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주현'이라는 가수가 있다. 그녀가 연전에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를 부른 일이 있다. 무슨 노래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인상적인 장면, 노래의 클라이맥스에서 손을 한껏 치켜들고 목청을 세우던 그녀가 느닷없이 팔을 내리며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다. 음악과 노래는 중단된 상태. 여운을 기대하던 객석에서는 '갑작스러운 멈춤'에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 박수를 치게 된다.
그녀의 이 독특한 실험을 대하고서야 알았다. 그녀의 팬 중에 '안티'가 꽤 있는 이유를….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반대파'가 따라 붙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참신한 아이디어, 샘나거든….
<살인자의 기억법>이 그랬다. 갑작스런 멈춤에 당황하게 된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는다. '읽었다'가 아니고 '읽는다'고 표현한 이유는 두 번을 읽었음에도 저자 '김영하'가 소설에 사용했던 단어와 문장 그리고 행간의 의미들을 아직 음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면 졸린다'고 했던 저자(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하루키 신작은 그의 신작과 서점에서 경쟁 중이다)! 그 말은 자신의 소설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그의 소설을 읽고 알게 된다.
149페이지, 것도 제목과 차례를 빼면 142페이지 분량이다. 얼핏 내용도 단순해 보인다. '어느 연쇄살인범의 독백'인 듯. 깔끔한 문장마다 간격을 두어 읽기 편하고 내용도 속속들이 기억하기 쉽다. 문제는 집중해서 일사천리로 읽다가는 갑작스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 소설 속의 모든 것이 유(有)에서 무(無)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있다가 없어진 것인지, 원래 있었는데 없어진 것인지, 없는 것을 상상한 것인지, 그 상상 자체도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지점에 가서야 이 소설의 묘한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주인공 연쇄 살인범 '김병수'는 70세 노인, 수의사(였)다. 28세 딸 '은희'와 함께 살고 있다. 은희는 농대를 나와 지역의 연구소에서 식물의 품종을 개량하는 일을 한다. 연쇄살인범 김병수는 알츠하이머에 포위됐다. 근래의 기억부터 잃게 된다. 45세부터는 살인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자신의 주변에서 연쇄 살인이 시작된다. 주인공은 25년 만에 자신의 딸 '은희'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계획하게 되고…. 주변 인물들이라고는 주인공 김병수가 또 다른 연쇄살인범으로 지목하고 있는 박주태와 안형사, 그리고 도무지 뉘 집 개인지 불가해한 똥개 한 마리.
이상이 소설의 개략. 그런데 소설을 읽는 데 이 개요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께서는 저자의 이러한 구체적인 묘사와 간명(簡明)한 설명에 나처럼 속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작가는 시대의 스승이다.'라는 말이 있다. 저자 김영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싶었을까 생각해본다.
짧은 이야기 속에 인용되는 니체와 금강경, 반야심경은 있음(有)과 없음(無)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를 도발한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들이 일부 또는 모두가 허구일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견고하게 쌓아 올린 구조물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허망함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라는 듯이. 주인공 김병수는 말한다. '살인이 가장 산뜻한 해결책일 때가 있다. 언제나는 아니다.' 섬뜩한 메타포다!
이야기 전개에 따라 군데군데 드러나는 작가의 사회현실에 대한 언급을 놓칠 수 없다. 사회의 '무관심'이 '전쟁후유증에 시달리던 사회적 약자' 아버지를 방치함으로써 어머니와 누이를 괴롭히는 '폭력가정'의 주범으로 만든다. 그래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는 아무 상관없이 김병수라는 괴물 연쇄살인범의 첫 제물이 아버지가 된다. 김병수가 '아버지가 나의 창세기'라고 말하는 이유다.
연쇄살인범으로 인해 결손 가정의 딸이 된 은희는 학교에서 '연쇄살인범도 해결할 수 없는 일: 여중생의 왕따'로 괴롭힘을 당했다. 김병수가 '1976년에 죽인 한 남자는 무장간첩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공식 발표되었다'며 당시 경찰들의 무능과 나태를 비꼰다. 이 부조리한 시대의 역사적 배경에는 4.19와 5.16, 그리고 유신독재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니체는 말한다.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 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
저자가 파악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설명이 주인공 김병수의 입을 통해 나온다.
"죄책감은 본질적으로 약한 감정이다. 공포나 분노, 질투 같은 게 강한 감정이다. 공포와 분노 속에서는 잠이 안 온다. 죄책감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인물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나는 웃는다. 인생도 모르는 작자들이 어디서 약을 팔고 있나."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도 뻔뻔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전직 대통령들, 명백한 잘못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수 많은 위정자들을 대하면서 저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약한 감정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치매에 걸리기 전에 '분노'할 일이다.
처음 산뜻하게 읽히던 소설은 막판 몇 페이지를 남기고 더 이상 산뜻할 수 없다. 이제까지 형해(形骸)화된 이야기의 얼개가 확풀어져 버리고, 풀어져 버린 이야기 갈래들이 제각기 떠들어 대고 있다. 소설 속 문장은 그대로인데 내 머릿속은 시끄럽고 어지러운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주인공이 소설의 처음과 끝에서 읊조리는 반야심경의 구절을 자꾸 되뇌게 되는 이유다.
"그러므로 공(空)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중략)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한루에 몇 문장밖에 쓰지 못했다는 저자의 고백을 대하면서 하루에 두 번씩이나 읽은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문학동네, 2013년 7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