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꼬 비치를 지나 후에 가는 길
하이번 고개에서 랑꼬(Lan Co)로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다. 길을 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젊은이들이 자주 보인다. 모터사이클 투어를 하는 여행객이라고 한다. 길가로 가끔 민가도 보이는데 그들은 목축이나 양봉을 하며 살고 있었다. 양과 염소 그리고 말을 키운다. 길 오른쪽으로는 쪽빛 바다가 펼쳐진다. 산 중턱으로 다낭과 후에를 잇는 철도가 지나간다. 일반적으로 철도가 도로보다 내륙으로 지나가는데, 이곳에서는 철도가 바다 쪽으로 더 치우쳐 지나간다.
고개를 넘어 바다 가까이 이르니 아름다운 랑꼬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랑꼬 마을은 랑꼬 비치와 랑꼬 석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양쪽에 바닷물을 끼고 있다. 그래서 바다 쪽으로는 비치가 잘 발달해 있고, 내해 쪽으로는 양식업이 발달해 있다. 마을을 따라 하얀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렇지만 한낮이어서 이곳 역시 해수욕을 하는 관광객들이 거의 없다. 마을 안쪽 석호도 역시 조용하기 이를 데 없다.
하이번 터널을 지나 랑꼬 마을로 들어가는 1번 국도에 다리가 놓여 있다. 그 다리 이름은 하이번 다리다. 우리는 바다를 끼고 돌면서 하이번 다리 밑을 지난 다음, 랑꼬 다리를 통해 마을로 들어간다. 랑꼬 석호를 잘 볼 수 있는 식당에 점심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 식당답게 해산물이 주가 되는 음식이다. 미역국, 넙치, 오징어, 새우, 조개 등을 정갈하게 요리했다. 다들 배가 고파선지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우리 취향에 맞게 양념을 한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잠시 시간이 나서 석호를 살펴본다. 쪽배가 몇 척 보이고, 양식을 위한 시설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맹그로브 숲 체험도 할 수 있고, 고기잡이 체험도 할 수 있다는데, 그럴 여유가 없다. 기념사진을 찍고, 잠시 기념품 가게에 들러 조개와 소라 등 해산물로 만든 물건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소라를 붙여 만든 호랑이가 인상적이다. 값도 그렇게 비싸지는 않은 편이다. 우리는 12시 40분쯤 다시 차에 올라 후에로 떠난다.
전기자동차를 타고 황궁 한 바퀴
랑꼬에서 후에까지는 1시간 30분쯤 걸린다. 그렇지만 시내로 들어가는데 시간이 좀 걸려 2시 20분께 흐엉강(Song Huong, 香江)에 도착한다. 푸추안(Phu Xuan, 富春) 다리를 건너 우리의 목적지 후에 황궁 앞에 선다. 푸추안은 후에의 옛 이름이다. 황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코트코(Cot Co)로 알려진 37m의 깃발 탑이다. 2층의 구조물 위에 베트남 국기를 걸었다. 이것은 하노이 탕롱(Tang Long) 성채의 깃발탑과 함께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하다.
우리는 해자를 지나 후에 황궁의 정문인 응오문(Ngọ Môn, 午門)으로 간다. 3층으로 된 문인데, 1층은 석재로 되어 있고, 2층과 3층은 목조 기와집이다. 문은 세 개인데, 모두 닫혀 있다. 우리는 더위 때문에 전동차를 타고 후에성을 한 바퀴 돌기로 한다. 차는 추옹둑문(Của chương đức, 美德門)을 지나 태화전(Dien Thai Hoa, 太和殿) 앞에 우릴 내려준다. 태화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패방을 두 개 지나야 한다. 첫 번째 패방에는 정직탕평(正直蕩平)이라고 썼다. 두 번째 패방에는 고명유구(高明悠久)라고 썼다. 황제의 정직함에 치우침이 없고, 총명함이 영원하다는 뜻이다.
패방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태화전 앞마당으로 오를 수 있다. 계단 좌우에는 용으로 된 조각을 볼 수 있다. 계단은 세 개인데 좌우 계단 쪽으로는 분재가 있고, 그 바깥으로 성을 지키는 동물 수호상이 있다. 몸에는 비늘이 있고, 얼굴은 호랑이상을 하고 있다. 동쪽을 지키는 청룡과 서쪽을 지키는 백호를 결합해 놓은 것 같다. 계단을 오르면 마당 좌우에 품계석이 있다. 우리나라 궁전과 마찬가지로 1품부터 9품까지 9개가 서열대로 배치되어 있다.
이들을 지나야 태화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앞마당으로 해서 태화전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 일반적으로 태화전은 뒤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도 다시 마당을 지나 패방 자리로 돌아와 전동차를 탄다. 차는 다시 왼쪽으로 돌아 우리를 태화전 뒤에 내려준다. 태화전 뒷문으로 들어가기 전 먼저 북쪽을 살펴보니 마당이 있고 한 가운데 금칠을 한 용이 지키고 있다. 다른 한쪽에는 방화용 청동솥이 걸려 있다.
정전인 태화전과 그 뒤로 보이는 전각들
태화전은 중국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과 한자 이름까지 똑같다. 자금성 태화전을 모방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태화전 뿐 아니라 후에 황궁 전체가 자금성을 모방했다고 한다. 그러나 규모나 내부 장식, 주변 환경 등에서 자금성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후에 황궁을 자금성의 짝퉁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태화전 안으로 들어간다. 붉은 기둥에 노란 금박으로 장식을 했다. 일반적으로 노란색이 황제의 색이고, 붉은색은 복을 주고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는 역할을 한다.
태화전 내부에는 사람이 자금성처럼 많지 않아 천천히 살펴볼 수 있다. 옥좌부분만 선으로 막아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사실 볼 게 그렇게 많지는 않다. 기둥에 용무늬가 분명하고, 옥좌를 감싸고 있는 닫집은 화려한 금박이다. 기둥 위 벽에는 오언절구 형태의 한문이 적혀 있다. '태평신제도(太平新制度) 춘풍만제도(春風滿帝都)' 등의 문구가 보인다. 제도를 새롭게 해 태평성대를 만들고, 봄바람이 제국의 수도에 가득하다는 뜻이다. 태화전에서는 황국의 공식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태화전 뒤로는 또 다시 마당이 있고, 좌우에 각각 하나씩 두 개의 전각이 마주보고 있다. 이곳엔 황제를 보좌하는 기관들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6조의 관리들이 근무하던 곳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이곳 후에 황궁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이 부족해서 내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베트남 현지 가이드의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 가이드는 후에 황궁에 들어갈 수 없어서 베트남 가이드가 설명을 하는데, 그의 영어 실력이나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 수준이 정말 형편없다.
이곳 태화전 뒤에도 좌우로 패방이 세워져 있다. 동쪽의 패방에는 일정(日精)이라고 썼고, 서쪽의 패방에는 월영(月英)이라고 썼다. 일정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정기를 말하고, 월영은 아름다운 달의 기운을 말한다. 해의 정기와 달의 기운을 받고자 하는 희망이 표현되어 있다. 월영 패방 앞으로는 황제의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붉은색 차대에 황금색 의자가 놓인 마차가 지나간다. 우리는 다시 전동차를 타고 현임각(Hiển Lâm Các, 顯臨閣)으로 간다.
우리의 종묘에 해당하는 태묘에는...
현임각은 세조묘(Thế Tổ Miếu, 世祖廟)와 함께 응유엔 황제들을 기리는 태묘(Thế Miếu, 太廟)의 대표적인 전각이다. 현임각 앞에 9개의 청동솥이 있고, 좌우에 종루와 고루가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임각은 황제가 조상들에게 제례를 올리는 일종의 사당이다. 3층 건물로 높이가 17m나 되며, 후에 황궁에서 가장 높다. 현임각 앞에는 향로가 놓여 있고, 마당에는 대형 일산(日傘)과 제상(祭床)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도 가끔 의식이 진행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거행되는 태묘제례악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현임각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는 우리의 종묘 정전에 해당하는 세조묘가 있다. 세조묘에는 응유엔 황조 역대 황제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이 건물은 2대 황제인 민망(Minh Mang, 明命: 1820-1841)의 명에 의해 1822년 완성되었다. 건물은 전통적인 동양 기와집 형태지만, 지붕과 벽체에 타일을 사용했다. 건물의 길이는 54.6m이고, 면적은 1500㎡에 이른다. 응유엔왕조는 초대 지아롱(Gia Long, 嘉隆: 1802-1820) 황제부터 마지막 바오다이(Bao Dai, 保大: 1926-1945) 황제까지 13대를 이어졌다.
나는 세조묘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펴본다. 역대 황제의 신위를 모시는 자리에 자개장 형식의 제단이 있다. 그 위에는 향로와 촛대, 접시와 술주전자가 놓여 있고, 신위 자리에 황제의 초상이 놓여 있다. 신위 위에는 등불이 켜져 있고, 벽에는 황제와 관련된 문구가 한자로 쓰여 있다. 이들 물건 하나하나 글자 하나하나에 다 의미가 있을 테지만, 정확히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시간을 가지고 좀 더 연구해 보아야 할 일이다.
세조묘의 오른쪽에는 우리의 편종과 같은 악기가 있다. 2010년 국립국악원에서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적혀 있다. 세조묘의 왼쪽에는 서점이 있지만, 대부분의 책이 베트남어로 되어 있다. 어찌된 일인지 번역서도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된 것만 몇 권 있다.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관광지에서 책을 사고 싶어도 원하는 것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글을 쓰기가 상당히 어렵다.
위키피디아를 통해 베트남어 설명을 찾은 다음, 구글 번역을 통해 영어나 독일어로도 번역해 보고 한자로도 번역해 보지만 정확도가 상당히 낮은 편이다. 그렇다고 베트남어를 전공한 사람도 별로 없어 자문을 구하기도 어렵다. 1960년대에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베트남어과가 생겨 그 역사가 반세기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학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것 같아 유감이다. 베트남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를 소개하는 제대로 된 입문서 정도는 몇 권씩 나왔어야 하는데 말이다.
황궁에도 정자문화가 있다
세조묘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황제의 침전인 연수궁(延壽宮)이다. 정면 일곱 칸의 건물로 가운데 칸 안쪽에 연수궁이란 현판을 걸었다. 건물 앞쪽으로 거실 형태의 주랑이 있고, 그 안쪽으로 방이 마련되어 있다. 연수궁 주변에는 왕비와 후궁들이 사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이들 건물 옆으로 태평루(Thái Bình Lâu, 太平樓)와 연지(蓮池)가 있어 왕족들이 독서도 하고 풍류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구중궁궐 내에서 그나마 물과 정자를 볼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연수궁을 떠난 다음에도 우리는 황궁의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그리고는 황궁의 보물관을 지나 동바문(Cua Dong Ba) 쪽으로 나간다. 보물관에는 황실에서 쓰이던 물건들이 많이 있을 텐데 보지 못해 아쉽다. 전동차를 타지만 않았어도 잠깐 보고 갈 수 있는데 말이다. 그냥 지나가면서 건물 사진만 찍는다. 벽면의 타일장식이 아름답다. 중간에 또 황실근위대 건물을 만났는데, 이것 역시 그냥 지나친다. 2층의 근대식 건물로 지은 지가 오래되어 보이진 않는다.
그렇게 해서 후에 황궁 관람을 마친다. 전동차 덕분에 땀도 흘리지 않고, 빠른 시간 내에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여유를 가지고 하나하나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궁전의 북서쪽에 있는 대비전(大妃殿)과 동남쪽에 있는 사원 일부도 보지 못했다. 황궁 밖으로 나오니 바쁘게 살아가는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이 보인다. 오토바이 물결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황궁 입구에는 사람과 차들이 뒤섞여 혼잡하다. 우리는 이제 후에 도심을 떠나 티엔무 사원과 카이딘 황릉을 보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