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세차게 내립니다. 그렇게도 억울해하더니. 쏟아져라 마음껏 쏟아져라.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원통했으면... 이제 다시는 이런 희생이 없도록 동지들 힘을 모아 투쟁합시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내렸다. 참 슬픈 금요일이었다. 여수건설노조 신성남 지부장의 발언이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오자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조합원들의 흐느낌이었다. 여수산단 대림산업 폭발로 6명의 건설노동자가 죽어간지 어느새 6개월이 흘렀다.
매출 100조 여수산단...화상병원 건립은?작년 한해 여수산단은 100조원의 매출실적을 올렸다. 이중 368억불의 수출도 달성했다. 특히 작년에 정부는 여수산단에서 6조원의 세금을 걷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한해 중앙정부로 들어 가는 여수산단의 세수는 엄청나다.
하지만 정작 여수산단 노동자들은 일하다 다치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본인들이 감내해야 한다. 산재병원이나 화상전문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정작 이곳은 사고가 나면 다친 노동자들은 5시간 동안 고통을 안고 서울로 가는 실정이다. 화상전문병원이 절실하지만 건립은 요원해 보인다. 산단이 생긴 이후 지금껏 반복되어온 일상이었다. 노동자들의 목숨이 하챦게 느껴지는 이유다.
지난 3월 대림산업 폭발사고가 발생한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지역민과 노동계의 요구는 묵살돼 오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1시 학동에 위치한 여수시청 앞에서 '여수국가산단특별법제정 및 종합대책마련 촉구 1만 명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이날 여수1청사 정문 앞에 마련된 대형무대에는 '사람이 우선이다'는 펼침막이 눈에 확 띄었다. 펼침막에는 기업살인법 제정, 주민알권리 제정, 산재전문병원 설립, 국정원 해체를 요구하는 구호가 내걸렸다.
사회를 맡은 이성수 집행위원장이 "백조 원을 만들기 위해 골병이 다 들어 간다. 산재전문병원 설립하라"고 선창하자 참가자들은 힘차게 '산재병원 건립' 후렴구를 외쳤다.
이날 시청 앞에서 도원사거리까지 왕복 6차선 도로에 운집한 여수건설노조 조합원을 비롯 여수지역 산단 1만여 명(주최측 추산)의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와 김선동 의원 그리고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을 포함해 화섬노동자들도 함께했다.
이날 여수국가 산단 특별법 제정과 함께 국정원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근혜 정부..."여수국가 산단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
대회사에 나선 민점기 대책위 대표는 "대림사고가 터지자 정부 여당이 찾아와 근본적인 종합대책을 제시하겠다고 한지 6개월이 지났지만 무엇 하나 지킨 것이 없다"면서 "국가산단은 국가의 책임이다, 여수국가 산단 특별법을 제정해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어 줄 것"을 박근혜 정부에게 강력히 촉구했다.
그는 이어 "공사현장에 안전관리 요원은 가뭄에 콩나듯하고 다단계 하청에다 매출은 수십 배가 늘었지만 정규직은 절반으로 줄고, 그 곳에는 일하는 비정규직만 죽어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며 "이러한 면허가 바로 살인면허다, 구조적인 것을 바로 잡기 위해 기업살인법을 적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격려사에 나선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세월을 가만히 돌아보면 노동자인데도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때 그냥 노예 같은 삶이었다"면서 "그 동안 돈을 벌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노예처럼 살았지만 노동자들이 각성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자임을 자각하는 순간 세상이 달라졌다"고 운을 뗐다.
이어 "국정원은 하필 이시기에 오랜 기간 동안 쫓아다니며 조사했던 내용을 터트려 노동자. 진보진영을 말살하려는 음모를 펼치고 있다"며 "우리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도 중요하지만 이 땅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것도 함께 투쟁해서 쟁취할 과제다"라고 당부했다.
박행덕 전농 광전연맹의장은 "1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학 농민들은 농민회로 우뚝서 있다"며 "(위정자들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의 배를 불리면서 우리 농민을 못살게 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이 나라 정치가 무엇을 하고 있냐"면서 "통합진보당의 부당한 탄압에 맞서고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을 위해 추석 이후 소를 몰고 서울로 올라갈 것이다"라며 분노했다.
김선동 의원의 발언도 이어졌다. 김 의원은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을 비롯해 통합진보당에 내란음모죄를 씌웠듯이 국정원의 국기문란이 이미 도를 넘었다"고 외쳤다. 이어 "다른 노동자에 비해 건설노동자들만 연장근로에 대한 세금을 내고 있다"면서 "이번 정기국회가 열리면 잘못된 연장근로에 대한 비과세 쟁취와 함께 퇴직금이 없는 건설노동자를 위한 퇴직공제 보험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정희 "기업살인법제정하면 산재 줄어들 것"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노동자들이 여수산단이 생긴 이래 산재사고 362건과 145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지만 아직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싸일로에서 불안에 떨며 일해야 한다"며 "대림산업 폭발사고를 당했듯 OECD산재사고 1위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고 일갈했다.
이 대표는 이어 "2007년 냉동창고 폭발로 노동자 40명이 죽었는데 회사가 벌금 2천만 원내는 것이 끝이었다"며 "산업현장에서 사람이 죽으면 회사대표도 징역 가고 무겁게 벌금을 물리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산재예방에 돈을 쓰게 되지 않겠나"라며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의 이유를 들었다.
그는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동원해서 종북으로 몰아 정권을 차지하더니 이제 내란음모로 조작해서 통합진보당을 종북으로 몰고 유신을 부활시켰다"면서 "하지만 국민들은 유신시대의 국민들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아무 말 못하고 일만 하는 과거의 노동자가 아니다, 진보당은 시민들과 여기 계신 동지를 믿고 역경을 헤쳐 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여수선설노조 배관분회 서재익(43)씨는 이번 사고를 통해 여수산단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뭐라고 보냐는 물음에 "산재병원이 시급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이곳은 광양.순천.율촌이 여수산단에 인접해 있는데 산재병원하나 없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소속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라도뉴스>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