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왔다. 5년만이다. 지난 2008년, 국군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군사 퍼레이드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탱크에 뛰어들었던 강의석씨. 올누드 상태에서 과자로 만든 총을 먹는 시늉을 한 그의 퍼포먼스는 불과 몇 초 만에 제지되었지만, 당시 그의 퍼포먼스는 인터넷 주요 포털사이트 상위 검색어로 링크되는 등 화제가 됐다. 그 후 잠잠하다 싶더니 5년만인 1일 국군의 날 퍼레이드에 그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이날도 누드였다.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일 오후 4시, 5년 전과 비슷한 퍼포먼스를 준비 중이라고 밝힌 그. 하지만 실제 그의 누드 퍼포먼스는 이날 오전 6시 27분 용산구 전쟁기념관 형제의 상 앞에서 펼쳐졌다.
미리 예고한 것과 다른 시각에 누드 퍼포먼스를 보여준 그. 혹시나 그의 누드 퍼포먼스를 놓친 것을 아쉬워한 이들이 있을까 봐 친절하게도 사진과 동영상을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한 게 많다. 왜 하필 누드 퍼포먼스일까. 그래서 그와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서 직접 만나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단독으로 인터뷰해봤다.
-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왜 하필 누드냐고… 관심받고자 하는 것인가.
" 내가 누드로 나서는 것은 '비무장의 표현'이다. 탱크와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 앞에서 누드로 비무장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5년 전에는 과자로 만든 총을 먹는 시늉을 하면서 '총이 없는 세상은 아름답다'라는 메시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완전한 알몸으로 나선 이유는 팬티에 무기를 숨길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팬티 하나 걸치치 않고 완전한 비무장을 표현하고자 했다."
- 이번에는 "우리는 전쟁을 기념한다(Korea Celebrates War)"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 '기념'한다는 것이 뭐가 잘못됐나?"군사력을 과시하는 퍼레이드는 매년 북한이 하는 행동이다. 민주주의, 시민의식 등 여려면에서 북한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우리가 왜 북한과 똑같은 짓을 하는가. 평화를 사랑해야지 총과 탱크를 앞세워 전쟁을 기념한다는 발상 자체가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 누드라서 외설적이라며 비난하는 시선들도 있다."아기의 몸은 예쁘고 다비드상의 벗은 몸도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왜 일반인들의 알몸은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나? 내가 벗은 상태에서 음란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국군 퍼레이드에 맞서 비무장을 표현할 때만 알몸 퍼포먼스를 펼친다."
- 5년 전 알몸 퍼포먼스 이후에도 '강민경 패러디 영상' 등을 통해 간간이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 다니던 학교(서울대 법대)도 중퇴했고, 요즘 뭐하고 지내나?"학교는 등록을 하지 않아 자연스레 제적된 상태이고, 요즘은 '독립영화 감독 강의석'이라고 나 자신을 소개하고 다닌다. 학생 인권 관련 영화 제작하고 있다. 참, 조기 축구도 매주 빼놓지 않고 나가고 있다."
강의석이 꿈꾸는 건, 존댓말 없는 세상- 고등학생 시절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유명해졌다. 요즘 제작하고 있는 학생 인권 영화는 어떤 내용인가?"궁금해하는 이들을 위해 영화의 시나리오 원문 전체를 페이스북에 올려놨다."
- 고등학생 시절 학교를 상대로 소송제기, 병역거부로 인한 수감생활, 서울대 법대 중퇴, 독립영화 감독으로의 진로 변경까지 보통 사람들보다 확실히 튄다. 이에 대해 부모님의 반대는 없나? 원래 개방적인 가정 분위기인가?"어머니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기득권층이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것 같다.(웃음)"
사회 문제 현안에 대해선 보수적인 어머니와 의견이 다를 때가 많지만, 다행히 모자 관계는 아직 돈독하다고 한다. 이공계열 출신인 어머니와 매주 인문학 강의도 들으러 간단다. 영화 제작 하나로도 바쁠텐데 매주 빼놓지 않고 인문학 강의도 들으러 다니고 조기축구 빠지지 않고 나간단다.
다니던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지 10년, 그때 그 당돌하던 고등학생이 벌써 28살 청년이 됐다. 그에게는 비무장, 군대없는 세상, 평화 말고도 한가지 더 바람이 있단다. 바로 존댓말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것. 그래서 기자보고도 앞으로 말을 놓잖다.
사실 강의석씨는 기자보다 두 살 많지만, 강씨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이제부터 '너'라고 부르기로 했다. 연장자에게 반말하는 게 익숙치 않은 기자가 존댓말을 하는 실수를 범할 때마다 '너!라고 하라니까'라며 세심하게 고쳐줬다. 앞으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