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국가 정책은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마련한 행동지침을 말한다. 정책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미래의 바람직한 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해서 일정한 방향성을 띠게 된다. 따라서 집권 세력이 그리는 미래상에 따라 정책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60년 세월 동안 수구 기득권세력이 그려온 미래상은 무엇인가. 대통령 앞에서 "한국이 미국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처럼, 이들은 미래의 바람직한 사회상을 '미국 사회'로 설정하고 있다. 국제 표준을 만드는 것은 미국이며 여전히 미국식이 바로 국제표준이라는 구시대적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허나 현실은 엄연히 다르며,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영향력은 감퇴되고 있으며 경제영역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미국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라 한들, 한국에 미국의 법, 제도를 모조리 적용할 수도 없다.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는 엄연히 다른 사회다. 아무리 세계화가 진전되어도, 미국과 한국이 같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물며 미국의 일방적 요구라면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개방을 오히려 장점으로 살려 나가는 것이 옳다는 주장도 있다. 이 역시 대외의존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측면에서 일면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한국 입장에서 개방을 장점으로 살려 나가기 위해서도 경제 자립을 강화하기 위한 분별 있는 대응이 절실하다.
미국을 위해서라면 손해 봐도 괜찮다?한국 기득권 세력은 앞에서는 국민들에게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뒤에서는 미국의 요구를 모조리 수용하고 있다. 60년을 관통하는 '경제에서의 종미 현상'은 분별없는 개방 정책이다. 이들은 미국이 주도한 WTO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한 때와 궤를 맞춰 "세계화 시대에 개방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하면서 개방이 마치 운명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한미FTA 협상 개시 전부터 '한미 FTA는 무조건 좋은 것' 혹은 '한미 FTA는 세계화 시대의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주장하는 지금도 저들의 주장은 그대로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은 세 차례 재협상을 통해 미국의 요구를 모조리 수용한 것도 모자라 국회 비준 동의안까지 비공개로 날치기하는 초유의 사태를 연출한 바 있다.
때때로 이들은 한국의 경제적 손해는 미국의 안보 도움을 받고 있는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일관되게 한미FTA가 무조건 이익이라고 주장하던 보수언론은 세 차례 재협상 결과 한국의 손해가 명백해지자 그 이유가 '동맹 때문'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았다.
<중앙일보>는 2010년 12월 6일 보도에서 한미FTA 마지막 협상 결과에 대해 "더 주고 덜 받았다"며 이를 "미국의 (안보)도움이 절실한 우리에겐 불가피한 선택"이라 강변했다. 중앙일보의 주장을 곱씹어보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주둔함으로써 한국 보수 세력에게 얼마든지 경제적 압력 내지 협박을 일삼을 수 있는 셈이다. <중앙일보>는 한미FTA 체결을 통해 한미동맹을 지켰으므로 "어느 쪽이 얼마의 이익을 더 얻었다, 누가 피해를 더 잘 막았다 하는 식의 손익계산은 크게 봐서 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들이 말하는 '동맹 때문'에 자행된 개방 일변도 정책의 결과는 참혹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농산물시장 개방이다. 개방에 의한 농업 피해는 단순히 산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중요함은 그 규모나 경쟁력 따위로 평가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은 식량주권과 안보차원에서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영역이다.
한국이 농산물 수입개방을 본격화한 1992년 이래 2008년까지 수입한 옥수수의 49%, 대두의 78.4%, 밀의 37.1%가 미국으로부터 이루어졌다. 2006년 다보스 포럼에 참가한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1월 28일 "미국의 FTA 협상의 기준은 농업"이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미국은 그만큼 다른 나라의 농산물 수입 개방에 대해 사활적이다. 그 결과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011년 기준으로 26%로 추락했다. 그나마 생산량이 많은 쌀을 제외한다면 5% 수준이다. 미국은 사실상 한국의 식량주권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쌀 시장마저 전면 개방하려는 몰상식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쌀은 국민의 주식이자 유일하게 자급해 왔던 작물이었다. 그런 쌀마저 미국의 요구대로 전면 개방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고방식인지 의문스럽다. 2015년 쌀 전면 개방이 현실화되면 주식 곡물까지 미국이 장악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는 20만 명에 달하는 국내 축산농업인의 최소한의 생존 따위에는 관심도 없이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을 한미FTA 체결을 위한 하나의 선결조건 정도로 치부했을 뿐이다.
게다가 미국은 2003년 미국 광우병 발병 이후 한국이 전면 수입 중단했던 소 내장, 머리, 족 등 특정위험물질(SRM) 의심부위를 2009년부터 슬금슬금 강제 수출해왔다. 광우병 발병 특정위험물질(SRM) 의심부위를 수입해온 씨제이(CJ)프레시웨이 관계자는 2012년 5월 13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수입한 (소 내장의 하나인) 대창은 미국 쪽 수출업체가 살코기를 수입하려면 부산물도 같이 하라고 요구해 어쩔 수 없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미국산 쇠고기 중 살코기를 수입하면 광우병 위험물질을 무조건 따라 들어오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주로 취급하는 씨제이(CJ)프레시웨이를 비롯해 대한제당, 한화, 현대종합상사 등 대기업들이 들여온 광우병 위험물질의 양은 2010년부터 2012년 3월까지만 해도 무려 23350톤이다.
'동맹 때문'에 미국은 폐기해야할 쓰레기를 한국에 수출할 수 있으며, '동맹 때문'에 한국은 이를 국민들에게 유통시키고 있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가능한 일일까.
통일경제로 나아가야이명박 전 대통령이 '뼛속까지 친일, 친미'라며 농담처럼 표현했던 이상득 전 의원의 발언도 곱씹어봐야 한다. 이들의 주장이 일제 강점기 시절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주장하며 "일본에 한국을 동화시켜야 한다"던 친일 앞잡이의 주장을 연상시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 기득권 세력의 미래상이 '미국 사회'에 있다면, 진보개혁 세력의 미래상은 '통일조국'에 있다. '동맹 때문에'라는 명분으로 60년간 이어져 온 기득권 세력의 분별없는 처신 때문에, 한국 국민들의 이익과 생존권은 미국에게 저당 잡혀 있다. 가히 '종미 경제'라 불릴만 한 한국 경제는 이제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번영을 위한 '통일경제' 실현으로 국민들과 온 겨레에 희망을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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