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21번, 넌 22번, 그리고 너는 23번, 24번, 25번. 방은 어떻게 해서든 마련해 줄 테니까 당장 짐 싸서 입소해!" "입소하라고요?" 입소, 왠지 신병훈련소나 청소년수련원에 어울리는 단어다. 하지만 이곳은 신병훈련소도 청소년수련원도 아니다. 그럼 대체 이곳은 어디일까?
여수 시가에서 벗어나 한참 가다 보면 어느 순간 탁 트인 논과 들판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 더 가면 작은 산을 병풍 삼아 언덕 위에 서 있는 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중증장애인 재활을 위한 사회복지시설, 전남밀알복지재단 에덴동산(여수시 소라면 중촌1길 11-92)이다.
어눌한 발음이지만 "안녕하세요"라며 우리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입소 권유를 받았다. 입소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만 28명인데도 그들을 제치고, 에덴동산을 방문한 지 이틀 만에 방은 어떻게든 마련해 줄 테니 당장 입소하라는 이 말, 어떻게 듣게 된 걸까?
"중증 지적장애인에게도 '관계'는 있다"프로그램실에서 젠가라는 블록게임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장애인 한 분이 우리에게 다가와 "이게 뭐예요?"라고 말을 걸었다. "아, 이따 할 게임이에요." 그러면서 우리가 블록쌓기를 계속하자, 그분은 우리를 도와주셨다. 비록 삐뚤삐뚤 잘못 쌓아 다시 정리해야 했지만 낯선 우리에게 다가와 먼저 손을 내밀어 준 덕분에 우리는 긴장을 조금씩 풀 수 있었다.
우리가 프로그램실에서 준비해온 사탕 목걸이 만들기를 할 때였다. 그런데 임성태(28) 지도사 선생님이 두 분을 주의 깊게 보라고 하셨다. 목에 음식이 잘 걸리는 분들이라고 했다. 이는 다 튼튼한데 숟가락이 들어가자마자 씹지 않고 바로 삼켜버리는 분이 있다는 김순자(58) 원장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주위의 장애인분들이 그분들이 사탕을 삼키려 하자, 그 사탕을 뺏으며 "그거 먹으면 안 돼! 목에 걸려!" 하며 챙겨줬다. 지적 장애인이라고 해서 자기만의 세계에만 빠져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도 '관계'는 있었다. 상대방을 보호해 주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이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이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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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또 언제 올 거니?"우리가 한창 프로그램을 돕고 있는데 지도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네 또 언제 올 거니? 한 명씩 봐 주니깐 되게 좋다." 사실 우리도 지도사 한 분이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는 너무 벅차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5명이 진행을 돕는데도 그분은 정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 원장 선생님, 지난 주 일요일에 시설 내 장애인분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장애인 수에 비해 선생님 수가 턱없이 모자란 것 같았어요. "맞아요. 이 시설의 전체 인원이 원장부터 시작해서 12명이지만, 안전관리나 행정, 간호 업무, 조리사 등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장애인들을 보호하는 복지사는 6명이에요. 그래서 두 명이 3조로 돌아가고 있지요."
- 6명의 복지사들이 장애인분들을 보살피는 데에 어려운 점이 많겠어요."보건복지부에서는 시각장애·청각장애·지체장애를 포함해서 중증장애인들은 2.7명당 한 사람이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지켜지지 않아요. 그렇다고 한 선생님이 24시간 근무할 순 없잖아요. 6명의 교사가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하다 보니, 결국 한 사람이 10명을 봐야 하는 상황이에요. 더군다나 지적장애하고 발달장애는 계속 눈이 따라다녀야 하니까 더 버거울 수밖에 없죠.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필요한 이유도 그거고요."
- 형편이 이렇다 보니, 위험한 상황도 일어났을 것 같은데요."원래 중증장애인들은 일대일 케어를 해야 해요. (유리창을 가리키며) 이 유리를 때리면 어때요? 보통 사람들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잖아요. 근데 이 친구들은 그냥 유리를 마구 두들겨요. 깨지면 다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해서지요. 에덴동산에 다이빙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한 번은 외부로 나들이를 갔다가, 겨우 발등까지 찬 물에 뛰어들어 크게 다칠 뻔한 적도 있어요. 한시도 눈을 뗄 수는 없는 이런 친구들이 1급, 2급 중증장애인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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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명 시설도 전원 지원이 되면 좋겠어"주말마다 에덴동산을 찾아 일도 거들고 청소도 해 드리고 장애인분들하고 장난도 치면서 낯선 풍경이 조금씩 낯이 익어갈 무렵, 취재를 마무리하는 인터뷰를 하게 됐다. 어느 복지시설이 그러지 않겠는가마는, 듣다 보니 에덴동산도 우리의 열악한 복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 처음에 에덴동산을 봤을 때 우와 하고 감탄이 절로 나왔어요. 밖으로 시원하게 탁 트여 있고, 안에는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거든요. 이곳에서는 어떤 분들이 생활하고 있나요?"에덴동산은 국가에서 세금으로 지어준 시설이니 소중하게 써야지요. 에덴동산이 생긴 것은 보통 장애인 시설에서는 중증장애인을 잘 받아주지 않아서예요. 그분들이 갈 곳이 없었는데, 에덴동산이 생기고 나서 다른 시설에서 받아주지 않던 장애인 열 분이 먼저 들어왔어요. 그러고 나머지 열 분은 여수시에서 공문으로 받으라고 한 분들이지요."
- 며칠 동안 지내면서 느낀 건데, 거의 개인 생활이 없으신 것 같던데요?"우리는 생활시설이라 교대근무를 해야 해요. 다들 주5일 근무를 하는데 우리는 그럴 수 없어요. 토요일 일요일 없이 근무를 해야 되죠. 그런데 주당 40시간을 넘어서면 시간외 근무수당을 주게돼 있는데, 우리는 그럴 수가 없어요. 여기 선생님들은 주당 64시간 근무가 태반인데 예산이 없어 못 드려요. 형편을 맞출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이직도 많아요."
- 저희도 에덴동산이 잘 되었으면 하는데,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예전에는 정부에서 100명 정도 생활할 수 있는 장애인 시설을 허가했어요. 그러다가 문제가 많다고 하여 요즘은 그 수를 줄여 30명 정도의 시설을 주로 짓지요. 그런데 우리는 땅이 부족해서 20명 시설로 허가를 받고 나니, 종사자 12명밖에 지원을 못 받고 있어요. 30명 시설은 언어치료사·물리치료사·재활치료사도 지원받으니, 장애인들에게 보다 더 체계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는데, 현재 우리는 생활지도원만 지원받고 있어요. 20명 시설도 치료사를 지원받도록 규정이 고쳐지면 좋겠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5일 가?" 하는 분이 있어서 지도사 선생님께 여쭤 보았다. 그랬더니, "아, 그분?" 하며 들려주신 이야기다. 그 분은 하루를 "5일 가?" 하며 시작한단다. 처음에 시설에 왔을 때 5일마다 집에 보냈었는데, 그게 습관이 되다 보니까 5일 있으면 집에 가냐고 그렇게 묻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분은 요즘 집에 자주 못 가게 되었단다. 부모님도 지적장애인이어서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아들을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에 가면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길거리로 나오게 되고, 그러면 선생님들이 그때마다 찾으러 다니다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집에 가면 제대로 조절이 되지 않아 힘든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기에 생활시설은 집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직접 보러오는 게 낫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러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 분들은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원장 선생님 말씀으로는, 친구 한 명이 집에 가면 남은 사람들 눈빛이 달라진다는데.
* 기사 작성 : 동아리 <사랑해여수 4기> 김지현, 김정원, 김혜연, 주현영, 고은비 기자. 지도 교사 : 박용성 시민기자 덧붙이는 글 | <사랑해여수 4기>는 “아름다운 여수,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우리 고장을 널리 알리고 있는 여수지역 고등학생들의 연합동아리입니다. 우리 동아리에는 여수(YEOSU)의 글자 하나씩을 따서 만든 ‘Y-fine’, ‘Energy’, ‘Oasis’, ‘Superstar’, ‘U&I’ 총 다섯 팀이 있는데, 이 기사는 O팀에서 작성하였습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다섯 차례에 걸쳐 에덴동산을 찾았습니다. 바쁜 시간을 내 주신 김순자 원장님과 저희를 이끌어 주신 박용성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팀장 :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