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가윗날 오전에 성당에 가서 한가위 위령미사를 드렸습니다. 올해도 예전처럼 아내와 제수씨랑 아이들은 쉬겠다고 해서 아버지와 남동생이랑 남자 어른들만 성당에 갔습니다. 오후에 서울에 사는 작은누나에게 송편을 갖다 주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딸 데리고 혼자서 사는 누나가 시댁 가는 동료들 대신 명절날에 근무를 하게 돼서 친정인 우리 집에 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보름 전에 작은누나 집에서 4남매가 다 모여 친목을 다졌기에 이번에는 역시 서울에 사는 큰누나네 집에 가기로 하고 작은누나는 일 끝나는 대로 거기로 오라고 연락을 했습니다. 비록 송편에 불과하지만 한가위의 대표적인 음식인 송편을 온 가족이 한 개라도 먹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요 근래 한가윗날이면 송편이랑 전이랑 조금 싸 갖고 누나네 집에 갑니다.
약속한 시간에 작은누나가 큰누나네 집에 와서 그동안 쌓인 정담을 나누고 맛있는 명절 음식을 같이 먹었습니다. 동료 대신 근무하느라 힘들었을 텐데도 누나의 표정이 매우 밝아서 안심이 됐습니다.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나는 대한문 앞에서 매일 하는 미사에 가봐야겠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오전에 집 가까이에 있는 성당에 가서 합동으로 미사를 참례했지만 명절날에 외롭고 쓸쓸하게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생각하니 꼭 그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미사는 정해진 오후 6시30분에 시작됐습니다. 나에게 대한문 앞 미사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신부님들이 그날은 한가위 합동미사라 그러한지 10명이 넘게 오셨습니다. 미사 집전을 맡은 한 신부님은 명절 저녁이라 참석자가 무척 적을까 봐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많이 참석했다면서 고맙고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미사 중간에 강론을 한 신부님은 명절날에 고향도 가지 못하고 맛있는 한가위 음식도 먹지 못하고 10일째 단식농성을 하는 쌍용 노동자들에게 퍽 미안한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이 끊임없는 연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마음은 그 신부님뿐만이 아닐 겁니다. 그곳에 참석한 모든 신부님과 수도자들, 그리고 많은 교우들의 마음도 다 똑같았을 것입니다.
"몇 년 동안 명절을 모르고 밖에서 지내느라 가족들 볼 면목이..."미사는 평소처럼 조용하면서도 뜻있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놀라운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신부님들이 교우들을 향해 인사를 한 뒤 서로 인사를 하고 악수를 한 다음에 쌍용 단식 노동자들이 앉아 있는 가장자리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서 무슨 일인가 쳐다봤습니다.
아, 신부님들이 일렬로 걸어가면서 그들과 일일이 정겨운 악수를 하며 격려와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노동자들도 일어나서 비록 단식하느냐고 몸이 말할 수 없이 초췌해졌지만 환한 모습으로 신부님들과 한 명 한 명씩 악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마음이 찡해져 옴을 느꼈습니다. 진정 그 노동자들이 이 시간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누군가가 곁에 함께 있다는 연대의식일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많은 신부님들이 나란히 걸어가며 그들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감동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들에게 신부님들의 사랑이 담긴 악수가 천군만마와 같은 응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난 번 미사 때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진행자가 단식 노동자 가운데 한 명을 나오라고 해서 요즈음의 심정이 어떠한지 소감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이크 앞에 선 그는 지난번에도 나와서 발언을 했던 사람인데, 그동안 며칠 지나서 그런지 몸이 눈에 띌 정도로 살이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매우 씩씩한 목소리로 자신들과 연대해줘서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몇 년 동안 명절을 모르고 이렇게 밖에서 지내느라고 가족들 볼 면목이 없다며 이번에 꼭 단식 투쟁이 승리를 거두어서 돌아오는 설 명절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번 투쟁이 꼭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그가 말했을 때 미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박수를 크게 보내주었습니다.
그들과 손 잡은 짧은 시간... 내게는 큰 감동이었습니다미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진행자는 여러 가지 공지사항을 말한 다음에 참석자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미사를 마친 다음에 그냥 가지 말고 가능한 한 단식 농성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손을 잡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순간 내 마음이 흥분되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의 말 따라 그들의 손을 꼭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드디어 미사가 끝났습니다. 여러 교우들이 그들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순식간에 한 줄이 만들어졌습니다. 나도 빠른 걸음으로 그 대열에 끼어들었습니다. 노동자들 속에 백기완 선생님도 검은 두루마기 차림으로 앉아 계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하루도, 아니 한 끼도 단식하기가 힘든 법인데 자그마치 10일 동안이나 물만 마시며 단식을 계속하고 있는 그들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습니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밝은 얼굴로 그들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힘을 내시라고 말한 뒤에 옆에 있는 다른 노동자로 옮겨갔습니다. 그들도 한결같이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고맙다고,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시간은 정말 얼마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노동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는 시간이 그렇게 따뜻하고 흐뭇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그들과 똑같이 단식을 하며 부당한 현실에 맞서 강력하게 투쟁하지는 못하지만 그들 곁에 다가가서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늘도 오후 6시 30분이면 쌍용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가 어김없이 대한문 앞에서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단식농성도 보름이 가까워집니다. 날이 추워지기 전에 정부가 약속한 대로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무고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수 년 동안 몹시 원했던 정든 일터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신부님들도 매일 같이 춥고 쓸쓸한 그곳에서 드리는 미사를 기쁜 마음으로 보람을 느끼며 그만둘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