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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연심이네가 우리집 아래에 집을 짓기 전까지는 제일 가까운 이웃이 김씨 아저씨네였다.

김씨 아저씨는 말을 못한다. 당연히 듣지도 못한다. 다른 이웃에게 물어보니 날 때부터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손가락 하나가 없다. 아주 어려서 뱀에 물렸는데 돈이 없어 병원에를 못가고 집에서 물린 손가락을 칭칭 동여맸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 못하는 김씨 아저씨가 실은 못하는 말이 없다. 누구한테나 다가가서 말을 붙이고 웃기도 잘한다. 나하고도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다. '고구마를 심어라. 북을 돋아라. 누런 토란 잎은 뜯어줘라, 풀을 안매서 밭꼬라지가 뭐냐 쯧쯧, 제초제를 뿌려주라, 나는 감나무 밭에 간다...' 등.

하루 아침에는 느닷없이 트랙터를 몰고 올라와서 우리집 마당을 온통 갈아 놓았다. 내년에 고추를 심으라는 것이다.

 '나는 트랙터도 잘 몬다' 
김씨 아저씨는 못하는 말이 없다.
'나는 트랙터도 잘 몬다' 김씨 아저씨는 못하는 말이 없다. ⓒ 김영희

무엇이든 신기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기도 잘했다. 과천집에서 벤자민 화분을 가져왔더니 먹는 것인지 아닌지 부터 물었다.

아침이 되면 동네에서 제일 먼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경운기를 몰고 나가는 이가 바로 김씨 아저씨다. 경운기를 몰았다가 트랙터를 몰았다가, 이 논에 갔다가 저 논에 갔다가, 이 밭으로 갔다가 저 밭으로 갔다가... 어찌보면 동네에서 가장 설치고 다니는 사림이 김씨 아저씨이기도 하다. 벼농사는 물론이고 고추, 토란, 감 농사에 이웃보다 한 발 앞서 불루베리 농사까지 하는데 밭이 사방에 흩어져 있으니 하루에도 몇번씩 동네를 위 아래로 오르내리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일할 때도 빠지는 법이 없다. 풀베기 작업을 할 때는 예초기를 메고 나오고 밭을 갈 때는 트랙터를 몰고 나온다. 얼마 전에는 김씨 아저씨가 마을 근처에 내려온 멧돼지를 잡아 마을회관에서 동네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경운기를 몰고 논으로 밭으로
경운기를 몰고 논으로 밭으로 ⓒ 김영희

김씨 아저씨는 장가 또한 잘 들어 그 부인이 부지런하고 참하다는 칭찬을 듣는다. 틈틈이 마을 밖으로 일나가 돈을 벌고, 집에 있을 때는 쉴새없이 농삿일을 한다. 아들을 넷이나 두고 손자도 열이다.

 김씨 아저씨 부부
김씨 아저씨 부부 ⓒ 김영희

나는 이런 김씨 아저씨를 보면서 도시의 이른바 '장애인'을 떠올렸다. 김씨 아저씨가 도시에 살았으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활기차게 살 수 있을까.

두계마을에서 태어나 칠십 년 가까이 살아 온 김씨 아저씨에게는 촌, 이 마을에서 산다는 자체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귀촌 #섬진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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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두계마을에서 텃밭가꾸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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