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유스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이 펼쳐졌다. 이상한 나라에서 온 연주자들의 참으로 이상한 공연이었다. 순서지에 나오는 예정된 마지막 곡이 모두 끝나고 그렇게 기립박수를 쳐 대는대도 앵콜 공연을 안 하나 싶더니만, 갑자기 불이 꺼지고 단원들은 베네수엘라 국기의 문향과 색깔이 도안된 알록달록한 점퍼로 갈아입고 등장했다.
"근엄하고 격조 높은 고전음악을 하는 곳에서 얄궂은 점퍼 따위라니" 하는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이내 Venezuela 라는 글자가 등 뒤에 선명하게 새겨져있는 지휘자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뭔가 신나는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악기를 돌려대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 큰 콘트라베이스가 잘도 돌아간다.
킬킬대고 좋아하는 얼굴 표정에서 이제야 저들이 고등학생, 대학생 나이의 청소년들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장엄한 차이코프스키의 5번 교향곡에 혼신을 다하던 진중함이 저렇게 바뀔 수도 있다니... 그러나 이 난장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음악에 맞춰 모두 "맘보(Mambo)"라고 소리를 지르며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바이올린을 옆에 끼고 스텝을 돌며 남미 축구의 환상적인 골세레머니에서나 볼 법한 엉덩이 흔들기 신공을 보여준다.
관객들도 신이 났다. 그야말로 흥에 젖어 치는 박수요, 환호였다. 참 이상한 나라의 요상한 오케스트라가 아닐 수 없다.
빈민가 아이들이 악기를 손에 쥐기까지...그런데 그들의 이런 뚱딴지같은 연주의 배경에는 베네수엘라라고 하는 파란만장한 나라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숨어있다. 소위 '엘 시스테마' 라고 불리는, 음악을 통한 사회변혁을 꿈꾸는 운동은 공식적으로는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베네수엘라 사회의 청소년들을 건강하게 성장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면서 전 세계에 청소년 사회운동의 모범적인 사례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00년 이후에 등장한 차베스 정권과 그들이 추구했던 라틴아메리카식 사회주의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가난해서 못 배운, 그래서 추하고 무식하여 이 사회의 발전에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빈민가의 어린이들에게 밥과 악기를 쥐어주기까지 참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국가발전을 책임질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모든 어린이가 굶지 않고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들이 음악을 하고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법으로 만들어져서 시행되어 정착되기까지 왜 우여곡절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갈등을 극복하며 만들어낸 국가적인 합의는 오늘날 베네수엘라에 '엘 시스테마'와 같은 사회운동을 수백개 이상 활성화 시켰다. 아이들의 폭력성이 줄어들고 취학아동의 숫자가 늘어나고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사회는 희망을 보았고 이는 결과적으로 경제발전으로도 연결되었다.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브라질과 같은 나라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치사회적인 안정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루어가고 있다. 세계의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된 브라질의 저력도 보편적인 복지를 통한 교육의 발전과 사회의 안정 등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라는 말을 실천하겠다는 굳건한 믿음이 없이는 당장의 성과위주식 교육에서 탈피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많은 반대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피와 눈물로 이룩해낸 라틴아메리카식 사회주의의 성과는 그렇게 나름의 결실을 맺어 오늘 우리 앞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을 연주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즐겁게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가기 싫은 음악학원, 지겨운 태권도, 공포의 공부방, 영문도 모르는 영어공부의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내 새끼 하나 잘되게 하겠다는 묻지마 교육에 천착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정말이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뭐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베네수엘라의 아이들처럼 좋아하고 행복해서 즐겁게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바이올린을 들고 춤을 췄다가는 음악 학원 선생님에게 박살이 날 판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청소년 음악교육의 현실과 베네수엘라의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오늘의 연주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이 이들의 재능이나 음악성이나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들을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누구나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있었다. 연주자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느껴지는 섬세함 속의 편안한 열정, 진중함 속의 자유분방함, 환한 얼굴표정 속에서 가끔씩 삐져나오는 장난스러움, 나는 그것들이 참으로 부러웠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아이들에게는 그런 것들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 아버지의 기대가, 국가의 입시제도가, 취업의 현실이, 이긴 놈과 잘하는 놈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모든 아이들의 얼굴에서 표정을 앗아갔다. 과연 이렇게 아이들을 만들어 놓고 얻은 부귀와 영광으로 우리는 부자라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이들은 이번 주 일요일인 20일, 오후 5시 서울의 한복판 덕수궁 중화전 특설무대에서 다시 한번 공연을 한다. '엘 시스테마'를 우리나라에 접목시켜 만든 한국의 '꿈의 오케스트라'와의 합동공연이다. '꿈의 오케스트라'가 과연 그 무서운 한국 초딩 음악과외의 한계를 얼마나 극복했는지 그래서 '엘 시스테마'가 추구하고 있는 가치를 얼마나 구현하고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쉽사리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과연 한국이라는 나라의 총체적 환경이 만들어 놓은 우리아들딸 음악영재 만들기 욕심이 여기에서는 좀 다르려나? 어찌되었건 우리나라 아이들이 이들과 공연을 훌륭하게 잘하는 것, 음악계의 김연아가 탄생하는 것, 난 솔직히 그까짓 것(?)에 별로 큰 관심이 없다. 그저 베네수엘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열정과 즐거움이 조금이나마 전염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바이올린을 들고 '맘보' 스텝을 밟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아~ 이렇게 음악은 신나고 재미나는 거구나"라고 한국의 어린이들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