!!"하고 웃는 다른 조 친구들, 정작 B조 아이들은 되레 묻는다.
"선생님 동읍이 어디에 있습니꺼?" "찾아봐라. 하하하."
"2-5반 D조!!!진전면!!!", "와 그기 우리집인데!!!", "그기 버스 가나?", "간다. 무시하지마라." 난리다.
"2-6반 B조!!마산 중앙동!!!", "오예!!!!!""으라차차!!!" 환호하는 아이들. 조를 모두 뽑고 나서 바로 실내조사를 시작했다.
"자, 이제 조와 장소가 결정되었으니 조사방법과 조사 시기 등조별 회의를 하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반에서는 교과서와 지리부도, 아이들의 상식으로 회의가 진행되었지만 자신의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회의를 진행한 반도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습활동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폰을 오전에 걷고 필요할 때 개인적으로 허락을 득하고 사용하거나 하교시 학생들이 폰을 찾아간다. 하지만 이번 같은 수업에는 개인의 스마트폰을 사용하니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 교사가 계속 돌아다니며 아이들과 피드백을 하고 폰으로 딴짓(?)을 하진 않는지 봐야 하는 고충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딴짓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다.
"우리 아침에 만나서 돌아댕기다고 점심은 어디서 먹을래?", "이 동네는 국밥이 유명하다 아이가, 국밥 먹자." "글나? 그럼 그라자." "커피숍도 한번 가야지. 팥빙수도 먹으면서 회의해야지." "언제 갈래?"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발표일은 10월 14일이다. 빠른 조는 이번 주 주말부터 출발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내지역알기와 내지역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