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과거를 보고자 하면 박물관에 가고, 현재를 보고자 하면 시장을 갈 것이며, 미래를 보고자 하면 도서관이나 학교에 가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도서관은 한 나라의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예전의 학교 도서관을 연상하면 켜켜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꽂혀 있는 책들이 떠오른다. 도서관은 학교에서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학생들에게 외면당하는 곳, 그저 단순히 책을 대출하거나 반납 받는 공간 정도였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학교 도서관을 활성화하자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학교 도서관의 모습은 이제 많이 변모하였다. 외형적인 면에서 리모델링 작업을 통해 도서관은 퀴퀴하게 냄새나는 공간에서 산뜻한 공간으로 바뀌었고, 단순히 대출·반납 업무만 하던 곳에서 점차 학습과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학교 도서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보다 자세한 통계와 수치를 가지고 살펴보면, 학교 도서관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2003년부터 학교 도서관 활성화 사업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전국의 1만1973개교 가운데 95%에 해당하는 1만 1461개교에 학교 도서관이 설치되었다(2011년 기준, 한국도서관연감/학교도서관활성화사업평가조사연구).
도서관 전담 인력 배치된 학교 41.9%... 대부분 비정규직 하지만 2012년 한국도서관연감에 따르면, 도서관 '전문 인력'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외형적인 투자로 겉모습은 획기적으로 좋아지고 달라졌지만, 내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현실이다.
전국 1만1506개 학교 도서관 가운데 비정규직 사서를 포함하여 전담 인력이 배치된 학교는 4823개교로 41.9%이다. 아직도 절반이 넘게 학교 도서관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일반 교사들이다. 이들은 다른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수업을 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의 모든 시간을 학교 도서관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그나마 4823개교에 배치된 전담 인력의 85.7%인 4134명이 비정규직 사서이며, 정규직 사서 교사는 689명인 16.8%에 불과하다. 학교 도서관까지 경제 논리로 접근한 탓이다.
학교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교과 수업에 활용되는 것이다. 학교 도서관 활용 수업은 탐구 수업이며 이용자 중심의 수업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과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수업이다. 이러한 수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도서관 전문 인력인 사서 교사와 교과 담당 전문 교사가 긴밀하게 협력하여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해야한다.
교과 담당 전문 교사가 학습 주제를 선정하면, 그에 걸맞게 도서관 전문 인력인 사서교사는 적절한 자료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협력 수업, 연계 수업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려면, 당연히 신분이 안정된 정규 사서 교사로 하여금 그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고 상식이며, 교육 당국의 몫이요 책무일 것이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전국 공립 학교 사서 교사 신규 임용은 단 1명이었다.
학교 도서관은 1500명당 전담 인력 1인을 두도록 한 현재 학교 도서관 진흥법 시행령(아래 학진법 시행령) 제 7조에 따라 서울, 경기, 전남, 경북, 경남 등 일부시도 교육청은 사서교사가 적정 인원 대비 과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학진법 시행령을 액면 그대로 적용하면, 서울시 교육청 역시 사서 교사의 정원은 법적 적정인원 대비 과원이다. 서울시에서 최근 3년 이내 지속적으로 사서 교사가 정년·명예퇴임 했음에도 신규 임용을 하지 않는 이유 역시 "현재 사서교사가 정원을 초과한 과원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학교도서관진흥법 시행령 제7조(사서교사 등) ①법 제12조제2항에 따라 학교에 두는 사서교사·실기교사나 사서(이하 "사서교사 등"이라 한다)의 총정원은 학생 1,500명마다 1명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개정 2012.8.13 제24035호(도서관법 시행령)] [[시행일 2012.8.18]]하지만 이러한 학진법 시행령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사서 교사 과원으로 설정한 기준이 되는 학진법 시행령은 전담 인력으로 정식 교원 신분인 '사서 교사'만으로 한정한 것이 아니라 교원 신분이 아닌 '비정규직 사서'까지 포함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시교육청에서 사서 교사가 과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교원의 인원 배치 기준에 정규 교원뿐 아니라 비정규직 인원 배치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비교과에서 교원과 교원 신분이 아닌 사람이 공존하는 영양 교사의 사례를 보면, 영양 교사의 인원 배치 기준은 초·중등 교육법에 따르는 반면, 교원 신분이 아닌 영양사(비정규직 포함)는 식품 위생법에 따라 배치 기준을 두고 있다. 이는 사서 교사와 비교했을 때,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 이러한 학진법 시행령의 전담 인력 규정에 대한 모호함 때문에 현재 개정법이 국회에 상정되어 계류 중에 있다고 한다.
사서 교사 자리 있는데도 채용 안 하겠다는 서울시 교육청 서울시 교육청의 학교 도서관 전담 인력 구성현황을 볼 때, 정규 교원인 사서 교사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서울시 교육청 1311개 학교 도서관에서 전담 인력이 배치된 1207개교를 보면 교원인 사서 교사는 195명(16%)인 반면, 교원 신분이 아닌 비정규직 사서는 1004명(83%)이다.
그럼에도 학진법 시행령의 모호함에 근거하여 현재 서울시 교육청은 "사서 교사는 과원"이라고 궁색하게 답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서울시 교육청은 선발할 수 있는 2명의 사서 교사 자리가 있음에도 과원이라는 이유로 신규 임용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사서 교사 전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시교육청의 답변은 납득하기 어렵다.
학교 도서관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그에 걸맞게 이제는 '전담 인력'에서 '전문 인력'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언제까지 경제논리에 입각하여 값싼 노동력에 의존할 것인가?
학교도서관 운영은 비정규직이 해도 된다고 하는 지독한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정규직만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이제는 적극적으로 빈 자리를 전문 인력으로 채워야 한다. 특단의 대책을 세워, 정규직 사서 교사 확보에 나서야 한다. 학교 도서관이 '학교의 심장'이라면 사서는 '심장지기' 아니겠는가? 심장지기인 전문 사서들이 안정된 신분에서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해야 우리 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이 아닌가?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과 박근혜 대통령은 말로만 '행복교육'을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정책과 예산과 실천으로 입증해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학교 도서관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형태 시민기자는 현재 서울시 교육의원입니다. 이와 유사한 글을 서울시의회 공보실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