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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집 벌초 이야기 [동영상] 2013년 우리집 벌초 (2013.9.7.토) 하는 모습 이야기를 동영상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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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도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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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집집마다 조상님 벌초를 하러 나선다. 벌초는 어느 집안이나 마찬가지로 큰 행사인 동시에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그렇다 보니, 일손이 여의치 않은 집들은 내 조상 벌초를 대행업체에 맡기기도 한단다. 12년 전만 해도 우리 집엔 예초기도 없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낫을 들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12곳 조상님 묘를 벌초 하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힘든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당장 나부터도 벌초 작업에서 빠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억지춘향 장마당에 끌려가는 소'처럼 썩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벌초 작업을 하고 땅거미 어둑어둑해질 무렵 쫓기듯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산역 인근 선술집에서 형제들과 대포 한 잔 나누고 귀가 할 때마다 내 머릿속엔 '어떻게 하면 이 고역의 벌초 문화를 이 시대 현실에 맞게 개선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 결과 '가족납골묘' 조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12년 전 경기도 고양시 벽제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을 찾아 가족 납골묘에 대한 자문을 받고 '가족 납골묘 설계도면'을 받아 살펴봤다. 그러나 승화원에서 제공한 납골묘 설계 도면은 '24기용'이라 우리 가족 규모엔 너무 작았다.
곰곰히 생각한 끝에 고향 파주시에 있는 납골묘 전문 석재공장을 찾아 전문가와 의논을 했다. 그 결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제공받은 24기용 납골묘 도안을 약간 '업그레이드'해 2층으로 납골묘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해 6월 곧바로 고향 선향 12곳에 흩어져 있는 조상님 묘를 개장 한 후 그 묏자리엔 나무를 싶었다. 그리고 조상님들은 새로 아담하게 조성한 우리 가족 '48기용 납골묘'에 안치했다.
그 이듬해부터 우리 집안엔 새로운 벌초문화가 탄생했다. 과거엔 힘들어서 너도 나도 피하고 싶어했던 벌초였는데, 이젠 사촌, 오촌, 육촌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시집간 딸, 사위, 외손자들까지 벌초에 참여해 많게는 30여명 적게는 20여명의 대 가족이 벌초에 참여한다. 벌초를 마치고는 온가족이 다 함께 파주시 관내에 있는 '파평윤씨 성지'를 탐방하기도 하고 식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못다 한 가족지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15년 전 우리가 몇 백 년에 이르는 조상님 묘를 개장 납골묘에 안장 할 때, 고향의 나이 드신 친척 어르신들께서 나를 불러 "너 조상님을 두고 너무 앞서 가는 행동 아니냐?"며 탐탁지 않아 하셨다. 그러나 그런 어르신들께서도 우리가족이 '납골묘'를 설치하며 새긴 '와비' 문을 읽어 보시고 머리를 끄덕이시며 타계 하시기 전 우리처럼 납골묘를 조성하셨다. 그때 우리 가족 납골묘 조성때 와비(누워있는비)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가족 납골묘를 조성 하는 후손들의 다짐 시대 변천에 따라 가족 구성원이 핵가족화 되며 조상 대대로 이어온 조상님 묘를 원형대로 보존키가 사실상 어렵게 되었고, 더 낳아가 우리나라 전국토가 묘지 강산화 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탈피하기 위해 고향 선향에 산재한 12곳 조상님 묘를 개장 화장을 모셔 이곳 "파평윤씨 남양공파 가족 납골묘"에 안장을 합니다. 이는 자칫 유교 문화와 조상님 "숭조경종(崇祖敬宗) 충효전가(忠孝傳家) 종친돈목(宗親敦睦)" 차원에서 돌이켜 볼 땐 부도덕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어 조상님께 큰 죄를 짓는 것 같음에도 이를 감수하고 가족 납골묘를 조성하는 후손의 뜻은 사회가 핵가족화 되며 친족 지간 내왕도 멀어져 타인처럼 지내는 현실이 안타깝고 무엇 보다 지속적인 '조상님 묘' 관리가 어려워 불효를 감수하고 가족 납골묘를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우리 가족 일원 타계시 이곳 납골묘에 안장을 하면 '추석, 명절, 청명, 한식, 벌초' 같은 때 자연스럽게 친족지간 만남과 대화가 이어 질것이며 조상을 섬기는 "숭조경종(崇祖敬宗) 충효전가(忠孝傳家) 종친돈목(宗親敦睦)"의 정신이 계승 발전될 것을 기대하며 우리 가족 납골묘를 조성케 되었으니 후손들은 이 뜻을 기리 새겨 정성으로 가족 납골묘를 유지 관리하여 후세에 길이 보전키 바랍니다."
이제 우리 집은 이와 같은 가족 납골묘 조성으로 100~150년 후에도 묏자리 걱정, 벌초 작업 걱정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또 훗날 이곳 우리 가족 납골묘에 '추석, 명절, 청명, 한식, 벌초' 같은 때 모이게 될 친족의 수가 어마어마할 것이라 상상을 하며 2013년 올해의 우리가족 '벌초 축제'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