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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일심회 사건과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폭력사태를 거쳐 최근 '이석기 사태'(내란음모 의혹)까지 터지면서 진보운동은 이제 임계점에 이르렀다. 이석기 사태를 진보운동의 위기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진보운동에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면 진보운동은 이석기 사태에서 무엇을 성찰하고 얻어야 하나? <오마이뉴스>는 보수와 진보진영 등에서 활동해온 인사들과 연쇄인터뷰를 해 그 해답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진보정치 1단계에서 연착륙을 못하고 낡은 기체로 허공을 헤매다 와장창 깨진 상태다"
"진보정치 1단계에서 연착륙을 못하고 낡은 기체로 허공을 헤매다 와장창 깨진 상태다" ⓒ 권우성

진보정치의 추락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08년 일심회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동당이 분당했고, 지난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의혹과 폭력사태로 통합진보당이 분열했다. 이어 최근에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의혹 사건까지 터졌다. 일련의 사태는 지난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을 이끌었던 '1세대 진보정치'가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지난 9월 30일 출판사 후마니타스 사무실에서 만난 박상훈(정치학 박사) 대표는 이를 "진보정치 1단계에서 연착륙을 못하고 낡은 기체로 허공을 헤매다 와장창 깨진 상태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제2기 진보정치 실험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평균적 시민들은 이 사건을 합리적 이해할 수 있어"

<정치의 발견>과 <민주주의의 발견> 등의 저서에서 정치와 운동의 관계를 통해 진보정치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온 박 대표는 이석기 사태를 '민주화의 효과'라는 측면에서 해석했다. 그는 "이것이 대남혁명전략을 통해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행동의 결과라기보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주화의 효과가 있었다는 사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이 드러난 과정을 보면서 이들의 내부규율도 많이 약해졌구나 느꼈다. 말하는 것(발언)의 강렬함과 그들의 행태가 보여주는 차이는 컸다. 그들도 자신들이 한 말을 신념처럼 믿고 있지는 않았다. 권위주의와 싸우기 위해 북한을 낭만적으로 미화했던 사람들도 민주화 26년을 경험하면서 일상화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옛날에 했던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몸은 이미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일상적인 압박에 노출돼 있었다. (결국) 민주주의는 과거 시대착오적이고 초현실적인 생각들을 완화시켜주는 작용을 했다고 생각한다."

박 대표는 "민주화가 됐기 때문에 그런 단체나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제거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거듭 강조한 뒤, "보수세력들은 두려움을 증폭하기 위해 과장해서 활용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하지만 평균적인 시민들은 이런 사건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평균적인 시민들은 '무슨 비상식적인 이야기를 지금도 하나?'라거나 '이런 정도 가지고 호들갑을 떠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양쪽의 주장을 할인해서 듣지 않았을까?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한국사회가 급격히 보수화되지도 않았고, (보수파) 정부가 그것을 예전처럼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지도 못했다. 지금까지 성취된 한국 민주화가 모두 무화(無化)되는 것도 아니다."

박 대표는 "국정원의 필요 때문에 이 사건이 만들어진 측면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적어도 이런 사건의 충격을 견뎌낼  내성도 많이 생겼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 내성도 '민주화'의 효과라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람들의 질문에 엉뚱하게 대답했다" 

박 대표는 이들이 폐쇄적 조직문화를 유지해온 이유와 관련해 "중요한 조직행위자들의 영향력이나 권위를 만들어내고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라며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에 가졌던 신념을 강하게 불러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5·12 합정동 모임에서는 '반미 자주 사상'이 유독 강조됐다.

박 대표는 "하지만 과거의 신념에서 벗어나는 '탈주술화'가 조직 내부에서 일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사회에 충격을 주고 공안세력에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며 "스스로 했어야 할 역할을 못해서 생긴 점에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 사건 자체보다 사건에 대응하는 방법에서 통합진보당이 사람들에게 실망을 많이 줬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의 질문에 엉뚱하게 대답했다. 사람들은 '정말 이런 생각으로 정당을 하고 민주주의를 할 거냐?'고 물었는데, 통합진보당의 답은 '이것(국정원 수사)은 불법이다'라고 했다. 공안당국의 질문에만 대답한 것이다. 그들의 발언은 한국사회의 법률적 규범을 넘어서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이 사건에 대응할 때는 법률적 범위 안에서만 따진다. 아주 철저히 법의 논리 안에서 움츠리고, 공안적 대응에만 움츠리다 보니까 사건 자체를 공안사건으로 만드는 데 그들이 스스로 기여했다. 사건의 다른 측면인 시민들의 질문에는 성실하게 답하지 않았다."

박 대표는 "그들은 시민들에게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기회를 차단했다"며 "국정원이 사건을 만들어낸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시민들이 '그렇게 해서라도 저들에게 책임을 물으라'고 하는 것을 왜 그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답답하다"고 꼬집었다.

"이들이 혁명을 계속하겠다는 것인지, 내부 토론을 통해 책임있는 답변을 주겠다는 건인지 대답하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중요한 플레이어(player)가 되려면 시민들이 제기하는 질문에 답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안 그러면 '운동하는 애들, 진보를 말하는 애들은 속으로는 저렇게 생각하면서 그것이 문제가 되면 늘 기본인권, 사상의 자유에 숨어 버린다'고 비판할 거다."

박 대표는 "지난해에는 (부정경선 의혹 등으로 인해) '참 정치적으로 무책임하구나'라고 야단맞았고, 금년에는 (이석기 사태로 인해) '참 위선적이구나'라는 말을 들을 것 같다"며 "계속 법의 판결 앞에서만 인권과 무죄를 주장한다면 자신들의 생각을 제대로 말하지 않은 정치적 위선 때문에 사람들은 두 번 상처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정경선을 잘 책임졌다면 지금처럼 고립되지 않아"

박 대표는 "헌법을 지키겠다고 선서해놓고 자신의 양심의 법정에서는 헌법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을 설명할 책임이 있다"며 "그런데도 그 모든 것을 막아버리고 오로지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우리는 위법하지 않는데 국정원은 위법한 방법으로 우리를 탄압한다'며 사건 자체를 공안사건으로 제한(축소)한 것은 그들의 잘못이다"라고 지적했다.

"87년 민주화 당시 국민들이 이렇게 헌법을 바꾸어서 민주주의를 운영해보자고 합의했다. 그 체제 안에서 민주정치를 할 사람이라면 헌법을 준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동체에 충성한다'고 할 때 그 공동체를 어떻게 정의할까? 그들은 민족공동체를 상정했다. 미국의 영향력이 없는, 자유롭고 해방된 남북한 모두의 통일된 공동체를 상정했다. 그런데 '현행 헌법보다 이것이 우월하다'고 믿고 나머지 다수에게 동의받지 않는다면 독단일 뿐이다. 그걸 가지고 행동을 시작한다면 현행법상 큰 위반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민주적으로 정당한 절차로 결정한 헌법적 규범을 존중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박 대표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헌법적 애국주의'를 끌어왔다. 그는 "민족,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헌법에 충성하는 것이야말로 공동체에 충성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다"라고 한 하버마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87년에 싸워서 획득한 민주주의 체제와 헌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이석기 사태 직후 정의당에서 제기한 '헌법 안의 진보'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박 대표는 이석기 사태의 잘못된 대응이 진보정당을 더욱 고립시켰다고 진단했다. 그 고립화의 뿌리는 지난해 터졌던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의혹과 폭력사태였다. 당시 통합진보당 안에서는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사퇴를 통해 부정경선 의혹을 무겁게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나왔다. 

"당시 누가 잘못했든 명백하게 부정경선이 있었다. 그렇다면 정치집단으로서 누군가는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그 책임을 누가 질 거냐?'를 두고 토론했지만 아무도 지지 않는 것으로 결론났다. 한쪽은 우겨서 남고, 나머지는 나가는 걸로 끝났다. 그때 당 권한을 쥐고 있는 집권파(당권파)가 가장 많이 책임져야 했다. 부정경선의 정도에서 '우리가 최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고집이자 망상이다. 그때 이들이 책임있는 자세를 보였다면 지금처럼 고립되지는 않았다."

"진보에 느끼는 불쾌감 늘어가는 이유는..."

 "이들이 정치의 범주에 들어온 이상 시민이 정한 법 안에서 동등하게 경쟁해야 한다"
"이들이 정치의 범주에 들어온 이상 시민이 정한 법 안에서 동등하게 경쟁해야 한다" ⓒ 권우성

박 대표는 앞서 언급한 <정치의 발견> 등의 저서를 통해 "진보파들이 '운동성'을 강조하면서 정치를 멀리한다"거나 "진보파는 운동론으로 이야기되는 '저항의 정치학'에는 익숙한 반면 '통치의 정치학'을 익히는 문제는 의식적으로 회피해 왔다"고 지적해왔다. 이런 문제점은 이석기 사태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운동 속에서 자신들의 희생을 통해 사회공동체를 좋게 만들겠다고 하면 인정할 수 있다. 그러면 그것 때문에 사회가 좋아졌기 때문에 그들을 존경하고 나름 도덕적 부채감도 있어서 심리적으로 배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정치의 범주에 들어온 이상 시민이 정한 법 안에서 동등하게 경쟁해야 한다. 이상적 차원에서 자기들이 희생하겠다는 것과 다르게 관직, 예산 등을 가지고 정치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무한책임이 필요하다.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경쟁하고, 결과에도 평등하게 책임져야 한다."

박 대표는 "진보가 운동권적인 요소를 정치에 투영시켜 사람들 눈에는 도덕적 우월주의자로 보인다"며 "사람들이 운동권(진보)에 갖는 불쾌감이 자꾸 늘어가는 이유는 운동의 논리로 정치하는 자신들이 시민들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라고 강요하는 분위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보도 정치에 들어오면 민주적 규범을 완벽하게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는 서로 평등하게 참여하고 경쟁해서 결과를 통해서 평가받는 체제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를 하는 한 책임성 원리를 빼고는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다. 군주정과 다르게 우리가 주권을 이임해서 그들을 권력자로 만든다. 권력을 갖는 것에 비례해서 책임성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통합진보당에 13%, 6석을 줘서 1년에 수십 억 원의 예산을 받는다. 이것은 권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맞는 책임을 분명하게 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운동의 논리가 정치에 확장되면 안된다. 운동의 논리가 정치에 들어올 때 자신의 내면에 좋은 신념으로 남아야지 다른 사람을 강박하거나 자기의 책임을 면제받는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시민이 강해진다"

이어 박 대표는 "보수정당의 계파정치보다 진보정치(정당)의 정파정치가 더 유해하다"며 "진보정치가 진보적 옳음이든 역사적 옳음이든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고결한 판단을 앞세우기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정당의 계파정치처럼 당내에 더 많은 자리와 예산을 원한다. 차라피 계파정치는 내세우는 것과 행동이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가 책임을 묻기가 쉽다. 내놓은 것과 행동 사이의 차이가 크면 책임을 묻지 못한다.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것은 시민들이 약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시민들을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정파정치가 계파정치보다 유해하다. 책임을 묻을 수 있어야 시민이 강해진다. 시민이 권력자들 통제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박 대표는 "노조선거에 나간다, 정당에서 관직을 얻고자 한다, 선거에 나가서 의원 자리를 추구한다면 신념의 원칙과 행동의 원칙을 일치시켜야 한다"며 "옳은 걸 앞세워 그런 것들을 면제받으려고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정치와 운동이 서로 다른 원리라고 한다면 서로 협력할 길이 많다"며 "그런데 정치도 운동처럼 해야 한다거나 사회운동적 정치를 해야 한다고 한다면 결과도 나쁘고 사람들에게 지지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과도하게 정치를 운동의 연장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부정적 해악은 크다. 정치와 운동이 다른 것을 인정하면서 둘 사이의 다양성 속에서 협력하고 연대하는 것이 진짜 협력이고 연대다. 정치와 운동이 서로 다른 원리인데 동질화시키거나 중첩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이것이 동서고금을 통해 인간 역사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박 대표는 "정치를 하게 된다면 사회를 이상적, 도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해서는 안된다"며 "현실 범위 안에서 좀더 나은 가능성을 확대하고,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체제 안에서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새로운 진보를 기다린다"

 "여전히 사람들은 새로운 진보를 기다리고 있고, 그것이 한국 사회에 기여할 길이 여전히 넓다고 본다"
"여전히 사람들은 새로운 진보를 기다리고 있고, 그것이 한국 사회에 기여할 길이 여전히 넓다고 본다" ⓒ 권우성

박 대표는 "진보정치는 끝났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불평등하고, 다양성이 줄어들고, 돈과 행정의 힘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정치적 세력이 중간에 있었으면 좋겠다"며 "그런 점에서 진보가 더 필요한 사회다"라고 강조했다.

"진보정치세력에 거는 기대감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활동할 심리적, 사회적 공간은 여전히 넓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진보적 정치주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매우 차갑다. 그래서 진보도 1단계 도전이 왜 실패했는지 돌아봐야지 죽어라고 실패하지 않았다고 고집하는 것은 좋지 않다. 지금 있는 사람들에게 다 사라지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행위규범, 행동패턴으로 제2기 진보정치 실험에 나서야 한다. 이번 사건이 가능하다면 민주주의가 허용하고 가치있게 바라보는 행동방법과 규범을 교육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박 대표는 '제2기 진보정치 실험'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운동의 우월성을 버려야 한다 ▲부정의 정치를 반성해야 한다 ▲구원자적 희생정신을 교정해야 한다 ▲다들 정치하려고만 해서는 안된다 ▲아름다움을 보는 감각을 높여야 한다 등을 주문했다. 이어 그는 "현실민주주의는 혁명에 반하는 것이다"라며 "혁명하지 않고도 시민의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다"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이 사건으로 진보가 끝난 게 아니다"라며 "여전히 사람들은 새로운 진보를 기다리고 있고, 그것이 한국 사회에 기여할 길이 여전히 넓다고 본다"고 말했다. 

[인터뷰 어록] "무죄를 받는다고 나머지 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어"

"사상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엄청난 영향을 미쳐버렸다. 그들은 그런 생각으로 정치를 하게 되었고, 정치를 하면서 그것이 밝혀져 결국 그것이 민주주의와 헌법 범위 안에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받게 됐다.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나 헌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그들이 스스로 설명해야 하는데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 사상의 자유로 모든 것이 불문에 붙여져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렇게 사회를 바꾸는 게 필요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는 것은 혁명적 원칙에 근거한 대응이다. 두번째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방법이고, 세번째는 '이건 적법한 방법으로 사건이 밝혀지고 조사된 게 아니라 부당한 방법과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동이다'라고 대응하는 방법이다. 모임의 주관자이자 리더가 정당, 정치집단이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민주주의 원칙에 근거한 정치적 책임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혁명적 원칙이라도 보여줬어야 우리가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두 가지를 하지 않았다. 말은 혁명적으로 했는데 행동은 완전히 체제 내적 논리로 대응하면서 공안사건 다툼으로 문제를 협소해버렸다."

"이들은 '이건 조작된 공안사건이다'라며 법에 의존해서 무죄를 받으려는 태도가 있다. 이렇게 무죄를 받더라도 그 나머지를 책임져야 하는 문제는 남는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 때문에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지 못해서 국민들에게 소외당했다. 이번에도 제대로 답변을 하지 않고 법의 지배라는 틀 안에서만 대응한다면 설령 어떤 결과가 나오든 또 책임을 추궁받을 것이다. 그러면 더 소외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우리가 인권과 법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세상은 그것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문화, 규범, 도덕성도 있다. 사람들이 법전에 있는 내용만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인생을 살지는 않는다. 이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인정받는지 안받는지를 생각하지만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시민권을 갖지 못한다. 그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진보가 아름다움을 보는 감각이 떨어졌다. 하층민의 어떤 것을 일반화하는 게 진보인 것처럼 생각한다.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고급문화를 평등하게 향응하는 게 진보의 목표여야 한다. 진보는 인간이 만들어낸 여러 가지 혜택을 평등하게 공유하는 쪽에 기여해야 한다. 인간 사회 전체의 하향평준화에 맞추는 것은 곤란하다. 진보는 아름다움을 보는 감각이 높아야 한다. 글을 쓸 때도 좋은 문장을 고민하고, 옷 입는 데서도 패션 감각이 있어야 한다. 고급문화를 지배문화로 가져 가지 않고 그 가운데 좋은 것은 다른 사람들도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능한 공간에서 열심히 살고 투쟁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국민이 준 자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희생자주의나 피해자주의는 사회를 좋게 만드는 게 걸림돌일 뿐이다. 시민들의 열정과 기대와 희망을 조직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고 그것이 굉장한 자산이다. 그런데 '공안당국과 조중동에 놀아나서 그렇다'고 하면 안된다. 우리도 더 좋은 언론, 정당을 만들어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힘 가진 사람, 돈 많은 사람과 비슷하게 경쟁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몇 사람은 거짓말로 속일 수 있어도 몇 천만 명을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작됐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시민들과 대화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최고는 시민적 평결이다. 밖에 나가서 화염병을 던지거나 분신하는 종류와는 아주 다른 체제다. 제 식구 감싸기를 계속 한다면 공론장이라는 넓은 영역에 다가가지 못한다. 소집단 논리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진보 안에서 제 식구 감싸기를 할 게 아니라 일반 시민 공론장에 가서 자신들의 문제와 정당성을 토론하는 게 훨씬 낫다. 그러려면 시민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야 한다."

"우리가 연대해야 할 사람은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없는 진보적 이상과 혁명적 열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월세 내기 힘들어 쓰레기통 차는 보통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 애환과 연대해야 한다. 우리가 우월한 사람을 숭배할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위대한 정치체제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이 특별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하는 것이다."



#박상훈#이석기 사태#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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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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