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강: 23일 오후 4시 35분]"18대 대선 선거인명부 60대 이상 유권자는 20.8%인 841여만 명, 투표율 78.8%로 계산하면 662여만 명이 투표. 65세 이상 639만 명 중 최소 20~30%인 약 127~191만 명은 기초연금 20만 원을 사기당한 셈." InSe**한 트위터 이용자의 말입니다. 추석연휴가 끝나면 행여나 좋은 소식 있을까 기다렸는데, 역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배드 뉴스(bad news)군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시절 대표적인 복지공약으로 약속했던 기초노령연금에 차질이 생긴 모양입니다.
정부의 기초연금 이행방안은 26일 공식 발표될 예정인데 당초 65세 이상 모든 노인들에게 매월 20만 원씩 일괄 지급하겠다던 공약을 대폭축소해 소득하위 70%에 대해서는 기존대로 9만7000원(약 10만원)씩 주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추가지급돼야 할 10만 원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정비례로 연금급여액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입기간이 짧은 사람들이 더 받고, 가입기간이 길수록 덜 받게 되는, 기이한 상황마저 벌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동안 유리지갑으로 세금 열심히 내고 국민연금 성실납부한 사람에게 손해인 연금제도가 도입된다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사회적 합의를 위해 정부가 구성한 국민행복연금위원회가 무려 4개월간의 논의를 거쳐 내놓은 합의안의 골자가 위의 내용인 모양입니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상표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왜 임기 7개월 만에 자신이 내걸었던 대표공약을 뒤집어엎게 됐을까요?
국가재정 위기? 선거 때는 왜 예측하지 못했나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22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 재정 형편상 힘든 것을 가지고 무조건 공약대로 이행하라는 것은 책임지는 모습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체 65세 이상 인구에 대해 현재의 2배로 주겠다는 원안으로 가기에는 국가 재정 형편상 어려움이 있다는 게 윤 부대표 설명의 골자인데요. 그는 "인수위 때부터 이 공약에 대해 이야기가 많았다"며 "내부적으로 기초노령연금문제에 대해 국민연금과 합쳐 기초연금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같은 당 심재철 최고위원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기초노령연금을 소득수준에 따라 지급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나섰습니다.
그는 "지속가능한 복지가 되려면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식의 방만한 퍼주기 식으로 설계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며 "(소득수준) 70%로 하더라도 (금액을) 20만 원으로 할 경우 박근혜 대통령 임기동안만도 43조 원의 돈이 들어가야 한다. 심각한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향후 재정 부담은 더욱 커진다"고 걱정했습니다.
또한 심 최고위원은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크지만 공약 그대로 지키려면 증세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막대한 재정소요 현실과 국가 재정 형편을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소상히 알리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며 "우리 세대에 좋자고 후세에게 막대한 빚더미를 넘겨선 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국가재정 때문이라는 것인데요. 선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참모집단 안에서는 이걸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일까요? 예측하지 못했다면 무능한 것이요, 알고도 공약으로 삼고 대대적으로 홍보해 표를 얻었다면 그것은 아주 무책임한 것이지요.
'기초노령연금법'에 따라 받게 될 20만 원까지 못 받게 될 수도 더 황당한 것은 현재 기초노령연금법에 따르면, 2028년에는 기초노령연금액이 20만 원 수준이 되도록 명시돼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굳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 없어도 15년 후에는 65세 이상 노인의 70%가 20만 원의 돈을 일괄 지급받게 돼 있다는 것이지요.
이 구조를 현 정부가 바꾼다면 오히려 소득하위 30~70%에 해당되는 노인들이 15년 뒤에 받을 수 있는 만큼보다 덜 받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는 게 연금전문가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지적입니다.
김 교수는 "정부가 경제사정이 어려워 재정수입 감소가 예상되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그 부분은 수용할 수 있다"면서 "그럼 매월 20만 원씩 준다던 약속을 5년 뒤로 미루고 현행 매월 9만7천원(약 10만원)씩 주던 연금을 15만 원으로 늘린 뒤 매년 조금씩 늘려 5년 뒤 20만 원을 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조언했습니다.
그것이 그나마 박근혜 대통령이 내건 노인 유권자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길이 되지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다들 기억하시는 것처럼 지난 대선은 가히 세대전쟁으로 치러진 선거였습니다. 65세 이상 노인들이 기초노령연금 때문에 무조건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이렇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선 당시 노인들 사이에는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 등으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매월 20만 원의 돈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며 자식 눈치 보지 않고 매월 20만 원씩이면 그게 적은 돈이냐는 여론이 형성됐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표를 몰아 가놓고 결국 취임 7개월 만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공약을 깬다면 노인 유권자들의 실망과 허탈은 도를 넘는 수준이 될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 공약 파기, 장관이 책임질 문제? 그런데 황당한 것은 공약을 내건 주체는 박근혜 대통령인데 정작 기초노령연금 후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사람은 진영 복지부 장관이라는 것입니다.
CBS 보도에 따르면, 진 장관의 한 측근은 지난 22일 "공식적인 사표 제출은 아직 안 했지만 물러나겠다는 뜻은 청와대 측에 직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는 것입니다.
기초연금문제로 국회에서 야당이 반발할 경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텐데 그 전에 장관이자 정치인으로서 그 책임을 지고 가겠다는 뜻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게 CBS 보도입니다.
그러나 진 장관이 책임을 지겠다고 한들 박근혜 대통령이 진 장관에게 그 책임을 무는 게 원칙과 상식에 맞는 정치일까요? 물론 청와대 안에서는 진 장관의 진퇴와 관련해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의 '먹튀'(먹고 튀었다) 공약이 구체화 되고 있다"며 "기초연금을 후퇴시키고 진영 복지부 장관이 속죄양을 자처하면서 물타기 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전 원내대표는 "공약 파기 문제는 장관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라며 "대통령이 직접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일갈했습니다. 그는 "공약 번복이 불가피하다면 대통령이 사과하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하기도 했지요.
무엇보다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인 공약을 지키려는 노력과 성의를 보이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이며 약속 파기에 대한 최소한의 사과 태도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전 원내대표는 "기초노령연금은 어르신들과 맞잡은 간절한 약속이자 바람이었다"며 "대통령이 노력도 하지 않고 약속을 뒤집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국민기만 행위"라고 비난했습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 와서 약속을 뒤집겠다는 건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사냥개를 버리겠다는 토사구팽적 태도에 불과하다"며 "이와 같은 공약 번복, 먹튀 행각은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국민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부자감세 철회로 공약 이행 재원 마련해야또한 전 원내대표는 "단순 기초노령연금만 문제인가"며 따졌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취임 7개월밖에 안 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사방 군데에서 후퇴하는 모습입니다.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와 각을 세우며 그토록 강조했던 4대 중증질환에 대해 100% 건강보험으로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결국 축소됐지요. 대선 막판 군인들의 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겠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중장기 과제로 넘겼습니다. 전시작전권도 2015년 환수하겠다고 했다가 연장을 요청했고, 심지어 부자감세 철회 없이 유리지갑 중산층의 소득세만 늘리려 했다가 여론의 저항에 직면하기도 했지요.
새누리당이 내건 대로 박근혜정부의 복지공약이 계속 축소되는 배경에 '국가재정 위기'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부자감세 철회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노무현정부 당시 경제부총리를 지낸 바 있는 김진표 민주당 의원은 최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30대 재벌이 스스로 부자감세를 철회하면 복지재원을 10조 원씩 더 걷을 수 있다"며 "현오석 경제부총리 팀이 지금 가장 서둘러야 하는 일이 있다면 바로 재벌들이 스스로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사회적 존경을 받도록 독려하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취임 7개월째 얽히고설킨 박근혜식 정치.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