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용 전 경찰청장이 대표로 증인 선서에 나섰다. 그 뒤로 이광석 전 수서경찰서장,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등 20여명의 증인이 일어섰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었다.
지난 8월 국회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선서를 거부했던 그가 15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아래 안행위)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도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김 전 청장은 "국정조사 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사건(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축소·은폐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며 "국민의 기본권으로 주어진 방어권 차원에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및 형사소송법에 따라 선서와 증언, 서류제출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안행위 위원들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축소·은폐 의혹을 집중 질의할 예정이었다.
5선 이재오 의원도 납득할 수 없는 김용판
김 전 청장을 질타하는 데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이상규 의원은 "저렇게 뻔뻔하고 후안무치한 얼굴의 김용판씨를 동료 및 후배 경찰 앞에서 심문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국정조사든 국정감사든 서로가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것이고 증언을 통해 자기 방어를 할 수 있음에도 국민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위원장님이 이 자리에서 나가달라고 해주시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국민의 대변자로서 국회 안행위가 앞으로 있을 국정감사를 고려한다면 김용판 증인의 선서 거부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선서하지 않은 증인의 말을 어느 누가 믿을 것인가, 다시 생각을 바꿔 증인 선서를 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담담한 말투로 김 전 청장에게 말했다.
"저희들은 여당이다. 여당은 피감기관을 보호해야 하고 증인들 보호해야 하는 관례가 있다. 하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김 전 청장의 선서 거부를 저로서는 참 납득하기 어렵다. 김용판 증인이 밝힐 것은 밝히는 게 본인을 위해서나 또 국회의원들을 위해서나 바람직한 일이다."이에 김 전 청장이 "소명 시간이 짧았다며 말할 기회를 달라"고 말하자 이상규 의원이 "어디 감히 말해요", "선서 거부한 사람이 왜 발언해"라며 고성을 질렀다. 이어 김 전 청장이 "30초만 소명 기회를 달라"고 재차 요구했지만 의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야 의원들은 잠시 정회한 뒤 김 전 청장을 제외한 증인 심문을 벌이기로 했다.
여야 난타전... 경찰을 향해 '고성' 민주당, '두둔' 새누리당
앞서 의원 질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이성한 청장과 최현락 경찰찰청 수사국장을 질책했다. 최 국장은 당시 경찰의 수사를 지휘한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이었다. 지난 10일 열린 김용판 전 청장의 공판에서 검찰은 최 국장 기소 가능성도 내비친 바 있다. 당시 김 전 청장 다음으로 총책임자 역할을 했으며 국정원 직원들과 수차례 통화했기 때문이다.
이해찬 민주당 의원은 "최 국장은 경찰청장, 대통령, 동료경찰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국장으로 있어야할 사람이 아니다"며 "법원 판결이 나거나 의혹이 해명된 뒤에 승진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제는 보직에서 사임해라"고 질타했다.
김현 민주당 의원도 "수사를 지휘하는 사람이 국정원 직원이랑 통화한 게 잘 한 것이냐"며 "일말의 가책은 없나, 허위 발표로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아무런 생각이 없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김 의원은 이성한 청장을 향해 "사건 당시 재임 중이 아니라고 답변하는데 이제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전 국민의 관심사"라며 "경찰의 수장으로서 아무런 책임감이 없나"고 말했다.
이에 이성한 청장은 "재판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재판 종료와 함께 정확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짧게 답했다. 재차 김 의원은 "비겁하게 자리에 연연하고 싶냐, 오늘 하루 똑바로 대답해달라"고 언성을 높였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성한 청장을 두둔했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재판을 하고 있으니 그때까지 국민과 국회의원 모두가 지켜봐야 한다"며 "어떤 예단도 정치적 공방일 뿐이지 국민이 인정하는 결과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황 의원은 "참기 어려운 발언을 들으면서 이성한 청장이 어떤 생각을 할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며 "국정원 댓글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니 중심을 가지고 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