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다시 읽기(사이다)'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들이 최근 게재된 '사는이야기' 가운데 한 편을 골라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창간한 오마이뉴스의 특산품인 사는이야기의 매력을 알려드리고, 사는이야기를 잘 쓰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글의 조건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
1년에 한 번쯤 만나는 고향 친구 '패거리'가 있습니다. 어려운 시험을 보고 고위(?) 공무원이 된 친구도 있고 은행이나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둘레에 '가난한' 기자들밖에 없는 저는, 그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대체 너희들은 '얼마나 받는지'! 아무리 친한 친구들이라 하더라도 그런 얘기는 '까놓고' 얘기하기가 참 힘듭니다. 그래서 변창기 기자님의 글을 읽고 좀 놀랐습니다.
변창기 기자님의 사는이야기 기사, <
학교 일용직은 빨간날 많으면 손해봅니다>. 학교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자신의 처지를 잘 보여준 글입니다. 특히 '공휴일 유급휴일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바로 자신의 월급명세서를 직접 보여준 것은 정말 용기 있다 할 만합니다. 그 용기 덕분에 독자들은 공휴일이 무급휴일로 돼 있는 지금의 제도가 왜 문제인지 곧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글쓴이는 글에서 먼저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라고 쓰인 자신의 근로계약서를 보여주면서 '언제라도 기능직 공무원이 인사발령 나면 그만둬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보여줍니다. '일용직'의 근무형태, '5만3160원'의 일당을 공개합니다. 일한 지 1년이 넘으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데, 1년째 되는 날을 사흘 앞두고 정규직 공무원을 발령내서 퇴직금도 못 받고 '계약해지' 됐다고 합니다.
민원을 넣고 억울함을 호소한 덕분에 지금 다른 학교에서 '똑같은 노동조건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가 이어집니다. 글쓴이는 두 학교에서 받은 월급명세서를 나란히 보여줍니다. 2011년 7월, 근무일 27일에 총액 143만5320원. 공제 후 131만9730원을 받았답니다. 그리고 2013년 9월, 근무일 24일에 월급 총액 127만5840원. 공제 후 116만180원이 통장으로 들어왔답니다. 약 15만 원의 차이는 왜 생긴 걸까요?
2013년 9월 달력을 보니 (줄임) 27일치를 일당으로 줘야 하는데, 24일로 월급계산이 되어 있었습니다. 행정실에 알아보니 추석 3일을 뺐다고 했습니다. 저는 일용직이라 일요일을 제외한 빨간날은 모두 무급처리 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글쓴이는 "어이가 없었고 맥이 빠졌"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법을 어긴 것은 아닙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유급휴일은 일요일 같은 주휴일과 노동절(근로자의 날)뿐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공무원은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인정하고 있고, 민간에서도 회사의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따라 '자율적으로'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글쓴이 같은 일당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는 어느 경우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거죠.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이처럼 작은 부분에까지 차별이 존재했다니, 새삼 놀랍습니다. 글쓴이는 자신의 사례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독자들을 이해시킵니다. 사는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글 형식입니다. 독자들은 글쓴이의 진솔한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 사는이야기를 읽습니다. 변창기 기자님의 글처럼, 그런 진솔함이 공감을 낳고 설득력을 만듭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 자신의 진솔한 사례로 직접 전해
글 마무리는 고용불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언제든 정규직 공무원을 발령내면 일을 그만둬야 하니까요. 지난 학교에서는 1년째 되기 사흘 전에 계약해지 당했는데, 지금 학교에서는 이미 1년 하고 2달이 넘었답니다. "가족 생계가 달린 문제라 고용불안 속에서 매일 출근하자니 말 못할 스트레스만 깊어지고 있"다면서 학교에서 만난 한 청소노동자의 말을 옮겼습니다.
"주사님도 저랑 같은 처지네요. 저는 파견되어 일하고 있어요. 학교와 용역업체 간 계약을 체결하고 업체가 저를 채용해 이 학교로 파견 보내는 것이지요. 저는 10개월 계약직이에요. 학교에서 퇴직금 발생 안 되게 하려고 그런다고 해요. 2개월은 방학이라 청소가 필요없으니 그런가봐요. 학교에서 업체에 제 월급으로 105만 원 준다고 들었어요. 4대보험 떼고 저에게 주는 돈이 70만 원 정도 되지요."이 이야기 덕분에 글이 한층 깊어졌습니다. 글쓴이가 겪는 여러 문제들이 글쓴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 전반의 문제라는 점을 알려주기 때문이죠. 독자의 머릿속에서 문제의식이 확장되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글쓴이가 결론으로 전한 "빨간날만이라도 급여 일수에 포함시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주장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도록 힘을 실어줍니다.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내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독자를 쉽게 이해시킨 좋은 글이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글의 주제로 집중되지 못하는 '느슨한 짜임'입니다. 이 글의 주제는 '공휴일 유급휴일화'입니다. 그런데 본론에 들어가기까지 여섯 문단에 걸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지칩니다. 앞부분의 분량을 반쯤 줄이고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빨리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휴일 유급휴일화' 이야기와 '고용불안' 이야기가 왔다 갔다 섞여 있습니다. 크게 보면 모두 '비정규직'이라는 뿌리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 글 속에서는 엄연히 다른 덩어리의 이야기입니다. 둘을 중심과 부차로 나눠 비중에도 차이를 두고, 순서에 따라 이야기하면 더 좋겠습니다. 자신의 진솔한 사례를 통해 '공휴일 유급휴일화'를 이야기한 것이 참 좋은데, 중간 중간 다른 이야기가 나오니 산만한 느낌을 줍니다.
글의 짜임에 대해 하나 더 덧붙이자면, 글의 머리에 가장 재미있고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를 '맛보기'만 써서 독자의 호기심을 유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교육직 공무원은 꿈의 직장이라 불리지만 비정규직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얘기로 시작했습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이런저런 차별이 있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이어지는 이야기가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
저라면 아마 '똑같이 한 달 일했는데 월급이 15만 원이 깎였다'라거나 '누구는 추석에 상여금 받아서 좋겠지만 나는 월급이 더 줄어서 추석이 싫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글머리에 쓸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이야기를 다 하지는 않고 적당히, 독자들이 까닭을 궁금해 할 정도로 맛보기만 보여줘야죠.
그런 아쉬움이 있지만 변창기 기자님의 사는이야기
<학교 일용직은 빨간날 많으면 손해봅니다>는 진솔함이 주는 공감이 훨씬 큰 글입니다. "내일도 제발 무사하기를" 바란다는 글쓴이의 바람에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낸 사람은 저만이 아닐 것 같네요. 글쓴이처럼 적극적으로 자신의 현실을 알리는 노동자들이 더 많아진다면, 그들의 현실도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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