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전력거래소 '전력계통운용시스템(EMS)' 검증에 참여했던 일부 대학 교수들이 전력거래소 연구 용역을 받았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더구나 EMS 조사 당시에도 수억 원대 연구 용역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전력거래소 '면죄부' 논란에 기름을 붓게 됐다.(관련기사: [단독]
전력거래소에 '면죄부'... '블랙아웃 진실' 덮나 )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전정희 민주당 의원은 12일 "산업통상자원부 추천으로 EMS 기술조사위원회에 참여했던 교수 3명이 조사 당시에도 전력거래소가 발주한 연구 개발 용역을 수행하고 있었다"며 당시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전력거래소 연구 용역 수행 중에 EMS 기술조사 참여"<오마이뉴스>가 전정희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전력거래소 연구 용역 자료에 따르면 2011년 9·15 정전사고 이후 전력거래소에서 발주한 연구 용역 44건(54억4천만 원) 가운데 이들 교수 3명이 받은 용역은 모두 7건으로, 액수로는 8억4천만 원에 이른다.
이아무개 교수는 2012년 '전력계통 고장전류 해석기준 수립'을 비롯해 3건을 3억8700만 원에, 전아무개 교수는 2011년 '제주계통 환경 변화를 고려한 적정 부하차단방식에 관한 연구' 등 3건을 3억2천만 원에, 또 다른 이아무개 교수는 2013년 '전력계통 규모 확장에 따른 154kV 계통기준전압 적정성에 관한 연구' 1건을 1억3900만 원에 각각 수주했다.
특히 세 교수 모두 EMS 기술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13년에도 연구 용역을 1건씩 수주해, 연구 용역과 기술 검증을 동시에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정희 의원은 "전력거래소가 발주하는 연구용역을 수행하는 교수들이 거래소의 EMS 운영실력을 제대로 점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이라면서 "이런 상식을 무시하고 거래소와 이해관계에 있는 교수들을 조사위원으로 추천한 산업부는 EMS조사의 객관성을 떨어뜨리는 일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6월 전력거래소가 전력 계통 운영 상황을 감시하는 EMS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2011년 9·15 정전 사고가 났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전정희 의원과 산업부는 지난 4월 전문가 7명으로 구성된 EMS 기술조사위원회를 꾸려 2개월여에 걸쳐 직접 검증했다. 당시 국회 쪽에선 위원장을 맡은 김건중 충남대 교수와 김영창 아주대 교수 등 3명을, 산업부에선 박준호 부산대 교수 등 4명을 추천했다.
하지만 조사 당시에도 정부 추천 위원 가운데 일부가 전력거래소에서 수 억 원대 연구 용역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서로 간에 불신이 팽배했다. 당시 국회 추천을 받은 한 위원은 "계약 관계에서 '을' 입장인 교수들이 '갑'인 전력거래소 부실 문제를 제대로 검증할 수 있겠느냐"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연구 용역 교수 "전력계통 전문가 부족 탓... 조사 결과는 객관적"전력거래소에선 "전력 계통 분야 교수 숫자가 많지 않아 대부분 전력거래소에서 발주한 연구 용역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면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책임을 정부와 국회 쪽에 미뤘다. 당시 산업부는 대한전기학회에 조사위원 추천을 의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거래소 연구 용역과 EMS 조사를 동시에 수행했던 한 교수는 12일 <오마이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9·15 정전사고 당시에도 전력거래소 조사단 참여 요청이 있었지만 당시에도 연구 용역을 수행하고 있어 고사했다"면서 "이번 EMS 조사의 경우 사실 관계가 분명한 기술 문제여서 주관이 개입될 소지가 적은 데다 전력 계통을 검증할 만한 국내 전문가가 부족하다고 해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EMS 조사 당시에도 서로 연구 용역 사실을 알고 있어 더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가능한 주관적 의견보다는 외국 자료에 나온 객관적 자료를 인용했다"면서 "단지 연구 용역을 했다는 이유로 보고서 내용까지 문제 삼는 건 곤란하다"고 반박했다.
지난 7월 발표한 EMS 기술조사 최종 보고서에서 국회와 정부 쪽 위원 간 평가가 갈렸다. 국회 추천 위원들은 전력거래소가 EMS를 제대로 활용 못해 정전 사태를 막는 데 필요한 운영예비력을 수동으로 계산하는 등 전력수급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반면, 정부 추천 위원들은 예비력 관리 등에 큰 문제가 없다는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당시 위원장을 맡았던 김건중 교수는 "산업부에서 4명, 국회에서 3명을 위촉하는 바람에 위원회가 적군과 아군으로 나뉘어 전쟁터가 돼버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예비력 모자라 전력위기? 전력거래소 '주먹구구' )
연구원 불러 '대리 시험'까지... 전력거래소 부실 운영 논란 자초
아울러 전정희 의원은 지난 5~6월 전력거래소 실사 과정에서 현장 급전원이 아닌 한전KDN 연구원이 '대리 조사'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당시 조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김영창 교수는 "송전선 안전도 유지 방법을 물었는데 담당 팀장이 아닌 직원이 사실과 다른 이론적 설명을 해 조사위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면서 전력거래소에서 직원 대신 대리인을 내세운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전정희 의원실이 11일 전력거래소에 확인한 결과 당시 한전KDN 연구원 2명이 대리 출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전정희 의원은 "거래소가 EMS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는 자리에 외부 기관 직원을 출석시켜 대리 답변을 하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거래소의 계통운영 실력이 바닥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