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도, 신도 사랑을 빼앗을 권리는 없습니다."
결혼식에 참석한 방종운 금속노조 콜트악기지회장은 힘주어 말했다. 동성애 커플인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의 '어느 멋진날 당연한 결혼식'이 7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광통교에서 열렸다. 광통교에 놓인 300여 개의 의자는 꽉 채워졌고, 청계천변은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깃발과 함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사람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1000여 명의 하객들이 이날 결혼식을 봤다.
오후 7시 30분께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결혼생활 약속'을 발표하던 김승환씨는 "당신이 힘들거나 아플 때"라고 말한 후 말을 잇지 못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김씨는 "당신의 손과 발이 돼 주겠습니다"라고 이어 말했다. 김조광수씨는 "사랑을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않을 것이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오후 4시 30분 기자회견으로 시작한 결혼식은 오후 6시 본식과 문화행사를 거쳐 오후 9시 마무래됐다. 사회는 영화감독인 변영주·김태용·이해영씨가 맡았다.
"평생 반려자로 만나 영원히 사랑하겠다"오후 4시 30분 검은 정장을 입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씨 커플은 회견 내내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기자들의 요구에 손으로 하트를 그려 보이며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김조광수씨는 "결혼식을 마치면 저희는 법적으로 인정하든, 하지 않든 부부가 된다"며 "앞으로 우리를 부부라고 정확하게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이성애자였다면 이효리씨처럼 조용히 했을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 결혼을 계기로 동성애자도 이성애자처럼 결혼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 후엔 1시간 가량 결혼식에 참석한 지인, 일반 시민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도 가졌다.
오후 6시 본식이 시작되자 김조광수씨는 <몰래한 사랑>를 개사한 노래를 부르며 결혼식 무대에 올랐다. 흰 정장으로 옷을 갈아 입은 모습이었다. 김조광수씨는 노래 중 독백을 하며 "(내가 동성애자임을 알게된 후)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수도 있을 거라는 그런 믿음 때문이었다"며 "9년 전에 그 사람을 만났다, 그의 뒤에서 후광이 보였다"고 말했다.
김조광수씨의 말에 이어 등장한 김승환씨는 "이 사람을 누군가에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 못했다, 공개적으로 결혼할 수 있을지는 더욱 생각 못했다"며 "그걸 가능하게 해 준 사람을 만났다"고 덧붙였다.
이어 두 사람은 "김조광수와 김승환은 평생의 반려자로 만나 영원히 사랑할 것을 서약한다"며 혼인 서약을 했다. 또 케이크를 자르는 대신 컵케이크를 하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오후 7시 30분께 결혼식의 마지막인 행진에 앞서서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나온 김씨 커플은 '결혼생활 약속'을 발표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김승환씨와 함께 하객 중 한 여성도 눈물을 흘렸다.
결혼식은 축하 공연이 더해지며 하객들의 흥을 돋웠다. 가수 강허달림·이디오테잎·사우스카니발·허클베리핀·이이템포 등이 공연을 선보였다. 특히 국내 유일의 게이 합창단인 지(G)보이스는 김씨 커플과 함께 '몰래한 사랑'을 불러 자리를 빛냈다.
하리수 "이번 결혼식, 성소수자 인권 향상의 물꼬 터"
정치권을 포함한 유명인사들도 이날 결혼식에 참석해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무대에 올라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관습이라고, 비즈니스라고 이야기한다"며 "오늘 결혼하는 이 부부가 가족을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이유도, 사회적 관습도 아니라 사랑과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역시 무대에 오른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내가 존경하는 미국 보수의 아이콘 이스트우드가 기자에게 동성애 결혼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한 대답이 '결혼하라 그래, 왜 남들이 뭐라고 해?'였다고 한다"며 "동성애를 죄악으로 보던 중세 시대, 병으로 보던 과학의 시대를 넘어 이제 사랑의 다양한 형태 중 하나로 봐야할 것이다"고 말했다.
노회찬 전 진보정의당(현 정의당) 대표도 "차이가 차별의 근가가 돼선 안 된다"며 "성소수자의 인권을 신장시키는 데 정의당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정의당은 결혼식 전날인 6일 논평을 내 "두 사람의 결합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며 앞으로 있을 더 많은 성소수자 커플의 행복한 결혼에 축하와 격려의 마음을 보낸다"며 "정의당도 성소주자의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렌스젠더 연예인인 하리수씨도 그의 남편 미키정씨와 참여했다. 하씨는 "누군가 하지 않으면 (성소수자 인권 향상이) 이뤄질 수 없는데 이번 결혼이 물꼬를 튼 거 같다"며 "두 사람이 앞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용길 노동당 대표 등도 이날 결혼식에 참석했다.
오물 투척·무대 난입, '불청객' 눈살... 김조광수 "동요 말라"
한편 결혼식의 '불청객'도 있었다. 결혼식이 한창 진행 중이던 오후 7시께 한 남성이 무대에 난입, 오물을 가득 담은 통을 던졌다. 스태프들이 막아 김씨 커플은 오물로부터 피해를 입진 않았으나 무대가 더럽혀졌다.
오후 7시 40분께 행진을 앞두고는 한 남성이 무대에 난입해 김씨 커플 앞에서 피켓을 들고 "동성애자가 무슨 결혼이야"라고 외치기도 했다. 피켓에는 "청계천 더럽히는 동성결혼 박살내자, 온 국민이 반대한다"고 적혀 있었으며 '활빈단'이라는 시민단체 이름도 담겨 있었다.
김조광수씨는 하객들을 향해 "당황하지 말라" "동요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결혼식을 이어 나갔다.
한편 결혼식 전날인 6일 늦은 밤부터 7일 오전 10시까지는 한 기독교 단체가 광통교 현장을 점거, 무대 설치를 방해하기도 했다. 찬송가를 부르며 광통교를 점거한 이들은 경찰이 출동해 해산을 권유하자 해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예수재단'이라는 기독교 단체는 지난 4일 종로경찰서에 '문화연대 집회(동성결혼 문화 행사) 금지 통보 요청'이란 공문을 보내 "동성결혼 행사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고 조롱하는 것이며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망하게 하는 악독하고 통탄할 반인륜적인 행사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