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래전부터 자타공인의 딸바보입니다. 그래서 딸이 집에 오는 날이면 대전역이든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마중을 나가죠. 딸이 대학생이 되어 상경한지도 어느새 9년여가 되었습니다.
서울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내처 종로의 직장에 재직 중인 딸은 일이 너무 많은 나머지 지금도 일 년에 몇 번 집에 오지 못 하죠. 따라서 딸이 모처럼 온다고 하면 그야말로 열 일 제치고 녀석을 맞으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곤 반갑게 만나자마자 이렇게 묻곤 하죠. "우리 딸, 오늘은 뭘 사줄까? 말만 해. 아빠가 죄 쏜다!" 하지만 딸이 원하는 음식은 의외로 소박합니다. 그러나 입은 있어서 목표를 정확히 가격하는 저격수인 양 그렇게 맛난 음식을 금세 고를 줄 하는 안목을 지니고 있죠.
"아빠, 칼국수 사 주세요. 빨간 칼국수로!" "에게~ 겨우?"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내심 저 또한 반가운 마음에 같이 냉큼 택시에 오릅니다.
"기사님~ 대흥동 칼국수 타운에 갑시다!"
그 중 평소 단골로 가는 집, 딸과 동행하면 녀석이 "저는 빨간 칼국수 주세요~"라는 집에서 그야말로 빨간 칼국수를 한 그릇 주문했습니다. 이 집에선 고춧가루를 뺀 일명 '하얀 칼국수'도 파는데 이는 해물이 많이 들어가 시원한 반면, '빨간 칼국수'는 저처럼 술과 매운 맛을 즐기는 이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죠.
별도의 바구니에 담아내는 쑥갓은 그야말로 무한리필인 것이 어제 찾은 국숫집과 그 일원 '칼국수 타운'의 공통된 현상입니다. 한 그릇에 5천 원인 칼국수를 주문하고 앉아있으려니 제 옆의 여러 일행 손님들은 돼지고기 수육 안주에 소주까지 주문하여 왁자지껄하더군요.
그 바람에 자타공인의 이 주당, 다시금 부화뇌동하였지 뭡니까. "아줌마, 나도 소주 한 병 줘유." 모처럼 칼국수를 먹자니 참 맛있었지만 결국 그릇을 모두 비워내진 못 했습니다. 그건 물론 소주를 한 병 같이 마신 때문이었죠.
하여간 제가 사는 이곳 대전의 칼국수는 전국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제과의 명문 성심당의 튀김소보로 빵과 더불어 대전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또 다른 어떤 쌍끌이에 다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주장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대전 칼국수 먹어봤슈? 안 먹어봤음 말을 하지 마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