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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올해부터 '찜! e시민기자'로 선정된 시민기자에게는 오마이북에서 나온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편집자말]
'역사 왜곡'으로 논란에 휩싸인 교학사 교과서. 강원도 원주에 사는 박도 시민기자는 뜻하지 않게 이 교학사 교과서 문제에 당사자가 되었다.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박도 기자가 입수한 사진을 가져다가 엉뚱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학도병 이우근 사건'. 박도 기자는 교학사 교과서에 실린 사진이 이우근이 전사한 후에 찍혔으며 때문에 이우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5개월 전 죽은 학도병, 누가 그를 환생시켰나).

박도 기자는 교학사에 실린 사진을 보는 순간, 낯익은 사진임을 알아챘다고 했다. 45년생이니 만으로 67세. 적지 않은 나이에도 영민한 기억력이다. 그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검색한 사진이 수십만 장, 그 중에 뽑아낸 것이 1900여 장에 이르기에 하는 말이다.

서울에서의 교직 생활을 접고 강원도로 내려간 그에게 퇴직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를 처단한 권중희 선생을 알렸던 십여 년 전 그때처럼, 그는 여전히 정열적이다. 그는 지금 역사와 창작을 넘나드는 장편소설 <어떤 약속>으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집요하게 역사의 흔적을 추적해 온 그가 그려낸 한국전쟁은 어떤 모습일까? 박도 시민기자와 이메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박도 기자의 소설 <어떤 약속> 보러 가기

<어떤 약속> 매일 연재할 수 없느냐는 독자 요청도

 박도 시민기자
박도 시민기자 ⓒ 박도
- 소설 <어떤 약속>을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나요?
"이제 백 리 가운데 사십 리쯤 달려온 것 같습니다. 조금만 들려드리지요. 곧 이어서 준기의 포로수용소생활이 이어집니다. 준기는 거제포로수용소에서 포로송환 여부를 묻는 기표소에서 오마니보다 순희의 얼굴이 먼저 떠올라 'S'(South)를 쓰고 남쪽에 남습니다.

주된 이유는 순회와의 약속 지키기 위함입니다. 한편 순희는 추풍령을 떠나 신탄진에서 헌병들에게 체포돼 신문 도중 탈출하여 용감하게도 금강철교에서 강물로 뛰어내리는 등 천신만고 끝에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정도만 들려드리겠습니다." 

-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소설 <어떤 약속>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세요.
"1950년 6·25 한국전쟁 발발 당시 북에서 중3 학생으로 조선인민군에 입대한 김준기와 서울에서 인민군 입성 후 간호학교 학생으로 의용군에 입대한 최순희가 낙동강 다부동전선에서 위생병 사수와 조수로 만납니다. 이들은 1950년 8월 하순부터 유엔군 총공세로 날마다 다부동 유학산 일대에 쏟아 붓는 미군 B-29 폭격기의 폭탄 세례에 견디지 못하고 전선을 탈출하여 낙동강을 건넙니다. 이들은 한 민간 집에서 몸을 피하면서 서로 정을 통하게 되고, 탈출 중 이별을 대비하여 전쟁이 끝난 뒤 8월 1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이후 탈출 도중 김준기는 유엔군에게 체포되어 포로수용소로 가게 되고, 최순희는 천신만고 끝에 집으로 돌아가지만, 아버지는 인민군 서울점령기간 동안 부역혐의로 처형되었기에 야반도주합니다.

한편 김준기는 최순희와 약속을 지키고자 반공포로로 석방, 남녘에 남지만 최순희는 미군과 국제결혼하여 미국으로 가버립니다. 그 이후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21년 만에 덕수궁 대한문에서 만납니다. … 이 작품은 아름다운 순애보요, 한 가정의 분단 극복사입니다."

- 지금까지 41회 연재했는데, 독자들 반응은 어떤가요?
"미국 워싱턴 근교에 사시는 한 재미동포는 벌써 10여 차례 이상 메일과 쪽지함으로  격려문과 희귀한 한국전쟁 사진자료를 구해 보내주셨습니다. 얼마 전 이화여대 명예교수 김영숙 선생님(전 이대교육대학원장 및 이대부고 교장)께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어라>라는 책과 함께 영국의 시인 존 던(John Donne)의 <명상 17>의 한 대목을 적어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소설 41회에 이를 적절히 인용했습니다. 선생님은 준기와 순희의 탈출 장면이 <무기여 잘 있어라>의 프레더릭과 캐서린의 탈출 장면을 연상케 한다는 과찬을 하셨는데, 아마도 은연중 저에게 그런 작품을 쓰라는 주문 같았습니다. 어떤 독자는 제 연재소설을 읽고자 하루에도 몇 차례 <오마이뉴스>에 드나든다고 하면서 매일 1회씩 연재해 줄 수 없느냐는 주문도 하시더군요."

 소년 인민군이 포로 신문을 받고 있다. 소설 <어떤 약속>의 모티프가 된 사진.
소년 인민군이 포로 신문을 받고 있다. 소설 <어떤 약속>의 모티프가 된 사진. ⓒ NARA

- <어떤 약속>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프롤로그에서 이미 밝힌 바 있지만, 제가 2004년 1월,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성금으로 방미하여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찾은 한국전쟁 중 어린 인민군 포로사진 한 장이 이 작품을 잉태케 하였습니다."

- 고증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요, 자료 조사를 많이 하셨을 듯합니다.
"어린 시절 겪은 아련한 한국전쟁 체험을 비롯하여 소설, 영화, 다큐멘터리, 역사책 등 가리지 않고 살펴보았고, 집필기간 중에도 늘 10여 권의 한국전쟁 관련 책을 곁에 두고 쓰고 있습니다. 늘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집필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작품 배경지는 빠짐없이 답사하고 있습니다. 2005년 남북작가대회로 5박 6일 평양, 묘향산, 백두산 다녀온 것도 집필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 각양각색의 사투리가 나오는데 글쓰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남자 주인공 준기의 평안도 사투리 때문에 가장 고민이 많았습니다. 마침 평안도 방언연구의 대가 김영배 동국대 명예교수님이 저의 고교 은사이시기에 찾아뵙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노 스승님은 아직도 문학 소년처럼 불꽃을 태우는 늙은 제자를 위해 여든이 넘으신 고령임에도 주인공 준기의 고향 평안북도 영변군 용산면 구장리 일대와 그 언저리 청천강, 묘향산 지도까지 그려가면서 알뜰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매생이'와 같은 그 지방 사람만이 아는 말도 이 작품에 선보이고 있습니다. 제 고향이 경상도이기에 경상도 사투리는 크게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잊었거나 미심쩍은 것은 친지에게 물어 썼습니다."

- <어떤 약속>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사람 간의 약속을 지키는 아름다움과 한 가정의 작은 통일입니다. 이 문명 세상에 혈육이 60년이 넘도록 타의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야만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 속에서나마 한 이산 가정의 통일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6개월만에 시민기자 복귀하기도... 글쓰기는 내 인생의 구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방문했을 당시 박도 기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방문했을 당시 박도 기자 ⓒ 박도

- 소설도 소설이지만 중간 중간에 나오는 사진 자료들이 무척 귀해 보입니다. 어떻게 해서 모으시게 됐는지요.
"2004년 1월 31일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갔을 때, 영어가 서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진을 검색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물아물한 제 기억을 되살려 한국전쟁 사진을 집중으로 검색하여 <오마이뉴스>에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이라는 제목으로 30회 연재한 바 있습니다. 그 뒤 2005년, 2007년 두 차례나 더 그곳에 가서 NARA에 소장 중인 수십만 장의 사진을 일일이 검색하여 1900여 컷 스캔해 왔습니다. 이번에 새로 공개하는 사진이 많을 겁니다."

-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라고 하던데, 혹 후회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아닙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는 약 300컷 이상의 한국전쟁 관련 사진이 들어갈 것입니다. 아마도 소설에 이렇게 많은 사진이 컷으로 들어간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일로, 이 연재가 끝나면 기네스북에 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오마이뉴스>가 아니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겠지요."

- 오래전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를 처단한 권중희 선생을 알리는 등 취재 기사를 많이 쓰셨고 틈틈이 사는 이야기도 쓰셨습니다. 또 지금은 소설을 쓰고 계신데, 어떤 분야의 글쓰기가 가장 매력적인가요? 또 가장 어려운 분야의 글쓰기는요?
"저에게는 모두가 다 매력적이고, 어느 분야도 쉬운 글은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작은 글 하나에도 프로야구 마무리 투수처럼 전력투구합니다. 글 쓰는 일은 제 인생의 구도(求道)요, 구원입니다."

- 오랫동안 <오마이뉴스>에 글쓰기를 해오셨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어떤 의미인가요?
"<오마이뉴스>는 내 마지막 꿈을 이룬 '광장'입니다. 저는 소년시절 세 가지 꿈을 가졌습니다. 교사, 작가, 기자였습니다. 두 가지 꿈은 이루었으나 기자의 꿈은 이루지 못하다가 정말 뜻밖에도 <오마이뉴스>에 실린 한 꼭지의 글로 늘그막에 시민기자가 되었습니다. 고기가 물, 그것도 큰 바다를 만난 겁니다. 시민기자 생활 중 한때는 창작에만 매달린다고 탈퇴했지만, 6개월도 못 참고 슬그머니 돌아왔지요(죄송).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고 독자들이 사랑을 주시는 한, 계속 송고하겠습니다."

- 십년 넘게 시민기자로 꾸준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롱런의 비결을 알려주신다면요.
"외람된 말이지만 독자와 편집자 그리고 시민기자 3자 간의 신뢰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다음에는 <오마이뉴스> 독자들과 소설로 만나실 건가요, 기사로 만나실 건가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진정한 술꾼은 청탁(淸濁)이 가리지 않습니다. 글꾼도 마찬가집니다. 내 영감에 따라 그때그때 붓이 움직이는 대로 써서 따끈하게 송고하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미리 말했다가 실천하지 못할까 좀 그렇습니다. 우선 연말까지 <어떤 약속> 연재를 끝낸 뒤, 한 출판사와 기획 중인 사진으로 보는 <미군정 3년> 원고를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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