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에게 교회의 꽃으로 남으란 말은 인격체임을 무시하고 관상용으로 남으란 말입니다. 국정원은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데 큰 장애물일 뿐이란 말을 하려고 나왔습니다."
소희숙 수녀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인간이 '정치적 동물'인 것은 안다"며 성당을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 기도회'가 1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렸다.
이날 기도회에 참석해 촛불을 든 200여 명의 천주교 사제와 신자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 "책임자 처벌 대통령 사과"와 "진상규명 특검실시"를 하라고 외쳤다.
이날 발언자로 나선 김정대 신부는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정치는 우리 삶에 바로 영향을 주는 것이므로 신앙과 정치도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없다"며 "70~8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었던 (일인) 이번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에 여기 오신 뜻있는 평신도들이 함께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대한문까지 묵주기도 행진을 하며 기도회를 마무리했다.
참석자 합동기도 "국민들 주인되는 민주주의 이루길"
이날 모인 참석자들은 '시국기도문'을 함께 낭독했다. 기도문에는 "이 땅에서 어두운 권력이 사라지게 하시고, 이 땅에서 오로지 당신의 정의만 흐르게 하소서, 당신의 법에 따라 죄인들이 참회하고 국민들이 주인되는 민주주의 이루소서"라는 내용이 담겼다.
곽성근 가톨릭평화공동체 공동대표는 "대한민국의 천주교 평신도들은 지난 세월 군사독재의 서슬퍼런 탄압의 시절에도 민주주의를 지켜왔다"며 "그러나 지난해 국정원의 불법적인 선거개입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력화시켰다"고 말했다.
이날 기도회에서는 마태복음의 한 구절이 인용되기도 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박문수 카톨릭문화원 부원장은 이 구절을 들어 9일 <조선일보>에 실린 보수성향 천주교 단체의 광고를 비판했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이란 단체가 낸 <조선일보> 광고에는 "정교분리 원칙을 무시하고 길거리에서 선동시위나 벌이고 싶다면 차라리 북으로 가라"는 내용이 담겼다.
박 부원장은 "오늘 마태복음의 말을 잘 실천하는 방법은 아무 곳에나 종북딱지를 붙이지 않는 것이다"며 "평신도들의 전문 영역이 세상을 복음화하는 것이기에 이를 실천하자"고 말했다.
서기호 의원 "참석자들, 진정으로 대한민국 수호"
전 전국가톨릭대학생협의회 준비위 의장을 지낸 서기호 정의당 의원도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의 <조선일보> 광고를 비판했다. 서 의원은 "단체 이름을 보면 대한민국을 수호한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땐 국정원을 수호하기 위한 모임인 것 같다"며 "오히려 여기 온 신도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대한민국을 수호하려는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기도회에 참석한 한 천주교 신자는 "평소 국정원 문제에 관심이 있어 참석했다"며 "종교가 왜 정치에 개입하냐고 하는데 이는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정의와 관련된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기도회 중간에 한 시민이 난입해 "천주교가 왜 나와서 난리냐"고 외치기도 했으나 기도회 진행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한편 이날 기도회에 앞서 오전 11시엔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 추진위원회'가 서울 영등포구 새누리당사 앞에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관련기사: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 "대통령 사과하라") 추진위는 천주교 신자 1만1350명(10일 오후 5시 기준)의 서명을 모아 ▲ 특검을 통한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개혁 방안 제시 등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