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3 담임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에게 문제 풀기보다 책 읽기를 강조한다. 고3이니까 책을 봐서는 안 되는 게 아니라 고3이니까 더더욱 책을 자주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하루에 단 한 장이라도 보는 게 점수 따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학기, 책 소개를 되도록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직접 읽은 책 중에서 아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줄 만한 책을 매주 한 권씩 소개하는 식이었다. 인문사회학적인 교양을 키우는 책들을 중심으로 했다.
학기 초만 해도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하지만 꾸준한 내 몸부림을 인정했는지 아이들은 조금씩 바뀌었다. 책 소개를 거르기라도 하면 왜 이번 주는 책 소개를 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내가 소개한 책을 직접 사서 읽고 있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아이들에게 책 소개를 되도록 많이 하려고 결심한 이유가 있다. '자기계발서'류 책의 범람 때문이다. 해마다 하는 독서 수행 평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책 부류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 <리딩으로 리드하라>(이지성), <시크릿>(론다 번)과 같은 자기계발서들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보는 이유가 뭘까. 대다수는 그냥 집에 있으니까 읽는다는 식이다.
'선택과목' 아닌 '필수과목' 된 자기 계발을 파헤친다
<거대한 사기극>(이원석 지음, 북바이북 펴냄)의 저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자기계발서를 읽기 시작한 이력을 갖고 있다.
어머니가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추천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자기계발서의 효용성에 의문을 품고 자기계발서의 역사와 이론적 배경, 형식 등을 꼼꼼하게 파헤치면서 신랄한 비판을 하게 된 이유는 뭘까. 그것은 내가 아이들 앞에서 자기계발서의 '철학'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가령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이나 한병철의 <피로사회>와 같은 책을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동안 자기계발은 우리의 시대정신으로 작동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략) 하지만 이제 그러한 팽창의 끝에 이르러 그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열풍은 거대한 사기극이었습니다. 국가와 학교와 기업이 담당해야 할 몫을 개인에게 떠넘김으로써(민영화, 사교육, 비정규직 등), 사회 발전의 동력을 확보한 셈이니까요. (5~6쪽 '서문'에서)저자에 따르면, 자기 계발과 자기 계발서의 원류는 미국이다. 자기 계발의 시원적 형태는 '자조(自助)'로 번역되는 'self-help'다. 자기 계발서가 개인의 동기 부여를 중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동기 부여는 미국의 응원 문화, 곧 치어리더 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선수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관중들로 하여금 힘을 모아 응원하게 하는 치어리더는 전형적인 미국식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조지 부시가 치어리더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지식이나 인격같은 것은 눈 씻고 봐도 찾을 길 없는 그는 그저 미국의 치어리더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저자에 따르면 자기 계발의 패러다임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윤리적 패러다임'과 '신비적 패러다임'이 그것. 전자는 근면과 성실의 힘을 신봉한다. 외부 환경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돌파할 것을 촉구한다. 후자는 상상의 힘을 강조한다. 생각을 내려놓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기만 하면 이루어진다고 외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전자를, <시크릿>이 후자를 대표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들이 필연적으로 떠올릴 만한 질문 세 가지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 이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그렇다면 자기 계발서를 읽지 말라는 것이냐?'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 자신의 입장은 중용에 가깝다며 필요에 따라 좋은 자기계발서를 잘 골라서 읽으면 된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가 가장 비판하는 자기계발서는 <시크릿>, <긍정의 힘>과 같은 신비적 자기계발서다. 저자는 이들을 '거대한 사기'라고 혹평한다.
'그러면 도대체 자기 계발을 이렇게 집요하게 따져 묻는 이유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 우리 사회가 자기 계발을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처럼 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기 계발, 자기 관리를 하지 않으면 취업과 승진, 심지어는 결혼조차 잘 안 되는 사회에서 자기 계발서를 손에 쥐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고전 독서마저도 자기 계발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겠는가. 출판사에서 80번이나 퇴짜를 맞은 이지성이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통해 강조하는 것, 신자유주의 전도사 공병호가 <공병호의 고전강독>을 통해 주장하는 것들이 바로 천재의 뇌와 이를 통한 돈과 명예, 권력 등이 아닌가. 그래서 저자는 고전을 포함한 모든 서책을 자기 계발적으로 읽는 우리 사회가 욕망의 회로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세 번째 질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 우리는 이 사회가 개인의 자기 계발을 강요하는 극악한 사회임을 잘 안다. 그래서 가령 '자기 계발이 문제라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식의 질문에 '자기 계발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 식의 하나마나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는 저자도 그렇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
현재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행복은 왜곡되어 있다. 자식이 어느 대학에 입학하고 어느 회사에 취업했느냐, 내가 어느 정도의 수입과 직위에 있느냐, 나의 의류 브랜드는 무엇이며, 우리의 주거지는 어디냐 등, 즉 타인과의 관계에서 위계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경쟁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물론 일정한 수준의 위계와 경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본주의가 아니라 다른 어떤 체제라도 위계와 경쟁 자체는 피할 수가 없다. 요는 균형의 문제이다. (220, 221쪽)그 '균형'을 위해 저자는 우리 사회가 욕망의 흐름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자기 계발도 더 이상 필수 항목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 사항으로 제공하자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조금 더 성공하고 조금 더 성취하기를 바라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놓자는 말. 이런 태도를 갖는 게 과연 가능할지 회의가 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외에 별다른 뾰족수가 없다는 게 답답할 뿐이다. 많은 사람의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거대한 사기극> (이원석 지음 | 북바이북 | 2013. 8. 30. | 251쪽 | 1만 3천 500원).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