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구세군 자선모금함이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빨간 박스에 작은 액수나마 돈을 넣어본 사람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뿌듯함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부'는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문화로 인식되어 있는 듯하다. 연말의 성금모금 시즌에 하는 '겨울에만 하는 연례행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돈이 아주 많은 부유층'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호화스러운 취미생활로 느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실 여태까지의 기부는 그런 면이 다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21세기로 접어들면서 기부문화도 서서히 변화하는 중이다. 새로운 버전의 기부문화를 소개하는 책 <기부 2.0>에는 그러한 변화가 종합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기부 전문가의 '똑똑한 기부 지침서'저자 로라 아릴라가 안드레센은 기부와 자선활동을 해온 것은 물론, 오랫동안 그와 관련된 교육을 직업으로 삼아왔다. 미국의 거액 기부가들의 컨설팅을 해주었으며 작년인 2012년에는 워렌 버핏, 빌 게이츠와 더불어 미국의 자선왕 12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정도면 가히 '기부 전문가'라고 불릴 만하다.
그녀가 쓴 책 <기부 2.0>은 기부의 편견을 깨려는 시도와 함께 다양한 기부의 방법을 수집하여 엮어낸 노력이 함께 담겨있다. 기부는 부유한 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니며, 어렵고 까다롭거나 거액의 돈을 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당신이 100달러를 가지고 전 세계 기아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아마 당장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한 소녀의 삶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고자 마음먹는다면 당신은 이미 큰 진전을 이룬 셈이죠."(본문 78쪽 중에서)작은 액수의 돈이라도 결코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어 기부자가 낸 40달러는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어느 소녀의 10개월치 학비로 쓰이거나, 200달러의 기부는 다리에 장애가 있는 방글라데시의 한 노동자의 의족 구입비로 사용된다. 수십만 달러의 거액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좋은 일에 충분히 쓰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기부를 시작하기 전에 꼼꼼히 알아보라고도 충고한다. 기부를 비정기적으로 할지 아니면 일정한 기간 동안 특정 금액을 낼 것인지, 해당 자선단체가 어떤 사람을 후원하는지 스스로 성향과 방식을 잘 알아보고 정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인다. 다양한 정보와 기부를 하기 전에 알아야 할 상식까지 담은 <기부 2.0>은 기부를 위한 지침서와 같은 느낌이다.
슈퍼스타K와 닮은 온라인 투표? 다양하고 투명해진 기부2000년대를 넘어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기부의 방식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기부 2.0>에서 언급된 사례 중에는 'SNS를 이용한 기부'도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어플리케이션인 '포스퀘어(Foursquare)'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자신이 방문한 지역을 '체크인(Check-in)'하여 지인들이 볼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기는 방식인데, 방문지역이 늘어날수록 포인트를 모을 수 있다. 이런 방식에서 착안하여 마이크로소프트가 페이팔(Paypal)과 공동으로 '아이티 어린이를 위한 성금 모금'을 진행했는데, 총 15만5천 건의 체크인 포인트를 사용자들로부터 전달받아 1만5천 달러를 기부한 바 있다.
최근 수천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사업으로 성장한 온라인 게임이 기부를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게임의 사용자가 가상의 농장에서 과일과 야채를 기르는 게임인 팜빌(Farm Ville)은 게이머들의 요청에 따라 그들이 게임 상에서 재배한 채소를 (실제 채소로 환산하여) 일본대지진 희생자들에게 기부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가상의 온라인 공간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사용자가 아바타를 통해 희귀종 식물을 구입하면, 실제로 같은 종의 식물을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의 숲에 심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케이블방송의 인기프로그램 '슈퍼스타K(아래 슈스케)'를 연상시키는 기부방식도 있다. 미국의 케이스 재단이 인터넷을 활용하여 벌였던 자선모금행사는 네티즌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기 위하여 경쟁방식을 도입했다. 오디션의 최종후보를 시청자의 투표로 선정했던 슈스케처럼, 케이스 재단은 전 세계 네티즌들의 공개 기부와 온라인 투표를 거쳐서 최종 기부 대상 4명을 선정하여 각각 3만5천 달러를 지원했던 것이다. 이 캠페인이 종료된 이후 케이스 재단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같은 방식으로 2500만 달러를 모금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앞서 언급된 독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글에 이어서 이미 새롭게 달라진 기부문화가 소개된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욜코나 재단' 등의 자선단체가 보여준 '기부금의 사용처를 모두 공개'하는 방식은 "내가 기부한 돈이 엉뚱한 곳에 쓰이지는 않는가" 하는 의심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열린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과 접목된 기부문화가 '투명성'과 '높은 참여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 것이다.
나와 세상을 바꾸는 기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기부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92%)은 그렇지 않은 사람(76%)보다 자신의 건강과 삶에 더욱 만족한다는 설문조사가 있다. 설문조사의 신빙성을 묻지 않더라도, 어려운 처지의 누군가를 작게나마 도움으로써 뿌듯함을 얻는 일은 분명 자신의 삶을 따스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저자는 기부하는 행위가 기부를 한 사람 뿐만 아니라 세상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널리 퍼뜨리자'는 취지의 비영리 재단은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를 모아서 다른 사람을 더 효과적으로 돕기도 한다. 비영리단체 '킥스타트(KickStart)'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농부들에게 무작정 원조를 하는 대신 저렴한 물 펌프를 개발하여 판매한다.
그들은 무료기부가 아니라 판매하는 이유는 투자와 헌신이 요구될 경우에 가난한 사람의 자발적인 삶의 개선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킥스타트의 조사에 따르면 무료배포 시에는 30%만이 펌프를 사용한 반면, 저렴한 값에 판매했을 경우에는 80%가 농사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구입한 장비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올해 보도된 뉴스에 따르면 2012년 국내 대기업들의 매출이 크게 늘어났으나 기부금 지출은 줄어들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CEO스코어 조사결과에서 작년 시가총액 상위 20위 기업(공기업 금융지주 제외) 가운데 기부내역을 공개한 17개 기업의 작년 기부금이 고작 매출대비 0.1%에 불과했던 것이다.
기부가 낯선 개인이나 매출에만 열올리는 대기업에게, <기부 2.0>은 기부에 대한 생각이 한단계 나아가게끔 이끌어줄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더 이상 기부는 '돈을 내야하는 행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경우 지식과 재능의 나눔이 되기도 한다. 적은 돈으로도 어려운 이웃은 행복한 삶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시린 추위가 다가오는 계절, "나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부는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는 저자의 말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기부 2.0> (로라 아릴라가 안드레센 씀 | 최성환·김치완·정하나·김종욱 옮김 | W미디어 | 2013.04. |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