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교회 교우가 담양에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암 수술을 했는데 1차 방사선치료를 받은 뒤다. 앞으로도 7차례나 더 항암치료를 해야 한단다. 그것은 실로 극심한 고통이 뒤따르는 일이다. 그 교우도 그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담양엔 어떻게 가신 거예요?""아는 집사님 소개로 왔어요.""식이요법을 겸한 요양병원인가요?""네. 제 옆 병실엔 방사선치료 안 받고도 나은 분이 있네요."그렇다. 그 분은 면역력을 길러볼 요량으로 그 병원을 선택한 것이다. 아는 집사님의 소개가 컸겠지만, 그 분의 선택 또한 중요했을 것이다. 1차 방사선 치료를 받아본 분으로,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완치할 생각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서로 전화 통화하는 가운데 다음 주쯤에 서울로 올라가 방사선 2차 치료를 받을 계획이란다. 아마도 두 가지 치료법을 병행할 심사인 것 같다. 달리보면 그 친구의 말에도 신경을 쓰는 편이지만, 의사의 말도 무시하지 못하고 신중하게 대처하는 편인 셈이다.
제롬 그루프먼·패멀라 하츠밴드의 <듣지 않는 의사 믿지 않는 환자>도 일종의 그런 책이라 할 수 있다. 의사가 보여주는 통계수치나 소견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연적 치유 법 사이에서 갈등하는 환자들을 인터뷰한 책이 이 책이다. 달리 보면 환자들 가운데는 의사를 전적으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있고, 의사들 가운데는 환자와 함께 선택 과정을 '공유하는 자'와 '공유하지 않는 자'가 있다는 뜻이다.
사실 어느 병원에서건 불평하는 환자들이 있다. 그것은 비단 병원의 서비스 문제로 인함이 아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관련된 소통의 차이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병과 치료법을 이야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그렇다. 더욱이 한국의 의사들은 자기 실적 때문에 3분 안에 환자의 진료를 끝낸다고 알려지지 않았던가. 진정한 소통이 그 사이에 끼어들 수 있을까?
물론 지난 7월부터 청구실명제, 이른바 '의사실명제'가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농산품에도 생산자의 실명제가 도입되었고, 또 음식점에도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 표기하도록 돼 있지 않던가.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진료명세서에 담당 의사의 면허번호를 기재하는 청구실명제는 지극히 환영할 일이다. 그것으로 의사 1인당 적정 진료 건수인 75건을 넘기지 않도록 통제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일단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 책의 저자 두 사람은 현재 병원에서 내 놓는 '표준화된 치료법'이나 '병원 시스템 중심의 진료'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 이 책을 쓴 두 사람이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이자 베스 이스라엘 디커너스의 의료 센터 교수진인데도 말이다. 이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내린 처방전에도 뜻하지 않는 잠재적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음도 인정한다. 그래서 이들이 하는 의학적 소견에 더더욱 신뢰가 가는 지도 모르겠다.
"가장 최고의 치료 선택 과정은 의사와 환자가 '함께 선택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치료법 각각의 위험과 효과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치료에 대한 환자의 생각과 경향을 존중하면, 의사와 환자가 함께 가장 적절한 치료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선호도를 이해하는 의사와 치료 선택을 같이 한다는 것은 선택의 부담을 덜고 그 결과를 후회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뜻이다."(107쪽)가장 좋은 의사는, 가장 신뢰할만한 의사는, 치료 선택을 환자와 함께 공유하는 의사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진찰 단계에서부터 이미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게 좋긴 하겠지만 말이다. 요즘에도 그런 의사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자기 실적을 늘리기 위해 무조건적인 수술을 권하는 의사들도 참 많다.
환자의 경우는 또 어떤가? 서두에서 말한 그 집사님처럼 여러 인터넷이나 정보들 그리고 그 병으로부터 치유 받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의학적 지식을 쌓고 있는 환자들도 요즘은 참 많다. 그런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은 까다롭기가 그지없을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하듯이, 섣불리 알고 있는 의학지식들이 오히려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기에 의사들은 '표준화된 치료법'이나 '병원 시스템 중심의 진료'를 뛰어넘어 좀 더 환자와 공유할 수 있는 치료법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아울러 환자들도 의사의 말을 무조건 불신하기보다 의사에 말에 귀를 기울이고서 자신의 최종적인 치료 판단을 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것이야말로 의사실명제보다도 더 확실한 치료법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