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결과가 승복할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설훈 민주당 의원은 22일 오전 민주당 긴급의원총회가 끝나기 직전 "한 마디만 하겠다"며 단상에 올라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국가정보원과 군사이버사령부 등을 동원해 온라인 상에서 엄청난 부정을 했다는 게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대선 자체가 심각한 부정이었다"고 강조했다. "정상적인 선거였으면 어떻게 됐을 것이냐, 대통령 사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과 검찰 수사팀에 대한 수사축소 외압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민주당 내에서 '대선 불복' 주장까지 터져 나왔다. 민주당 내에서는 국정감사 기간 밝혀진 의혹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일부 강경파 의원들의 대선 불복 주장을 경계하면서도, 공세 강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앞서 검찰은 18일 국가정보원이 지난 대선 기간 동안 5만5689건의 트위터 글을 확대 재생산했다는 내용의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지난 6월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당시 확인된 국정원 직원들의 인터넷 정치개입 게시글·댓글은 73건이었다. 73건은 국정원 대선 개입 활동의 '빙산의 일각'이라는 야당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21일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한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이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외압을 밝히고, 군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의혹도 제기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수세에 몰린 상황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제기된 의혹을 정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또한 기존 전략대로 '친노 갈라치기'에도 나섰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의혹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새누리당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사태의 심각성과 진상 규명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향후 여당의 대응이 주목된다.
[민주당] '적극 공세'로 방향 전환... '대선 불복' 주장도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과 검찰 수사팀에 대한 수사축소 외압 의혹과 관련해, 긴급의원총회와 규탄대회를 연달아 열어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 국정감사에서 새로운 의혹이 쏟아져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민주당 지도부는 민심이 부글부글 끓는 새로운 상황에 맞게 공세에 나서고 있다"면서 "앞으로 바뀐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요구는 명확하다, 지난 대선에서의 불법에 대해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진솔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면서 "검찰의 엄정한 수사와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불법과 은폐에 연루된 관련자들을 엄단하고 국정원을 전면 개혁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지난 대선의 불법으로부터 대통령이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파상공세 속에서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정호준 원내대변인은 설훈 의원의 발언을 두고 "대선불복과 연계시킨 발언이 아니다"면서도 "투쟁의 강도를 높이고, 사안의 중대함,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밝혔다. 한 초선 의원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데 당내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밝혔다.
박지원 의원은 이날 긴급의원총회에서 "국정원, 보훈처, 군의 총체적 부정선거였다"면서 "이렇게 많은 불법이 저질러졌는데도, 새누리당에서는 댓글 몇 개가 선거가 영향을 미쳤느냐면서 호도하고 있다, (선거에) 막대한 영향 미쳤기 때문에 선거 문제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정세균 의원은 21일과 22일 연달아 트위터에 "18대 대통령 선거는 국정원과 군이 개입된 명백한 부정선거다, 민주당은 이런 세력들을 몸통에서 꼬리까지 발본색원하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면서 "부정선거 규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고강도 2차 투쟁에 돌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옳은 것을 말하는데 대선불복으로 비춰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수세에 몰리자 "의혹 제기=정쟁"... "진상 규명 필요" 의견도
수세에 몰린 새누리당은 방어모드에 돌입했다. 새누리당은 대선 개입 관련 의혹을 정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22일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항명, 검사동일체 원칙 위배, 파벌싸움, 수시기밀 누출 의혹 등 국감에서 보인 검찰의 행태는 국민을 분노하게 한다"면서 "정치권이 이를 빌미로 민생을 내팽개치고 무책임한 정쟁을 생산하며 국론을 분열시킨다면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이 수세에 몰릴 때 터져 나오는 물타기 전략이 이번에도 가동됐다. 이른바 '친노 갈라치기' 전략이다. 김태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윤석열 전 팀장,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통합진보당 경선대리 투표를 무죄 판결한 송경근 판사 등을 언급하며 "민주당의 대선 불복 움직임 과정을 보면 공교롭게도 노무현 정부 당시 특채된 인사들과 연관성이 있어 그 배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민주당의 대선불복 치고 빠지기, 툭하면 장관사퇴와 대통령 사과 요구 등 대선패배 한풀이의 못된 습관에 국민들은 식상해 있다"면서 "민주당은 못된 습관과 대선패배의 망령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선 승복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설훈 의원에 대해서는 "16대 대선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해 유죄를 선고 받고 실형을 산 범법자다,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내에서도 소장파를 중심으로 진상규명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나온다. 김용태 의원은 21일 "군사이버부대의 댓글논란 수사가 미진하다면 국회 내의 검증절차를 밟아보자고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권성동 의원은 22일 국정원 직원의 트위터 글에 대해선 "참 쓰레기 같은 글이었다"면서 "개인적 차원이냐 국정원장 지시 하에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이냐는 심도있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검사 출신인 박민식 의원은 "인터넷 댓글보다도 트위터에 상당히 많은 정치색 있는 내용을 퍼 나르고 리트윗했다고 신문에 났는데 그게 사실이라고 하면 문제가 심각한 것 아니냐 그런 기본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이날 윤석열 전 팀장에 대해 "제가 아는 한 최고의 검사"라며 "소영웅주의자라고 몰아가지 말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침묵으로 일관... 민주당 반발 불러
청와대는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현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현안을 언급할 경우, 정쟁에 휘말리게 된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민주당의 반발을 확대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김현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 대선 개입과 검찰 수사팀에 대한 외압 의혹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증세에 대해 언급했다"면서 "유체이탈이나 벽창호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오늘쯤은 여러 현안에 대해서 대통령의 입장 발표와 말씀이 있을 것으로 많은 국민들이 기대했지만 오늘도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및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 검찰의 수사외압 논란 등에 대한 대통령의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면서 "줄줄이 확인되고 있는 국기문란사건에 대한 침묵은 대통령으로서의 무책임한 태도이며 국정혼란에 대한 방치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야당과 국민들의 계속된 진상규명 요구와 대통령 사과, 책임자 처벌에 대해 단 한 가지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침묵만 이어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알 수 없는 침묵이 책임 인정의 유구무언인지, 무책임한 방치인지 궁금하고 최악의 국기문란사건에 대한 해법을 듣고 싶어 한다"고 지적했다.