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좌파주의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솔직히 그들 중에는 과대망상적인 이상주의자나 낭만주의자가 적지 않다. 그들 중 상당수는 보통 사람이 받아들이기에는 부담스러운 말들을 '국민'의 힘을 빌려 부풀리기도 한다. 자신의 외로운 외침을, 세상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생각인 것처럼 뻥튀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소수집단이 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언젠가는 자신에게 닥칠 문제이니까요. (중략) 좌파는 아무런 힘이 없을 때도 국민 다수를 대변한다고 착각합니다. 거울을 보고 착각에 빠진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163쪽)좌파로서의 정체성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묻지마 연대'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말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가장 핵심적인 원칙은 경제 정의와 시민의 자유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원칙에 대한 공유 없이 무조건적으로 '국민'을 파는 진보·좌파 집회 현장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지금 왜 혁명을 말하는가>는 미국의 좌파 언론 사우스엔드프레스가 1997년 가을부터 1998년 겨울까지 미국의 좌파 운동 지도자들을 직접 만나거나 이메일로 진행한 인터뷰 결과를 묶은 책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시대의 지성 9명의 조언'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는 '혁명'과 세상의 변화에 관한 좌파 운동가들의 영감 어린 생각들이 잘 드러나 있다.
9명과의 인터뷰가 이루어진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이었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더군다나 인터뷰가 이루어진 나라는 미국이다. 책 출간의 시의성과 내용의 적합성에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2013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편집자들의 '서문' 일부를 보자.
이 책에서는 20세기 내내 급진주의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한 사회·경제적 정의를 위한 원칙을 고수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중략) 혁명적 열정을 평생 유지하고 후세에 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 또한 누구라도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오늘날의 극심한 불평등과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14쪽)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1863~1952)는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하기 마련이다"라는 말로 과거 역사 이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최근 회자되는 '신유신시대'니 '만사공통'이니 하는 말은 우리가 과거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이 아직도 여전히 많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2013년의 대한민국이, 15년 전을 지나 40여 년 전의 암울한 유신 통치 시대로 회귀하는 듯해서 하는 말이다.
'지리멸렬' 진보·좌파, 무엇을 해야 할까사태가 이러한데도 진보 진영은 지리멸렬 그 자체다. 지금 같아서는 진보 전체가 비극적인 파국 속에서 괴멸하지 말란 법도 없다.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을까.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으로 인디언 운동을 이끄는 위노나 라듀크는 이 책에서 비판만 일삼는 진보주의자나 좌파의 문제를 지적한다. 라듀크는, 대안이나 해결책, 목표를 뚜렷하게 제시하지 않는 운동으로는 결코 사람들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진보·좌파가 비판만 일삼는다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나오는 비판이다. 물론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왜 권한 없는 우리가 대안까지 제시해야 하느냐며 볼멘 소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비판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닌지라 진보 진영에서도 대안을 내놓으려고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말이다.
사실 대안이나 해결책 그 자체가 핵심은 아니다. 문제는 "진보·좌파는 비판'만' 일삼는 세력"이라는 오도된 '신화'다. 이런 신화가 목표로 하는 것은 명확하다. 진보·좌파를 보통 사람들로부터 격리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무기력을 느끼게 하는 것! 진보·좌파가 느끼는 무기력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진보·좌파 통제 전략이 아닐까. 비판만 일삼는 진보·좌파라는 비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그런 비판의 배후에 놓인 그릇된 신화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쯤에서 라듀크의 또 다른 조언을 들어보자.
무력감을 떨쳐내십시오. 지배계급이 여러분에게 가르친 허황된 신화 중 하나가 바로 여러분에게 힘이 없다는 겁니다. 힘은 야만적인 무력이나 돈이 아닙니다. 힘은 우리 정신에 있습니다. 힘은 우리 영혼에 있습니다. (132쪽)게이나 레즈비언 등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싸워 온 우르바시 바이드는 진보주의의 본질에 대해서 말해준다. 바이드에 따르면 진보주의는 광범위한 패러다임이지 한 지도자가 하나만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바이드는 우리가 완벽한 비전이나 유일무이한 하나의 해결책, 나아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줄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를 기다리며 허송세월할 수 없다고도 말한다. NL(민족·자주 계열)과 PD(민중·민주 계열)라는 해묵은 양대 거대 정파와 명망 있는 진보 인사들을 중심으로 감동 없는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진보 정당 진영이 안타깝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혁명'은 즉각적인 목표가 아니라 점진적인 프로젝트바이드는 희생양을 생산하는 사회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는 한 사회에서 희생양들이 증가하는 이유가 잘못을 전가하는 것이 훌륭한 속임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희생양으로 지목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한 사회의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전략이다. 그럼으로써 잘못의 진정한 근원으로 향해야 하는 사람들의 눈을 돌리자는 술수다. 참으로 야비한 방식이다.
이 시대 대한민국의 '희생양'은 어떤 사람들일까. 나는 사전에도 없는 '종북'이라는 말로 어두운 낙인이 찍히고 있는 모든 개인과 집단이 2013년 대한민국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한다. 그 희생양의 스펙트럼은 제멋대로다. 그래서 명확한 경계가 없다. 오죽하면 '종북 검찰'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남북이 정치·군사적으로 대치해 있는 상황에서 '종북'이라는 말로 환기되는 이념적 위기감이나 안보 불안감은 결코 작지 않다. 국가정보원이 내란음모를 들고 나온 정확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종북주의'로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이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 중 하나인 분단 체제와 관련된다. 어떤 사람들이 종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검열하며 두려움에 떨 때,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는 이들을 향해 '너는 종북'을 외치며 노골적으로 십자가 밟기를 강요한다. '종북주의'가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에 등장하는 9명의 좌파들은 '혁명'을 즉각적인 목표가 아니라 점진적인 프로젝트로 생각한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혁명은 사소한 행동들의 축적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노엄 촘스키는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레이건에게 넘어가 보수주의로 돌아선 노동자 민주당원들과 대화하면서, 그들 모두가 사장과 경영진을 몰아내고 공장을 접수하고 싶어한다는 걸 눈치채는 데 5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어디에서나 가능합니다! (63쪽)이 땅의 모든 진보·좌파주의자가 취해야 할 태도가 이 대답 속에 담겨 있지 않을까. 일본 작가 미야모토 테루의 말처럼, 혁명은 사소하지 않지만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 <지금 왜 혁명을 말하는가> (노엄 촘스키 외 지음, 강주헌 옮김 | 시대의창 | 2013. 9. 4. | 224쪽 | 1만 4천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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